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를 빛낸 세계 불교유산 (266호)

경주 불국사 자하문과 청운교·백운교.

2000년을 훌쩍 넘긴 불교건축. 시작은 인도였지만,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된 불교건축은 아시아 건축의 국제화를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문화로 발전하였다. 불교건축의 발생과 전파, 그리고 발전과정을 살펴보면서 각 나라와 지역의 대표건축물을 이해하는 과정을 갖도록 한다.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리사.

불교건축의 출발, 탑 건축

B.C.6세기 고타마 싯다르타는 불교를 창시하고, B.C.3세기 정복왕이었던 아쇼카왕은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면서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인도 전국에 스투파라는 붓다의 사리를 보관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웠다. 스투파(st?pa)는 고대 귀족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정상’, ‘꼭대기’라는 말인데, 백성들이 사용한 팔리어로는 투파(th?pa)라고 하였다. 이때 건립된 대표적인 스투파는 산치에 있는 대 스투파로 동서남북에 문을 두고 원형 돔 위에 사각의 회랑과 그 가운데 우산 모양의 산개를 두었다. 스투파의 모습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하여 보겠다.

스투파는 5개의 형태가 모인 구조물로 이 5개의 형태(메디, 안다, 하르미카, 야슈티-차트라, 칼라사)는 고대 인도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 인도는 우주가 5가지의 요소(5大), 지(a, 地, earth), 수(va, 水, water), 화(ra, 火, fire), 풍(ha, 風, air), 공(kha, 空, space)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스투파와 우주의 5가지 주요 요소는 서로 대응하는데, 地는 메디를, 水는 안다를, 火는 하르미카를, 風은 차트라를, 마지막으로 空은 칼라사로 표현되었다. 고대 인도인은 자신들이 생각하였던 우주의 5가지 요소를 스투파에 그대로 적용하여 숭배 대상으로 건축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투파의 건립은 이후, 석굴사원과 가람으로 발전한다. B.C.2~A.D.1세기까지 석굴사원은 스투파가 있는 불당 중심의 차이트야(Chaytya)와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비하라(Vihara)로 구분하여 발전한다. 당시 성행하였던 부파불교 중심으로 발전한 석굴사원은 불교의식인 선, 기도의 새로운 양식과 의식에 연유되는데, 건축적인 내부공간이 필요해졌음을 의미한다. 건축적인 내부공간의 필요성은 B.C.100년경에 발생한 대승불교의 재가승려에 의해 발생한 승원의 발달로 인하여 스투파 이외의 공간에서의 예배가 필요하게 되었다.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에는 탑의 대체물로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승원에 불상이 유입되어 탑원과 승원이 서로 융합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스투파와 불상, 승방, 열주 및 생활공간이 함께 구성되어지는 건축군을 승가람마(僧伽藍摩, Sangharama), 즉 가람이라는 대표적인 불교건축이 탄생하게 되었다. 승가(僧伽)란 중(衆)을, 람마(藍摩)란 동산(원:園)을 의미하는 글로 합하여 중원이 되는데, 이것은 후에 절, 또는 가람이란 말로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을 의미한다. 가람은 아시아 북쪽의 중국에 전래되고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어 동아시아 사찰건축의 기본적인 공간구성형식이 되었다.

대표적인 가람으로는 A.D.2세기 경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성자인 나가르주나(龍樹)를 기념하여 건축한 인도 동남부지방의 나가르주나콘다(N?g?rjuna-konda) 사원을 들 수 있다. 사원 유적 중 30여 개의 사원을 통해 불상을 모신 당이 있는 가람의 발전과정을 볼 수 있다. 즉 사리 중심의 사원(스투파)에서 불상 중심의 사원(가람)으로의 전개를 의미한다.

불교건축이 탄생한 인도 주변에는 지금도 여전히 불교국가로서 2000년의 흔적을 간직하여 전통을 지켜내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인도 북부의 네팔과 부탄, 인도와 중국을 이어준 실크로드의 중간점인 티베트, 그리고 인도 남부의 스리랑카이다.

티베트 달라이라마가 거주했던 궁전사원인 포탈라궁.

네팔과 부탄, 그리고 티베트의 불교는 8세기 이후 밀교의 영향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는 라마불교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밀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불교건축 또한 밀교에서 발전한 라마탑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티베트는 라마불교의 성지로, 라싸의 포탈라궁은 국왕이면서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거주하였던 궁전사원이며 동시에 불교사원과 스투파가 있는 복합 기능의 사원이라 할 수 있다. 스리랑카는 인도 남부에 위치하여 동남아시아의 스투파를 위주로 한 상좌부불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불교,
고대 불교건축의 기준을 만들다

낙양 북위 영녕사 목탑의 심주(心柱) 유적.

