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읽는 부처님 말씀 (266호)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난 하루 동안 얼굴에 때가 끼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하루 세 번 식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식사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몸은 영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기(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때가 끼면 세수를 하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날마다 먹는다는 과정은 ‘문제의 발생과 해결’의 과정입니다. 얼굴에 때가 낀 것과 영양분이 부족하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고, 세수를 한다는 것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삶은 얼굴에 때가 끼고, 몸의 영양분이 부족한 것과 같은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좀 더 살펴볼까요. 앞에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한다는 것과 세수를 하는 것은 얼굴에 때가 끼었기 때문이라고 확인했는데, 그렇다면 얼굴에 때가 끼면 왜 세수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얼굴에 때가 끼었을 때 세수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얼굴에 때가 낄 때, 그것을 씻어내는 일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당연한 일은 아닙니다. 얼굴에 때가 끼거나 말거나 상관치 않는 ‘자연인’도 있고, 몸의 때를 씻지 않는 것으로써 수행을 삼는 힌두교인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 점에서, 우리가 얼굴에 때가 낄 때, 그것을 씻는 것은 얼굴에 때가 낀 것을 ‘문제’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앞에 든 ‘자연인’과 힌두교인은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 든 ‘자연인’과 힌두교인이 아닌 우리는 얼굴에 때가 끼면 그것을 씻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씻을까요. 얼굴에 때가 끼면 피부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얼굴에 때가 끼어 있으면 남들이 나를 불쾌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문제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몸의 문제와 마음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살아가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과 그렇게 생겨나는 문제에는 육체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은 ‘문제의 발생과 해결’ 바로 그것이라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발생한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되는 것일까요. 이 점은 몸에 질병이 생겼을 때를 생각해봄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에 질병이 생겼을 때 우리는 질병에 관한 전문가(의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전문가인 의사는 우리에게 적절한 치료법을 제공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닥쳐온 질병이라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 과정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①문제의 발생(질병): 몸에 질병이 생겨났다. ②문제의 원인을 밝힘(원인): 의사가 질병의 원인을 진단한다. ③목표의 설정(건강):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야만 한다. ④문제의 해결(치료): 질병의 원인에 따라 알맞은 치료법을 시행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네 틀 안에서 일어나고 해결됩니다. 앞에서 예로 든 세수를 이 틀에 대입해보면 ①문제의 발생: 얼굴이 더러워진 것이 싫다 ②문제의 원인을 밝힘(원인): 얼굴에 때가 끼었다 ③목표의 등장: 때가 없는 깨끗한 상태 ④문제의 해결(치료): 세수를 한다, 가 되고, 배고픔의 경우에는 ①문제의 발생: 배가 고파 괴롭다 ②문제의 원인을 밝힘(원인): 밥을 한 끼 굶었기 때문이다 ③목표의 등장: 배가 고프지 않은 만족한 상태 ④문제의 해결(치료): 밥을 먹는다 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네 가지 틀을 ‘사절판’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음식을 담는 구역을 아홉으로 나눈 ‘구절판’이라는 그릇이 있는데, 그 구역을 넷으로 나누었다고 볼 때 그것이 사절판입니다. 문제는 이 사절판 안에서 일어나고 해결됩니다.

필자가 사절판이라고 부른 것을 부처님께서는 사성제(四聖諦)라고 부르셨습니다. 사성제는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뜻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부처님께서는 삶 자체를 문제로 보고 그 해결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다만,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사성제는 얼굴에 때가 끼었다든가 한 끼를 굶어 배가 고프다는 정도의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에는 여러 계층이 있습니다. 나무에 비유해보면 문제는 잎사귀 수준의 문제, 작은 가지 수준의 문제, 중간 가지 수준의 문제, 큰 가지 수준의 문제, 줄기 수준의 문제, 뿌리 수준의 문제가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뿌리 수준의 문제를 사절판 틀에 넣고 다루셨던 것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는 뿌리 수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잎사귀 수준의 문제는 작은 가지 문제로 귀결되고, 작은 가지 수준의 문제는 중간 가지 문제로 귀결되고, 중간 가지 수준의 문제는 큰 가지 수준의 문제로 귀결되고, 큰 가지 수준의 문제는 줄기의 문제로 귀결되고, 줄기 수준의 문제는 뿌리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이는 회사에서 평직원 수준의 문제는 계장 문제로 귀결되고, 계장 수준의 문제는 과장 문제로 귀결되고, 과장 수준의 문제는 부장 문제로 귀결되고, 부장 수준의 문제는 사장 문제로 귀결되는 것과 같습니다. 평직원이나 계장 수준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전체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 입장에서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의 인생 또한 작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사장 수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장 수준에서, 즉 문제를 뿌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부처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문제를 몸의 문제와 마음의 문제로 나누셨습니다. 그런 다음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문제가 있고, 마음에는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다고 보셨습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①고성제(苦聖諦): 인생은 몸으로나 마음으로 불만족스럽다 ②집성제(集聖諦): 불만족의 원인은 ‘나’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집착하는 것이다 ③멸성제(滅聖諦):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소멸된) 열반의 경지가 있다 ④도성제(道聖諦): 열반을 성취하는 길은 팔정도이다 라고 설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사성제입니다.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의 발자국 안에 모두 수용되듯이
모든 선한 가르침은
사성제 안에 모두 수용된다.

- 〈아함경〉에서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고 그 창시자들 또한 매우 많지만 첫 설법에서부터 진리를 문제 해결을 위한 네 틀 안에 넣어 제시하신 분은 부처님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예를 들면 예수님의 첫 가르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다.”인데, “회개하라.”는 가르침은 사성제의 틀에서 볼 때 ④도성제(道聖諦)에 해당되고, 천국은 ③멸성제(滅聖諦)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르침에는 ①고성제(苦聖諦):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해, ②집성제(集聖諦):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에 비해 부처님께서는 첫 설법에서부터 삶의 모든 문제를 네 틀 안에 넣어서, 즉 인생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 인생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지, 그 방법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고도 간명하게 다루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얼마나 뚜렷하고 밝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사성제는 좁게는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맞게 되는 문제 해결의 틀이고, 넓게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틀입니다. 따라서 우리 불제자는 사성제를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지금 내 앞에 닥쳐 있는 문제가 어느 수준의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내 앞에는 지금 잎사귀 수준의 문제도 있고, 작은 가지 수준의 문제도 있고, 중간 가지 수준의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들을 ①문제 ②원인 ③해결 ④방법이라는 네 틀에 넣어 해결합니다.

그렇게 내 앞에 닥친 세속적인 문제, 우선 화급한 문제를 다루는 한편으로 우리는 시간을 내어 보다 깊은 문제, 보다 먼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보다 완전한 삶, 보다 가치 있는 삶, 보다 고귀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다듬고 가꾸는 동안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는 점점 깊어질 것이고, 그와 함께 불법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깊어짐만큼 우리의 삶은 더욱더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것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