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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과 단양신심 나는 국토순례 (265호)

소백산 구봉팔문에 연꽃처럼 피어난 구인사
천태 향기 휘감아 도는 남한강과 단양

소백산 구봉팔문에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웅장한 산줄기는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뻗어 태백산 인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소백산을 이루고, 한반도 남쪽의 지리산에 이르러 백두대간을 완성한다.

소백산에는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와 의상대사의 정신이 깃든 영주 부석사 등 불연(佛緣)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소백산을 휘감아 돌며 충청북도 동북부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삼국시대 영토전쟁의 격전지였던 ‘녹색쉼표’의 고장 단양 사람들이 소백산과 남한강을 따라 이룩한 문화를 만난다.

단양군 영춘면에는 제2 단양팔경의 하나인 북벽이 있다. 용진대교에서 바라본 북벽과 남한강 물줄기.

사람 살리는 소백산

소백산(小白山)은 경상북도 영주시ㆍ봉화군과 충청북도 단양군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백산(白山)’은 ‘희다’, ‘거룩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태백산은 큰 ‘백산’이고, 소백산은 작은 ‘백산’이다. 빼어난 자연환경 탓에 선사시대 때부터 인류는 소백산과, 소백산을 끼고 흐르는 남한강에 기대어 살았고, 삼국시대에는 영토전쟁을 벌이던 격전의 땅이었다. 그래서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았지만, 그만큼 다양한 문화유산도 만들어냈고, 이를 보존·계승해 나가려는 단양 사람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선비들은 소백산을 유람하고 글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48세 때인 1548년 정월 단양군수로 임명됐다가 같은 해 10월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긴 뒤 1549년 4월 소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인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남겼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 1752)이 쓴 〈택리지(擇里志)〉에 “…태백산과 소백산의 샘과 돌은 모두 낮고 평평한 골짜기 안에 있고, 산허리 이상에는 돌이 없어 산이 웅장해도 살기(殺氣)가 적은 편이다. 먼 곳에서 바라보면 봉우리들이 솟아나지 않아 엉켜 있는 듯 보인다. 산은 구름이 가득해 냇물이 흐르듯 하며 하늘에 닿아 북쪽이 막혔고, 때로는 자색 구름과 흰 구름이 떠 있기도 한다. 옛 시절 남사고(南師古, 1509~1571)가 소백산을 보고 갑자기 말에서 내려와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감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서인 〈동국지지(東國地誌)〉에도 ‘병란을 피하는 데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 좋은 지역’이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소백산은 명품 산이다.

양백산전망대에는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할 수 있는 활공장이 있다.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

소백산을 둘러 흐르는 강이 남한강이다.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물줄기는 강원도 영월에서 평창강을 만나 제대로 모습을 갖춘 강이 된다. 남한강은 단양으로 흘러들어 단양 곳곳을 굽이치다가 서쪽으로 흘러 제천과 충주를 휘감아 돈다. 거침없이 흐르는 강물은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남’과 ‘북’을 뗀 하나의 한강이 된다.

이 남한강에는 1985년 10월 완공된 충주댐이 있어 홍수를 조절하고, 수력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해 지역에 공급한다. 영월에서 모양을 갖춘 남한강은 소백산이 내 준 길을 따라 단양 전역을 마치 용이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감으며 날아가는 듯 굽이치며 흐른다.

소백산 구봉팔문 연화지에 터를 잡은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 (오른쪽 계곡) 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양지바른 고장 단양

‘단양(丹陽)’이라는 이름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비롯됐다. ‘연단’은 ‘신선이 먹는 환약’을, ‘조양’은 ‘햇볕이 골고루 따뜻하게 비친다’는 뜻이다. 햇볕 따뜻하고 공기 좋고 물 맑은 단양에는 태고(太古)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았다. 동굴 속에서, 강 옆에서, 산속에서도 살았다. 그래서 지금도 단양 사람들은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그곳에 정을 붙이고 산다. 소백산과 남한강은 감탄사 절로 나는 절경을 빚어냈고, 사람들은 소백산과 남한강에 기대 살면서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다.

단양에는 자연이 빚어낸 8곳의 명승지, 즉 단양팔경이 있다. 제1경 하선암, 제2경 중선암, 제3경 상선암, 제4경 사인암, 제5경 구담봉, 제6경 옥순봉, 제7경 도담삼봉, 제8경 석문이다. 그리고 영춘면의 북벽과 온달산성, 적성면의 금수산, 대강면의 칠성암과 죽령폭포, 어상천면의 일광굴, 가곡면의 구봉팔문, 단양읍의 다리안산은 단양 제2팔경으로 불린다. 그리고 자연은 노동동굴과 천동동굴, 고수동굴, 온달동굴 등 천연 자연유산도 남겼다.