기원 전후, 인도의 불교는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래가 되었다. 동한(東漢) 영평(永平) 10년(서기 67년)에 세워진 낙양의 백마사(白馬寺)가 최초의 가람이라는 기록이 있다. 후한 말기인 2세기 말 서주(徐州)에 부도사(浮圖祠)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중루(重樓) 위에 금반(金盤)을 올린 중국 최초의 누각식 목탑이라고 전해진다. 마치 석재로 지은 스투파가 목재로 지은 중국식 누각건축으로 변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6세기에 지어진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남북조시대 북위의 수도 낙양에 천여 개의 절이 존재하여 불사가 매우 흥했다는 기록과, 북위의 호령태후(胡靈太后)가 지은 영녕사(永寧寺)의 9층 목탑에 대하여 기술되고 있다. 영녕사 9층 목탑은 이후 한반도와 일본 다층목탑의 기원과도 같은 중요한 건축물이다. 영녕사의 배치를 보면, 동서남북에 문을 두어 문 사이에 담을 두르고 그 마당 중심에 9층 목탑과 불전이 남북으로 놓여 있다. 하남의 숭악사탑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탑으로 그 배치를 보면, 8각탑 좌우에 전각지(殿閣址)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5~6세기 남·북조시대의 중국불교는 인도의 불경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대중화된 시기이며, 문헌과 유구 그리고 석굴사원을 통해 본 중국 불교건축은 중국식의 다층 목탑과 불전이 완성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남·북조시대가 중국의 첫 번째 불교 융성시기였다면 수·당시대의 중국 통일기 불교는 최고조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건축에서는 탑 중심의 남·북조시대를 벗어나 불전 중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수·당시대의 건축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유적이 돈황석굴이다. 돈황석굴 불화에 묘사된 건축은 3단계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1) 돈황 423석굴 수대 일전이루(一殿二樓) 배치. 蕭黙 〈中國建築藝術史〉上.
2) 돈황 205석굴 초당 凹자 배치. 蕭黙 〈中國建築藝術史〉上.
3) 돈황 85석굴 만당 원락식 배치. 蕭黙 〈中國建築藝術史〉上.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隋, 581∼618)는 불전 앞에 높은 2기의 경루(經樓)가 대칭되게 위치하는 “일전이루(一殿二樓)”형식의 배치가 일반화된다. 당나라의 초당(初唐, 618~712)과 성당(盛唐, 713~761) 시기에는 “요(凹)”형 배치평면으로 발전하고, 중당(中唐, 762~835)과 만당(晩唐, 836~907) 시기에는 “원락식(院落式)” 배치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탑의 묘사가 없고 불전 중심의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대의 건축은 남선사(南禪寺)와 불광사(佛光寺) 대전이 있다. 이들 건축은 모두 탑이 없는 마당을 가진 원락식 배치이다.

같은 모습 그러나 다른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 불교건축

한반도와 일본의 고대 불교건축은 중국의 전개와 달리한다. 탑을 중심으로 하는 가람배치는 크게 670년 나·당 전쟁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5~7세기 한반도 삼국시대의 가람배치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탑 중심의 가람배치와 맥을 같이한다.

고구려의 1탑3금당배치, 백제의 1탑1금당배치, 신라의 1탑식 가람배치가 그러하다. 고구려의 8각 목탑과 탑 주위의 불전 배치는 중국의 영녕사와 숭악사에서 그 원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가 북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백제의 1탑식 가람배치는 중국 영녕사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으며,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다.

여기에서 일본의 가람배치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고구려가 금강사지의 1탑3금당 배치를 구축할 때 일본은 비조사(飛鳥寺)에서 1탑3금당의 모습을, 백제가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 정림사지, 금강사지, 미륵사지 등에서 1탑식 가람배치를 조성할 때 일본은 사천왕사와 법륭사 등의 1탑1금당 가람배치를 조성하였다. 일본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을 때 1탑3금당을, 백제의 영향을 받을 때 1탑1금당의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라의 경우, 불교의 전래가 다른 나라보다 늦어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였다. 그러나 670년 나·당전쟁은 가람배치의 새로운 양상을 가져다주었다. 신라가 전에 없던 탑 2기를 불전 앞에 세우는 2탑식 가람배치를 679년 사천왕사를 세우면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승전기념사찰인 사천왕사를 중국에서 잘 보이지 않던 탑 2기를 세운 배치로 구성하면서 자주적인 불교건축의 새로운 구성형식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일본 또한 689년에 약사사를 지었는데, 갑자기 전에 없던 탑 2기를 금당 앞에 건립하는 배치를 하게 되었다. 신라의 영향인 것이다. 당시의 중국은 이미 원락식 배치로 가람의 배치형식이 변한 시기이다. 불교건축의 모습이 불교의 전파 이외에 국제정세와 매우 밀접한 모습을 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후 8세기 동아시아는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가 열렸고, 중국의 원락식 가람배치가 한반도와 일본에 걸쳐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비로소 완전한 불교의 국제화가 완성되었다.

