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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업 짓는 게 최상의 삶’ 공경과 예경 삶에 배인 라오스인[특집] 라오스인들의 삶과 불교 (265호)

탁발로 받은 보시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기도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참파꽃은 라오스의 국화이다. 향기 짙은 하얀색 참파꽃을 보고 있으면 라오스인들의 미소를 보는 듯하다. 라오스는 미소의 나라이다. 어딜 가나 순박하고 환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3주 간의 라오스 여행 일정은 짧기만 했다. 지인(知人)이 비엔티안에서 근무하고 있어 얼굴도 볼 겸 떠난 여행이다.

왓 마이의 스님들이 저녁예불을 올리고 있다.

불교 사원이 많은 루앙프라방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시판돈과 방비엥, 불교사원이 많은 루앙프라방은 여행자들이 열광하는 곳이다.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자 부처님 품 안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오스의 전통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예전의 번창함과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고즈넉하여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

루앙프라방 최고의 사찰로 꼽히는 왓 씨앙통.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왓, 마이 대법당 앞에 서면 찬란한 금빛으로 치장한 외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왓은 사원이라는 의미이다. 황금 동판을 이용해 부조 기법으로 조각한 외벽의 상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부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하단에는 라오스인들의 생활상을 새겨놓았다. 주로 여인네들이 농사를 비롯하여 노동하는 장면이 많으며, 동물들이 초원에서 뛰노는 장면도 있다. 하단은 황금의 땅을 의미하는데, 조각에서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사원 외벽에 라오스인들의 생활상을 조각한 것은 성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라오스인들의 삶에서 불교는 빼놓을 수 없는 큰 축이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불교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스님에게 작명(作名)을 요청한다. 남자들은 소년기에 단기출가를 하는 것은 라오스의 오랜 관습이다. 한국에서 남자가 군대를 갔다 와야 진정한 남자로 대접을 받는 것처럼, 일정기간 동안 출가생활을 한 남자라야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집안에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불단에 진노랑색의 플루메리아꽃을 바친다.

경건한 탁발의식에 동참하다

탁발 중에 신도들을 위해 경을 외우는 스님들. 라오스 남자들에게 소년기의 단기출가는 오랜 관습이다.

탁발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마 베이커리 앞에는 공양물을 파는 상인들이 나와 있었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바구니에 담긴 찰밥과 과자 한 바구니를 사서 나도 돗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전통 옷을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탁발행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경건하다.

주홍색 장삼을 입은 스님들의 행렬이 다가왔다. 스님들은 맨발로, 묵언 속에서 탁발을 한다. 〈금강경〉의 첫 구절을 떠올리면서 수천 년 전의 의식에 동참한다는 사실에 가슴 뭉클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렇게 탁발을 했구나 생각하니 2600년 전의 부처님을 뵙는 듯 했다. 라오스인들이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 공경심이 온 몸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

일주일 동안 루앙프라방에 머물면서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탁발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공양을 올리고 난 후에는 탁발행렬을 따라 다녔다. 스님들은 메콩강변을 따라 걷다가 다시 시내 쪽으로 걸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탁발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들은 탁발을 하다가 나란히 서서 경을 외웠다. 누군가가 미리 기도를 요청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탁발을 하면서 기도를 올릴 때는 주로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으로부터 구제하는 〈보배경〉을 읽는다.

스님들은 자신의 공양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노스님은 커다란 광주리를 앞에 놓고 무릎 꿇고 있는 어린이를 매번 지나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 아이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 밥과 과자를 담아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빵 봉지를 건네기도 했다.

차림새로 보아 스님들의 공양물을 받을 만큼 가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노부인이 바구니 가득 스님들로부터 과자를 받아간다. 가만 생각해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과자도 스님들이 나누어 준 것 같다. 공양물이 돌고 돌아 나까지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탁발의식은 스님들의 주림을 면해주는 의식이면서도 나눔의 또 다른 방식임을 알았다.

왓 탓을 비롯하여 여러 사원에서 발우를 들고 탁발을 나가는 형상의 불상을 보았다. 발우를 들고 탁발 나가는 불상은 ‘나눔’을 상징한다. 나눔의 불상을 조성한 그 정신이 라오스 사람들의 유전자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보살도

라오스인들의 삶은 불교의 카르마와 윤회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승에서 복을 지어야만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윤회사상을 굳게 믿고 있다. 착한 업을 짓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 생각한다.

남을 공경하면 나도 공경 받고, 이런 행위가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믿는다. 경쟁심이나 욕심도 별로 없다. 라오스인들은 물질에 대한 탐욕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잘 살겠다는 욕망이 별로 없다. 지금 행복하면 된다.