남한강 따라 자연이 만들고
사람이 쌓은 문화유산 즐비

남한강이 단양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영춘면 일원인데. 그곳에 북벽(北壁)이 있다. 북벽은 남한강가에 깎아지른 듯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석벽이다. 조선 영조 때 영춘현감을 지낸 이보상(李普祥)이 석벽에 ‘北壁(북벽)’이라고 새긴 이후로 이름이 지어졌다. 북벽의 높이는 수십 미터에 이르고, 길이는 500보 가량이다. 북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청명봉(靑冥峰)인데, 매가 막 날아오르려는 형상을 하고 있어 응암(鷹岩)으로도 부른다. 레프팅 도착지 인근 마을에서 강변을 따라 물과 바람이 만들어놓은 둥글둥글 자갈길을 걸어가면 북벽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난 파도 마냥 돌에 부딪혀 내는 거친 물소리도, 유유히 흐르는 비단결을 닮은 고요한 물소리도, 그 길을 걷는 사람도 대자연 속에서 하나가 된다. 마을 인근의 용진대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북벽의 경관도 빼어나다.

지역민 교육 위한 영춘향교

충북 유형문화재 제106호 영춘향교.

북벽을 뒤로 하고 영춘면으로 방향을 틀면 언덕 중간에 조선 정종 1년(1399)에 세워진 영춘향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6호인 영춘향교는 임진왜란(1592년) 때 불에 타 없어져 광해군 6년(1614)에 남천리로 옮겼는데 다시 화마(火魔)를 입었다. 1659년(효종 10) 눌대(訥臺)로 이건했다가 정조 15년(1791)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건립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으며, 현재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지내는 곳이며,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이다. 단양사람들의 교육을 담당한 곳이 지금은 세월의 흔적만 간직하고 있어 쓸쓸함마저 든다. 그나마 향교에서 내려다보이는 영춘면과 남한강, 그리고 소백산의 절경이 마음을 달래준다.

영춘면 성산 정상에 있는 온달산성. 고구려 오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고구려·신라 격전지 온달산성

영춘향교 인근을 지난 남한강은 고구려와 신라가 용쟁호투를 벌였던 격전지로 흐른다. 남한강 위로 우뚝 솟은 소백산 아래로는 온달동굴이 있고, 소백산 자락의 남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성산 정상에는 고구려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깃든 성산고성(城山古城)으로도 불리는 온달산성이 굳건히 서 있다.

온달관광지에서 성인 걸음으로 30~40분 오르면 거대한 온달산성이 눈앞에 나타난다. 해발 427m의 성산 정상부분에 쌓은 온달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과 영춘면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성의 길이는 외측 682m, 내측 532m, 높이 6~8m의 반월형으로, 소규모 석성에 속한다. 100m 가량 붕괴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데, 1979년 7월 26일 사적 제264호로 지정됐다. 산성의 남쪽으로 소백산맥의 웅장한 산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양 구인사 대조사전 야경.

상월원각대조사 중생구제 원력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로 우뚝

소백산에는 단양군 영춘면에서 가곡면까지 걸쳐있는 9개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8개의 골짜기가 있다. 이를 ‘구봉팔문(九峰八門)’이라고 부른다. 9개의 봉우리는 제1봉 아곡문봉(我谷門峰), 제2봉 밤실문봉, 제3봉 여의생(如意生)문봉, 제4봉 뒤시랭이문봉, 제5봉 덕평문봉, 제6봉 곰절문봉, 제7봉 배골문봉, 제8봉 귀기문봉, 제9봉 새발문봉이다. 8개의 문은 1문 아골문안골, 2문 밤실문안골, 3문 여의생문안골, 4문 덕가락문안골, 5문 곰절문안골, 6문 배골문안골, 7문 귀기문안골, 8문 새발문안골이다. 영춘면의 남천리와 백자리에서 시작해 국망봉 계곡에서 끝난다.

이 구봉팔문은 곰절문봉을 중심으로 ‘八(팔)’자 모양을 이룬다. 경관이 뛰어나 북벽·금수산·칠성암·일광굴·죽령폭포·온달산성·다리안산과 더불어 단양 제2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이 구봉팔문은 ‘법월팔문(法月八門)’이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 어떤 불제자(佛弟子)가 이곳을 법문(法門)으로 잘못 생각해 불교에 입문, 득도를 목표로 법문을 오르려고 무수한 세월을 흘러 보냈지만 결국 법문에 오르지 못했다하여 그 힘과 정열을 쏟은 곳이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구봉팔문 아래 연화지에는 한국 불교계 3대 종단의 하나인 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가 자리하고 있다. 상월원각대조사께서는 이 연화지에 초암(草庵)을 짓고 수행하면서 대각을 성취했다. 그리고는 중생구제에 힘썼고, 조선 500여 년간 꺼져가던 고려 대각국사가 이 땅에 뿌리내린 천태종의 불씨를 되살려 지금의 대도량을 이루었다. 365일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는 구인사에는 수많은 불자들과 내외국인들이 찾는 국제적인 도량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이 구인사를 근본으로 천태종은 250만 신도와 국내외에 160여 곳의 사찰을 둔 한국불교의 2대 종단으로 성장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제405호 가곡면 향산리 삼층석탑.