배흘림기둥이 특징인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중세 이후 동아시아 불교건축의
교리에 따른 다변화

동아시아의 고대 불교건축은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경전에 따른 교리가 발달하였다. 특히 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동아시아의 평화시대는 불교 교리의 발전을 가져왔다. 율종과 법상종, 화엄종을 비롯하여 밀교도 매우 발전하게 되었다.

사천왕사와 감은사가 신라의 밀교건축을 대표하고, 중국의 청룡사는 8세기 중기 밀교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불국사에서는 원락식 배치를 통해 법화사상과 미타사상, 그리고 화엄사상 등 여러 교리에 따른 사상의 다변화를 표현하였다. 부석사 또한 무량수전의 미타사상과 석탑의 법화사상, 그리고 화엄사상을 여러 방향의 축을 이용하여 배치하였다. 이렇듯 한반도의 불교는 다양해진 교리를 여러 방법을 통해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일본 교토 평등원 봉황당(鳳凰堂).
일본 교토 연력사 근본중당(根本中堂).

일본의 불교는 8세기 중국 밀교의 영향을 받아 일본 천태종과 진언종으로 발전하였다. 천태종은 교토의 연력사(延曆寺)를, 진언종은 금강봉사(金剛峯寺)를 중심으로 일본불교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였다. 두 가람의 특징은 동·서탑으로 다보탑을 배치하여 밀교사상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불전의 경우 이중의 가로로 된 복도와 불상이 있는 공간인 3중의 구조로 되어있다. 당시의 불전형식은 이후 일본 불교건축의 기본형이 되어 현재의 수많은 일본 불교건축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동아시아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는 정토사상이 유행하였다. 고려시대 산지가람을 대표하는 부석사가 그러하였으며, 일본의 평등원(平等院)이 그러하였다. 일본 평등원은 마치 경주 불국사를 평지에 가져다 놓은 모습을 보인다. 동아시아인들이 생각하는 극락의 모습이 비슷하였음을 알 수 있다.

9세기 이후, 중국에서 유행한 선종의 영향으로 한반도와 일본은 선종이 발전하였는데, 신라말기의 9산선문에 이어 고려시대의 진전사원(眞殿寺院),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중기까지 한반도의 불교건축을 대표하는 회암사에서 그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의 의례가 탑 중심의 탑돌이와 불전 안에 전돌을 깔아 부처님을 도는 요잡례에서, 불상을 중심으로 하는 배례로 옮겨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회암사의 중요한 또 다른 모습은 바로 강당 기능의 선당이 불전 뒤에서 마당 앞 측면으로 바뀐 모습이다. 조선후기 탑이 없는 마당을 중심으로 불전과 대방, 요사채, 누각으로 이루어진 사동중정형(四棟中庭形) 가람배치 모습의 직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의 사찰은 완전히 변화된 모습으로 바뀐다. 대웅전의 부처님이 북편 뒤로 물러나고, 전돌 대신 마루가 깔리며, 대들보를 위로 더 올리고 내부에 닫집과 봉황, 용 등 여러 장식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묘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전에 마당에 괘불을 두어 야단법석(野壇法席)하였던 단체중심의 불교행사가 불전 내부에 탱화를 걸어 참선과 기도의 개인적인 불교행위로 변화하게 된다. 중국은 주택평면의 기본형인 4합원(四合院) 형태의 사찰로, 일본은 회랑과 정원으로 구성된 선종가람으로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발전하게 된다.

해상 실크로드와 함께 한
동남아시아의 불교건축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육상의 실크로드를 통하여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전파가 되었다면, 해상의 실크로드를 통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의 동남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개인의 해탈에 주력한 상좌부불교(Theravada)가 주력이었으며, 이는 인도에서 힌두교에 의해 불교가 쇠약해질 때 남부인도에서 유지되어 온 상좌부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동남아시아 불교의 역사발전에 따라 불교건축 또한 발전하였는데, 2~15세기까지 수용단계(2~7C), 체계화단계(7~10C), 그리고 융성단계(10~15C)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동남아시아 불교의 수용단계에서는 스리랑카와 남부인도의 불교건축으로 주로 스투파가 발전하였고, 체계화단계에서는 인도차이나지역을 근간으로 미얀마와 인도네시아에서 인한 대규모의 거대 불교건축이 형성되었다. 융성단계에서는 태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중국 목조사원건축의 영향으로 경사지붕의 전각중심인 불교건축이 발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의 불교건축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인도 스투파의 영향으로 대탑 혹은 소탑을 최상부에 배치하고 기단부, 혹은 주위에 석조건축으로 불전과 승방을 형성하는 불교건축이 첫 번째이며, 중국식 목조 불교건축이 두 번째이다.

