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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북녘의 보릿고개
  •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장
  • 승인 2017.05.2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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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부지역의 봄 가뭄이 심하다.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 등 휴전선에서 평양이북까지 가뭄이 아주 심하다. 봄비가 적어 생긴 탓도 있지만, 관개수로(灌漑水路) 시설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보리가 나는 망종 때까지 배고픔을 버텨내기로 소망했던 이들에게 봄 가뭄은 삶의 의지까지 꺾이게 하고 있다.
그렇게까지 학수고대하던 망종날이 양력 6월 5일이다. 망종(芒種)을 전후로 풋보리 쌀이라도 구경할 수 있기에 바라던 생각일 것이다. 망종은 24절기 가운데 9번째인데, 보리나 밀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芒]을 수확하고 벼나 기장 같은 종자[種]를 논밭에 파종하기 적절한 때라는 뜻이다. 망종이 지나면 온전히 익은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많아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 심게 되니 망종”이라는 말들이 생겨났다. 농촌에서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가 겹쳐 일 년 동안 가장 바쁜 때이기도 하다. 살구[杏]나 매화가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개울에서 반딧불이나 사마귀들이 서서히 나타날 무렵이다.
1980년대 이후 남측의 영농기계화로 옛날 같지 않지만 얼마나 바쁜 나날이었는지, 망종에는 “제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밤낮으로 보리를 베고 타작에다 소로 쟁기질과 써레질로 논 갈기를 마치고 미리 장만해 둔 잡풀퇴비를 섞어서 논 모판을 만들고 다음날에, 허리가 열두 번도 끊어질듯이 볏모를 심는다.
편히 쉴 수 있는 때는 새참을 먹고 논두렁에 잠시나마 벌러덩 누울 때뿐이다. 못줄 잡는 것이야 덜할지 몰라도 모심는 일은 오늘날 건장한 젊은이조차 100명에 한 사람도 견디기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보리타작과 모심기는 힘보다 요령 그리고 요령보다 관록이 앞선다. 타작할 때면 보리수염은 겉옷을 뚫고 콕콕 찌르며 살갗에 박혀 쓰라리게 하고, 한 줄 두 줄 넘어가는 모내기는 3000배 절하기처럼 고통스러워 하루해가 야속할 정도로 힘들다.
그러나 이보다 더 한 것은 망종 때의 보릿고개[麥嶺]이다. 이 고갯길을 넘어야 보리쌀이라도 겨우 먹을 수 있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개라 불렀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보릿고개의 배고픔이야말로 생사(生死)가 왔다갔다고 한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보릿고개에는 많은 사람들이 며칠씩 굶기가 일쑤였다. 1781년(조선 정조 5년) 11월 29일에는 ‘맥령기(麥嶺期)’라 〈정조실록〉에 기록하였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보릿고개를 춘기(春饑), 춘빈(春貧), 춘기근(春飢饉), 춘궁(春窮), 궁절(窮節), 궁춘(窮春) 등으로 불렀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도 이 고갯길을 미처 넘지 못하고 굶어 죽는 이들이 제법 있다고 전해진다.
5월초, 이미 보릿고개가 시작된 북한에는 보릿고개가 아닌 ‘감자고개’를 맞고 있다. 보리보다 햇감자가 나오기 전까지 더 어렵기에 주민들이 그렇게 부른다. 배급제이지만 양곡과 옥수수는 물론이고 땅속에 묻은 감자(甘藷)나 무, 김장김치도 동이나 먹을 것이 없어서 풋과일, 햇감자 등 구황(救荒)작물로 끼니를 채우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방귀 길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소화가 잘 안되어 연신 뀌게 되는 보리방귀는 감자방귀로 바뀌었지만,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고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봄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장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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