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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느끼다 품다 나누다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 (266호)

절에 오르게 되면 이제는 제가 촛불을 밝힙니다. 당신은 제가 어릴 때부터 저를, 우리를 위하여 등을 다셨겠지요. 늦으나마 그 마음 만분의 일이라도 지금은 제가 당신을 생각합니다. 향기로운 바람 되어 새로운 싹을 틔우고 웃음을 키우리라 기원하면서요. 무엇보다 이 편지를 받아보실 수 있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 눈을 돌리나 수만의 나무와 꽃, 새 생명들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볕이 따사로워서 감사해지는 계절입니다. 온화한 바람만으로도 넉넉한 저녁밥을 짓게 되는 계절입니다. 당신이 계셔서 간절한 마음만 앞서가는 계절입니다.

늘 환한 얼굴로, 목소리로 맞아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저의 에너지원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따스한 위로와 응원 아끼지 않으셨지요.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다 그렇다지만 따로 살림을 꾸려가는 데도 늘 당신이 소유하고 계신 것을 얹어주고 다독여 주는 손길 때문에 오히려 속상하기까지 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도시에 자리잡은 제가 시골집에 들렀다 올 때마다 무언가를 잔뜩 싸주셨던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교통편이 좋지 않아 주시는 물건을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버스터미널에서 물건을 옮기다 날카로운 것에 찢겨 쏟아졌던 쌀 사건 아시지요. 근처 가게의 도움을 받아 차분히 수습하시던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특히 제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데에는 아주 어렸을 때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유년기에 가장 또렷한 기억일 수도 있겠네요. 옛날에는 겨울이 되면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려서이기도 했겠지만 지금보다 눈도 자주오고 많이 내렸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읍내에 외출하셨을 때 폭설이 내렸지요. 길도 묻히고 사방이 눈에 잠겨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밤길, 눈보라를 뚫고 돌아오셔서 온 가족의 걱정을 잠재웠던 그 개선장군 같던 든든한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많이 힘드실 텐데도 웃음 잃지 않으시고 보기 좋은 연출을 해주셔서 참 존경스럽습니다. 오래된 창고에서 끝도 없이 꺼내주시는 지혜를 저도 한 해씩 나이테를 키워가면서 정신적 유산으로 삼아 배우며 실천하렵니다.

저의 어린 자식 등에 업으시고 좋은 풍광 찾아 이런저런 이야기 들려주시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당신 자식이 소중한 만큼 자식에게 있어서도 또한 그 자식이 소중함을 미리 아시고 손자들 안부가 앞서는 당신을 오래오래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

 

어린 순례

거대한 고목나무 사원(寺院)
겨울 드는 모습에 마음 시리네
앞날 가늠하니 신발 속에 모래가 돋네
축축한 등줄기로 오르는 좁은 길 보이네
막힌 길 뚫어주어 편히 드나들던 길인데
푹푹 빠지는 모래벌판이네
바람도 울컥하는지 모래언덕의 결을 바꾸네
오래도록 고향의 고목나무 둥치에 기대고 싶은데
크르렁, 새어 나오는 바람경을 읽네

 

“다 괜찮으니 내 걱정은 말고, 너희들이나 건강하고 재미있게 지내라.”
언제나 한 가지 답으로만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넉넉한 목소리에 오늘도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큰딸 올림.

김택희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2009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으로 <바람의 눈썹>이 있다.

김택희 시인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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