태국 아유타야 왓 푸라시 산펫.

인도의 스투파 중심 사원은 태국과 라오스의 스투파 중심사원에 일차적인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태국의 스투파는 나콘빠톰(Nakhon Pathom)에 있는 프라파톰(Pra Pathom)과 출라파톰(Chula Pathom) 스투파가 있으며, 사원으로는 왓 구구트(Wat Kukut)와 왓 프라시 산펫(Wat Phra Si Sanphet, 15C)과 라오스 비엔티앙의 파 탓 루앙(Pha That Luang, 16C) 등이 있다.

태국과 라오스와는 다르게 캄보디아와 미얀마, 베트남,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대규모의 스투파 중심이 아닌, 소규모의 스투파가 외부 공간에 나열되어 있어 불전과 승방이 강조되는 형태의 건축군을 이룬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Borobudur, 8~9C), 미얀마의 파간(Pagan, 11~13C),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Angkor Wat, 12C)이다.

캄보디아 앙코르 톰의 바이욘(Bayon)사원.

본고 초입에 스투파가 인도의 5대(大)와 대응하였음을 설명하였는데, 보로부두르와 파간, 그리고 앙코르와 같이 소규모의 스투파와 불전·승원이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사원의 경우, 3단계의 수직적 공간구성의 모습이 보다 실질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단과 벽체, 그리고 상부의 스투파로 나누어지는 3단계의 개념은 불교의 우주공간 구성 3단계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 중심이 되는 욕망의 세상(Man)이 기단을 상징화하고, 수행을 통하여 인간의 욕망세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물질(Substance:보이는 실체)의 세상이 벽체를, 마지막으로 천상 곧 불국을 의미하는 본질(Essence: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상을 형상화하여 스투파로 대응한다.

미얀마 파간의 탓빈뉴 사원. 12세기에 건립됐다.

스투파의 모습이 칼라사, 즉 보석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공(空)의 세계, Space를 의미한다. 이는 만다라의 도상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 외곽에 인간의 욕망세상과 구별되는 화염의 경계가, 그 안에 보살의 수행을 담은 물질세상, 그리고 궁극의 중심에는 본질의 부처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도 천왕문의 신중단, 보살전의 보살단, 그리고 대웅전의 불단이 3단계 공간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이는 수미산의 수직적 공간구성과 일맥상통한다.

동남아시아 불교건축은 12~13세기를 지나면서 중국과의 국제관계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보이게 된다.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 중국의 이주민이 늘고, 중국의 문화(불교와 도교의 혼합)가 유입되면서 남중국의 목조와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특색이 융합된 불교건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태국 치앙마이의 왓 프라 싱과 방콕의 왓 라차나다람, 라오스 비안티안의 왓 찬타부리와 왓 시사켓, 말레이시아 말라카의 쳉 훈 텡과 페낭의 켁록시, 싱가포르의 티안혹켕과 푸탁치 사원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0년 아시아와 함께한 불교건축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건축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모든 곳에서 불교의 우주관을 담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역적 특색에 따라, 재료의 차이로 인하여 석재와 목재, 벽돌 등으로 각 나라의 모습을 구축해 나갔고 건축 공간의 변화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상좌부)의 의례와 수행 차이에도 불구하고 목표는 같았기에, 스투파 중심의 사리신앙에서 불전과 승원의 수행중심으로 발전하였다. 불교의 우주관을 담은 5대(大)와 3단계의 공간개념(욕망-유형-무형)은 인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스투파와 사원의 공간구성에 공통적으로 건축에 적용되어 구축되었다.

서양건축이 기독교의 교회건축 중심으로 발전하였다면, 아시아는 불교의 사원건축이 그 맥락의 중심이 되어 발전하였다. 불교건축은 아시아에서 건축의 첫 번째 국제화를 이룩하였으며 여러 나라를 통해 전래되면서 지역적 특성을 담아 다양하고 특색 있는 건축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20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신적 위안과 함께,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제공하여 아시아를 대표하는 종교건축으로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김상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부와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2004년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미륵사지 해체공사 책임자로 있으면서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문화재설계와 시공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미국 UCLA CKS에서 Post Doc 과정을 거쳤다. 2008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했으며, 현재 전통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둥글둥글 지구촌 건축이야기〉, 〈향교·서원 해설 여유지기 길잡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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