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구석구석 불교문화재 (265호)

밀양 표충사 업경대, 1688년. 황색과 청색의 용이 하나의 대좌를 이루고 있다. 경륜 주위로 타오르는 듯한 화염문이 투각되어 있다. 뒷면에 ‘명경대’라는 묵서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생이 끝나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무도 생이 끝난 순간부터 시작될 ‘죄를 갚는 삶’의 두려움은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죄를 갚는 삶은 우리가 살아온 날만큼 길지 않다. 그러나 죽은 후 망자라는 이름으로 먹지도 자지도 놀지도 사랑하지도 못한 채 3년 1095일 동안 죗값을 다해야 하는 시간은 참 길고 외롭다.

죄를 비춰주는 거울, 업경대

업경대(業鏡臺)는 업경(業鏡)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 하며 ‘생전에 지은 죄를 비춰주는, 업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업경대는 지하세계의 왕인 지장보살이 계신 지장전(地藏殿) 혹은 명부전(冥府殿)에서 볼 수 있고, 명부(冥府)를 다스리는 제5 염라대왕의 지물(持物)이다.

염라대왕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죽은 자’로 가장 먼저 명계와 연을 맺은 자이다. 이후 중국에 들어와 명계의 귀신이 되고 이후 지장보살과 만나 시왕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지옥은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중 가장 고통이 심한 곳으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며, 업경은 오직 염라대왕의 상징물로 등장한다. 이러한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사람이 죽은 후 저승사자가 망자를 염라대왕에게 데려간 후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업경대에 죄를 비추어 보는 일이다. 〈시왕생칠경〉에 “염라대왕 앞에서 죄인들은 머리카락을 잡힌 채 머리를 들어 업의 거울(업경)을 보니 비로소 전생의 일을 분명히 깨닫네.” 라고 나와 있듯이 저승사자는 망자를 업경대 앞에 세우고 업경대 앞에서 생전에 지은 죄를 살펴본다. 업경대는 생전에 지은 죄를 비추고 죄목을 두루마리에 적는다. 그렇게 계속 죄목을 적다가 마침내 업경대에 더 이상 죄가 비추지 않으면 모든 심문이 끝난다. 그 후 나의 죄목이 완성된 두루마리를 저울에 달아 죄의 무게를 잰 후 죄업에 따라 형벌을 받는 것이다.

업경대에 관한 것은 〈시왕생칠경〉외에도 〈사분율행사초자지기(四分律行事超資持記)〉에 “1년에 3회 정월과 5월, 9월에 업경륜이 남섬부주(南贍部洲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땅의 이름)를 비추는데, 만약 선악업이 있으면 거울에 모두 나타난다.”고 하였다. 또 〈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地藏菩薩發心因緣十王經)〉에는 “사방팔방에 업경을 달아 두어 전생에 지은 선과 복, 악과 죄업을 나타낸다. 모든 악업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현세에서 목전에 보는 것과 같다.”고 나와 있어 업경대가 슈퍼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저장하고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 업경대. 문화재청.
황색과 청색의 사자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황색의 사자 발밑에 있는 받침대에 묵서가 있어 제작연대를 알 수 있다.

지옥의 시스템과 10명의 왕

〈불설예수시왕경〉에 의하면 사람은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다 저승사자에 이끌려 명부에 가게 된다. 그 후 사람은 죽은 후 죄의 경중을 가려 죽은 날로부터 49일까지, 7일 단위로 자신의 업을 심판받는다. 시간에 따라 차례로 시왕을 만나게 되는데 첫 7일에는 진광대왕, 이칠일에는 초강대왕, 삼칠일에는 송제대왕, 사칠일에는 오관대왕, 오칠일에는 염라대왕, 육칠일에는 변성대왕, 칠칠일에는 태산대왕, 백일에는 평등대왕, 1년에는 도시대왕, 3년에는 오도전륜대왕을 만난다.

이 중 업경대 말고도 죄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지물이 있는데 바로 업칭(業秤)이다. 사람이 죽은 후 28일이 되면 제 4 오관대왕을 만나는데 망자의 전생의 죄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업칭에 달고 그 무게에 따라 망자를 심판한다. 업칭은 보통 제4 오관대왕의 지물인데 때론 제 8 평등대왕이나 제9 도시대왕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나무로 제작된 업경대

실물의 경우 나무로 제작하고 경륜(鏡輪)은 금속 혹은 나무로 만들어 채색한다. 거울은 원형이 일반적이며 타원형도 있으며 크기는 50~60cm가 보통이다. 거울 주변에는 불꽃 문양을 조각하여 저승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대좌는 사자 모양이나 용, 혹은 단순한 기둥 형태로 되어 있는데 한 쌍인 경우 황색과 청색이 대부분이다. 실물 업경대는 17세기 이후 작품만 현전하며 1728년 동화사 업경대, 1862년 파계사 업경대 등 연대 확인이 가능한 작품 포함 약 18여 구가 있다.