구인사에서 남한강로를 따라 자동차로 15분가량 가면 왼쪽에 작은 마을이 나온다. 가곡면 향산리다. 이곳에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1기가 두 그루의 목련나무 사이에 소박하고 담담하게 서 있다. 보물 제405호 향산리 삼층석탑이다. 탑이 서 있으니 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신라 눌지왕(417~458) 때 묵호자가 꿈에서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말을 듣고 향산사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리고 묵호자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1935년 경 도굴꾼들이 사리장치 등을 훔치려고 탑을 쓰러뜨렸는데, 5년 후 마을사람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하늘에서 본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 계곡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전각의 모습이 이채롭다.

불연(佛緣) 깊은 고장 단양

이외에도 단양에는 사찰이 여러 곳 있다. 우리나라 전역이 불연(佛緣) 있는 곳이지만, 단양도 어느 지역 못지않게 불교의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단양 각 고을에는 불교와 관련된 인연담이 여럿 있다. 영춘면에는 ‘화신동과 육한대사’와 ‘대원군과 화장암’, 가곡면 사평리에는 ‘스님 괄시해서 망한 변씨 집안’, ‘정성들인 염불이라야 극락가는 법’, 단성면에는 ‘고평리 석불’, 대강면에는 ‘상원사 동종도 울고 넘는 박달재’, ‘원통암의 명명유래’, ‘대흥사의 500나한’, ‘묘적사 폐사와 성지골’, 가곡면에는 ‘구봉팔문(법월팔문)’, 어상천면에는 ‘금산사의 흥망’ 등 불교와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단양에도 양반가의 가옥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가곡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인 조자형 가옥이다. 이 가옥은 1984년 1월 14일 중요민속자료 제145호로 지정됐다.

단양팔경의 으뜸 도담삼봉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 가운데 바위는 남봉, 왼쪽바위는 처봉, 오른쪽바위는 첩봉으로 불린다.

조자형 가옥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남한강 물줄기가 소백산을 돌아 매포읍 도담리에 다다르면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섬이 눈에 띤다.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島潭三峰, 명승 제44호)이다.

지역민들은 도담삼봉 중 가장 높은 바위섬을 남봉(男峰), 왼쪽 바위섬은 처봉(妻峰), 오른쪽 바위섬은 첩봉(妾峰)이라고 부른다. 남봉은 본처에게서 딸만 셋을 두었는데, 첩을 얻어 아들을 보게 됐다. 첩만 총애하고, 본처는 소홀히 대했다. 그래서인지 첩봉은 불룩한 배를 내밀고 남봉에게 애교를 떠는 형상이고, 처봉은 등을 돌린 채 잔뜩 토라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도담삼봉의 ‘삼봉’을 호로 삼은 이가 있다. 조선 왕조 초기 나라의 기반을 닦았지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했던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도담삼봉 인근 도전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인연으로 호를 삼봉(三峰)으로 삼았고, 도담삼봉의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가끔 찾아와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단양팔경 중 한 곳인 석문.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마고할미의 전설이 전한다.

도담삼봉 인근에는 단양팔경의 하나인 석문이 있다. 무지개 모양의 이 석문은 자연이 만든 구름다리 모양의 거대한 돌기둥이 절경이다. 석문은 석회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구름다리 모양을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둥 사이로 보이는 도담마을의 풍경도 아름답다. 석문 왼쪽에는 석굴이 있고 석굴 안에는 신선이 갈았다는 옥답이 있다. 이 옥답은 옛날 하늘나라에서 물 길러 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마고할미가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팠는데, 그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됐다. 마고할미는 주변 경치가 하늘나라보다 더 좋아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는 전설이다.

도담삼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단양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백산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소백산의 웅장함과 때론 도도하게 때론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여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강줄기는 마고할미의 전설을 뒤로 하고 선사인들이 살았던 곳으로 흐른다. 수양개선사유적지다. 유적지에서는 2만7,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유적지 주변 지역은 석회암동굴과 강을 낀 천혜의 환경이어서 사람이 살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유적지에는 유물전시관이 세워져 있다.

국보제198호 단양신라적성비.

막힘없이 흐르는 강물은 단양의 끝자락 단성면에서 머물다가 충주로 흘러간다. 단성면 성재산에는 신라 진흥왕과 이사부 장군의 숨결이 서린 사적 265호 적성산성(赤城山城)과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적성비’가 유람객을 반긴다. 적성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성된 산성이고, 단양신라적성비는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곳 적성을 점령한 후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운 비다. 비석은 군데군데 깨졌지만, 땅 속에 묻혀 있어서 비문의 글자 획이 깨끗하고 또렷한 편이다. 현재 보호각과 주변에 보호시설을 설치해 보존하고 있다. 적성산성 성곽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주변에 늘어선 산봉우리의 실루엣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거침없이 흐르는 남한강이 번뇌를 씻어준다.

햇볕 따뜻한 고장 단양. 과거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구인사로 인해 다시 용솟음치고 있고, 단양인들이 지켜가는 우리의 문화는 새 천 년을 이어갈 것이다. 그곳엔 사람을 살리는 소백산과 흐르고 흘러 새물결을 이루어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남한강이 있다.

양백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단양읍. 소백산과 남한강,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강식 기자  lks97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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