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넋 기리는 무대 위의 위령제
 ‘초혼2017’

'초혼2017'은 죽은 이의 혼을 불러내 이승의 한을 달래주고 저승으로 보내는 위령제 형식의 공연이다. 망자(亡者)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밝은 빛이 내세로 향하는 길을 비춰준다.

이 땅에 태어나 꽃봉오리인 채 스러져 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 형식의 공연 ‘초혼2017’이 5월 4일부터 14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상연됐다.

극단 진선미가 출연하고, 극단 삼류극장의 대표이자 호원대 뮤지컬전공 김지욱 교수가 연출한 이 공연은 시대를 초월한 예술성과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인정받아 제38회 서울연극제 10작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 안민수 선생의 구성으로 1980년에 동랑레퍼토리 극단에서 초연돼, 당시에는 5·18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것을 2016년 고양공연예술제에서부터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넋을 기리는 것으로 재구성했다.

대사는 오직 ‘아이고~’ 한 마디로 귀결되고 복잡한 무대장치나 특별한 소품도 없었지만, 무대를 가득 채우는 움직임과 직접 부르고 연주하는 라이브 음악, 하얀 광목천에 비치는 색색의 조명, 그리고 그 위에 투영된 그림자만으로도 배우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슬픔과 돌아간 이들의 한을 굽이굽이 펼쳐 보였다.

무대에는 일곱 가닥의 널따랗고 하얀 광목이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고, 그 앞에는 한 소녀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지나가던 행인이 목에 걸었던 노란 목도리를 소녀에게 매어 준다. 소녀는 바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이며 아직까지도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이다.

소녀의 뒤에는 고(故)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를 연상하게 하는 56개의 화면이 움직이고 있다. 촘촘한 화면 속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인터뷰 영상이 담겨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때의 한 맺힌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내는 듯하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소녀상은 어느새 생기발랄한 미소를 띠고 동무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천진하게 뛰노는 소녀가 된다. 술래가 되지 않으려고 뜀박질을 하며 하얀 천 앞뒤로 숨바꼭질을 하던 소녀들은 놀이를 마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없지만 조화로운 목소리가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이룬다.

그것도 잠시, 평화로운 언덕에는 총성이 들리고 소녀들은 혼비백산해 이리저리 흩어진다. 웃음꽃이 피던 언덕에는 일본군과 소녀들의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이 시작되고 그중 한 소녀가 결국 그들에게 붙잡힌다. 아랫도리만 가린 건장한 남성 다섯 명이 히죽거리며 소녀에게 다가온다. 천장에 매달린 하얀 광목천 위로 소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도망쳐보지만 번번히 미끄러져버리고 만다.

일본군들이 소녀를 둘러싸고 거리를ㄹ 좁혀오는 긴박감과 불안감을 붉은 조명과 그림자,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통해 나타냈다.

도망치다 군인들에게 잡힌 후 쓰러진 소녀는 위안부 피해자였던 할머니의 죽음을 상징한다. 죽음을 맞이한 소녀 곁에 각자의 직장, 또는 학교에서 바로 뛰어온 듯한 복장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곡소리를 낸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아이고~’ 하면서 애통해 하다가 나중엔 주저앉아 땅을 치며 슬퍼한다.

잠시 후, 장면은 천장 양쪽에 ‘喪(상)’이라고 쓰인 상등(喪燈)이 밝혀지며 차분하게 전환된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사뿐히 상을 들고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상복 입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상 위에는 저승사자를 위한 사자밥, 그리고 꽃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소녀의 옷을 벗기고 염을 한다. 상복을 입은 남녀가 한 쌍이 되어 정갈하게 소녀의 몸을 닦고 나서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힌다. 족두리까지 머리에 얹은 소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새색시다. 사람들은 소녀에게 두 번, 서로에게 맞절하며 애도를 표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 소녀의 출신과 이름을 읊고 난 뒤, 하얀 광목천을 교차하도록 둘러메고 상여꾼이 된다. 소녀는 ‘엄마야 누나야’ 노래를 부르며 상복을 입은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고 상여에 오른다. 소녀를 태운 상여를 메고 사람들은 슬프고도 구성지게 상여가(喪輿歌)를 부른다. 소녀 뒤로 비추는 눈부시게 밝은 빛이 그녀의 넋을 편안한 곳으로 인도하는 듯 찬란하게 빛난다. 같은 고통을 겪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죽음을 애도하듯 수많은 위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며 공연은 끝을 맺는다.

일곱 가닥의 하얀 광목을 교차하도록 둘러메는 것으로 '상여(喪輿)'를 형상화 했다.

‘초혼2017’은 죽음과 애도, 염습과 상여로 이어지는 일련의 장례의식을 때로는 상징적으로, 때로는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오래도록 잊힌 전통문화를 관객들에게 일깨워 준다. 또한 단순화한 언어와 간결한 무대장치를 통해 정갈하고 절제된 슬픔을 더욱 극대화한다. 억압된 감정은 저도 모르게―같은 민족이기에 느낀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눈물로 터져 나와 두 볼을 적신다.

공연을 본 뒤, 한민족으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문하게 된다.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음에도 피해자였던 사실을 숨겨야 했던 할머니들은 위안부 피해자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사회의 잘못된 시선들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의 수치심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수없이 다짐하고 용기를 내어 마침내 진실을 말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고작 사회의 무관심과 일본정부의 영혼 없는 변명이었으리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는 매주 수요일 정오부터 1시간 동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집회가 열린다. 집회에는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인 할머니들과 시민들, 청소년들이 참여해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1992년 1월 8일에 시작한 이 평화적 시위는 26년간 빠짐없이 열려 2017년 5월 17일 현재 제1283차 시위를 맞았지만 일본정부는 여전히 침묵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으며 할머니들을 ‘일본군 성노예’가 아닌 ‘직업적 매춘부’로 주장하며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당함과 폭력에 맞서기 위해, 다시는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하기에, 오늘도 할머니들은 주한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당당히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원평화비’ 헌시
                          - 고은

꽃봉오리채
꽃봉오리채
짓밟혀버린 모독의 목숨이던 그대여
저 빼앗긴 조국의 딸로
한밤중 통곡하던 그대여
여기 뒷날 오가는 거리의 가슴마다
되찾을 수 없는
단 한번의 삶 길이 담겨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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