전등사 업경대는 한 쌍으로 황색사자와 청색사자의 대좌에 동으로 된 거울이 있고, 주위는 화염문으로 장식하였다. 사자 발아래 직사각형의 발받침이 있는데 명문이 발견되어 1627년(조선 인조 5년) 9월 13일에 천기·밀영·봉생의 조각승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사자왕은 부처님을 뜻하며 사자심(獅子心)은 가장 강하고 겁이 없는 것으로 가장 강건한 불심을 말한다.

표충사 업경대는 한 쌍의 용이 청색과 황색으로 채색되어 1기로 되어있다. 뒷면에 명문이 있어 1688년(숙종 14년) 9월에 제작되었으며, 명문에 ‘명경대(明鏡臺)’라고 나와 있다. 업경대는 죄를 비추는 거울이고 명경대는 마음을 비추는 수행법구로 알려져 있다.

청곡사 업경대(1693년)는 한 쌍으로 황색과 청색의 사자좌로 이루어져 있다. 사자좌 위로 연화가 있고, 그 위에 청동거울이 얹혀 있다. 청동거울에는 세 개의 고리가 달려있어 탈부착이 가능하고 거울 중앙에 ‘명경(明鏡)’이라고 새겨져 있고, 명문 양옆에는 구름무늬와 칠보무늬로 장식하였다.

불화에 등장하는 업경대

불화에 등장하는 업경대는 1246년 해인사 소장 〈예수시왕생칠경〉 변상판화를 제하곤 18세기부터 등장하여 사자대좌를 가진 1742년 해인사 시왕도와 1744년 직지사 시왕도를 제하고 모두 기둥형의 대좌를 가진 업경대로 1766년 대원사 시왕도, 1792년 흥국사 시왕도, 1885년 흥천사 시왕도, 1923년 안양암 시왕도 등 총 16점이 있다.

불화 속 업경대는 표현의 자유로움으로 인해 ‘내 죄를 비춰주는’ 업경대의 느낌이 더 살아있다. 불화에 등장하는 업경대에는 대부분 소를 죽이는 모습이 비춰지고 그 주위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과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모습 등 생전에 지은 죗값을 씻고 있는 망자들의 다양한 형태가 지옥세계의 느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불화 속 업경대는 목조 업경대와는 달리 한 쌍이 아닌 1기의 업경대가 등장한다. 결국 업경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옥의 형태가 이리 참담하고 죄를 씻는 일은 말로 못할 고통이니 죄를 짓지 말고 선업을 쌓으라는 것이다.

경주 기림사 시왕도, 1744년

고성 옥천사 시왕도는 1744년 화승 효안(曉岸)이 조성한 작품으로 상단에 시왕과 권속을 크게 배치하고 하단에 지옥 장면을 아주 작게 묘사되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앙에 정면을 보고 일월(日月)이 있는 경전을 얹고 있는 염라대왕이 있으며 아래 부분에 지옥의 장면에 있다.

지옥세계를 살펴보면 옥졸이 망자의 머리채를 잡고 업경대를 쳐다보게 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 기둥형 대좌를 한 업경대가 보인다. 업경대에는 소를 때려잡고 있는 망자의 모습이 보이며 긴 두루마리 종이를 지니고 있는 판관이 동자와 함께 종이를 잡고 업경대에 비친 죄를 적고 있다. 그 옆으로 방아로 죄인을 찧으며 압사당한 시신들이 흘러넘치지 않게 담고 있는 옥졸의 모습도 보인다.

경주 기림사 시왕도 중 제 9 도시대왕도, 1799년
고성 옥천사 시왕도, 보물 제 1693호, 1744년

기림사 시왕도(1799년) 역시 옥천사 시왕도와 같은 구조도 되어있고 업경대에는 어김없이 소를 죽이는 망자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백자가 만들어지던 중간 시기에 제작되었다. 분청이라는 말은 태토 위에 백토의 분을 바르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화장’이다. 분청은 왜 화장을 하기 시작했을까? 분청이 제작된 시기의 흙은 거칠고 양질(良質)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조질(粗質)의 흙을 감추기 위해 하얗게 분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분청의 거친 흙은 감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것이 바로 나의 업이고 어떤 포토샵 필터 없이 보여주는 거울이 바로 업경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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