사회주의 국가라 자신이 공부하고 싶다면 대학원까지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단다. 고등학교까지는 학비가 없고 학용품과 책을 살 돈만 있으면 학업이 가능하다. 일 년 대학 학비가 500달러 정도인데, 가난한 사람들에겐 이것도 큰 부담이다. 대학 학비가 부족하면 친지들이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라오스인들의 방식이다.

루앙프라방의 종이공예가 유명하다기에 종이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은 좀 외진 곳이라 택시도 툭툭이도 없다. 십 리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몰려다니는 동네 개들이 무서웠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종이마을에 갔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오니 석양빛이 가득하다. 갈 길이 구만리같이 느껴진다. 터벅터벅 걷다가 아낙이 타고 가는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녀는 20분 정도를 달려 내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조마베이커리 앞에 내려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보펫낭!”이라고 한다. 보펫낭은 ‘별일 아니다’, ‘괜찮다’ 이런 뜻이다.

누구를 만나든 예배하고 찬탄을 한 상불경비구가 떠올랐다. 상불경비구는 “내가 그대들을 공경하는 것은 그대들 모두는 보살도를 행해서 마땅히 성불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부처되는 불성을 지녔기에 공경하고 찬탄한다는 상불경비구. 라오스인들은 생활 속에서 공경과 예경을 실천하고 있으니 상불경비구가 현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파방 부처님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의 시무외인을 한 불상.

루앙프라방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은 왕궁박물관에 모셔진 황금으로 만든 불상 ‘파방’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 황금불상을 가장 신성한 불상으로 받들고 있다.

파방은 2000여 년 전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크메르(캄보디아)를 거쳐 란상왕국에 전해졌다. 파응움왕은 라오스에 불교를 받아들인 왕으로 파방을 선물로 받고 나서 도시 이름을 ‘신성한 황금 불상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루앙프라방’으로 바꾸었다. 황금불상은 씨얌(태국)의 침략으로 두 번이나 약탈당했다. 이런 험난한 여정을 거쳐 지금은 왕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두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이며 팔을 들고 있는 파방 부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의 시무외인(施無畏印)이다. 내 눈에는 ‘어떤 불행도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저를 지켜주세요’라는 기원을 하면서 작은 불상을 모시고 왔다.

루앙프라방에는 예쁜 카페도 많아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낮에는 야외 탁자에 앉아 지나가는 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고, 은은한 조명 아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행복이다. 파파야 샐러드 한 접시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기에 즐겨 먹었다.

서른 개가 넘는 루앙프라방의 사원 중에서 최고의 사찰을 꼽는다면 당연 왓 씨앙통이다. 왓 씨앙통은 왕의 대관식이 열리던 왕실 사원이었다. 대법당의 외벽에 ‘삶의 나무’가 모자이크 기법으로 조각되어 있다. 삶의 나무는 우주의 축이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며 우주의 중심을 이룬다는 우주론을 형상화한 것이다.

와불이 모셔진 법당은 규모가 아주 작아 한 두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찰 정도이다. 와불법당의 외벽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상단에는 천상의 세계, 중간부분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한 세계, 하단 부분은 인간 세계가 조각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유리공예가 햇빛에 반사되면 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분노를 드러내는 건 부끄러운 일

라오스 어디에서나 환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예비신부가 꽃공양을 하기 위해 사찰을 찾았다.

남방불교에서는 부처님 한 분만을 예경의 대상으로 삼지만, 법당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처음 보는 불상들이 눈길을 끈다. 양손을 밑으로 내리고 있는 불상은 비를 내리게 하는 불상으로 라오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두 손을 아래쪽으로 포개고 있는 부처님은 겸손을, 두 손을 가슴에 X자형으로 안고 있는 부처님은 포용을 의미한다.

라오스인들은 겸손과 포용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음이 틀림없다. 나의 지인은 라오스에서 화를 내거나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라오스에 처음 왔을 때 서로 만나면 합장으로 인사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단다.

라오스인들은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화를 내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분노나 짜증을 부리고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교양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분노에 정복당하지 말 것이며, 화내는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라오스인들. 그들은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남을 공경하는 것이 곧 나를 공경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치유의 에너지를 가진 곳, 라오스는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고단한 삶조차도 축복임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조화롭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배웠다.

문윤정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삶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인도·네팔·캄보디아·파키스탄·중국·터키·유럽 등 여러 나라를 배낭여행했다. 불교계 신문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 사진사관학교 일우 회원으로 활동, ‘여행작가 아카데미’를 열어 글 쓰고 가르치면서 살고 있다.

 

문윤정 작가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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