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265호)

꽃은 등·향·차·과일·쌀과 함께 부처님 전에 올리는 여섯 가지 공양물 중 하나다. 인고(忍苦) 끝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은 보살행의 아름다움에 비유되며, 육바라밀 가운데 ‘인욕’을 상징한다. 상서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것처럼, 불가(佛家)에서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 전에 정성을 다해 꽃을 올린다. 불교꽃꽂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보림꽃예술중앙회’ 회원들을 만났다.

보배로 이루어진 숲, 보림회(寶林會)

‘보림(寶林)’은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 불교의 이상세계인 극락정토를 설명한 내용 중 ‘일곱 가지 보물[七寶]로 이루어진 숲’에서 따온 이름이다. 부처님이 계신 곳을 꽃으로 정성스럽게 장엄하는 도반들의 모임과 이 모임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지연 스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현재 ‘보림꽃예술중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 영축산 기원사(祇園寺) 회주 지연 스님은 46년째 꽃꽂이를 해오고 있다. 불교꽃꽂이가 생소했던 70년대 후반 우담회(보림꽃예술중앙회의 전신)를 창립했고, 80년대 초부터 꽃꽂이 자격증이 있는 스님 및 불자들을 모아 노력을 거듭한 끝에 1989년 4월 ‘전국 불교꽃꽂이 연합회’란 이름으로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1994년 사단법인 ‘보림꽃예술중앙회’를 창립하고 한국꽃꽂이협회에 등록한 후, 1997년 10월 제1회 보림꽃예술중앙회 전시회를 개최했다.

오랜 역사만큼 보림회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이면 크고 작은 사찰의 관불단 장엄과 꽃공양을 도맡아 하고, 세계국제교류전, 꽃박람회, 불교꽃꽂이 전시회, 영산재 및 산사음악회 꽃장엄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불자를 대상으로 무료 공개강좌도 개최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94년 합천 해인사 성철 스님과 2000년 보은 법주사 탄성 스님의 상여를 꽃으로 장엄하는 성스러운 일도 지연 스님과 보림회 회원들의 정성스런 손길을 거쳤다.

지연 스님은 매월 첫째·셋째 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기원사에서 강사 세 명과 함께 직접 꽃꽂이 강의를 하고 있다. 꽃꽂이 수준과 경력에 따라 지부장·사범·고급·중급·초급으로 나뉘지만, 수업은 모두 같은 공간에서 한다. 나이도 종교도 초월한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20명 남짓한 수강생들은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2주에 한 번씩 서울 월계동 꼭대기에 자리한 기원사를 찾는다.

꽃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사람들

기원사 3층에 위치한 꽃꽂이 연구소에서는 매월 첫째, 셋째 수요일 꽃꽂이 수업이 진행된다.

꽃꽂이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집중력과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수행’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 어떤 소재(꽃과 관엽)를 고르고, 이 소재들이 어떤 조합을 이룰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꽃들 가운데 어떤 색깔의 꽃을 얼마나 쓰고,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를 생각해보면 무궁무진한 형태의 꽃꽂이가 나온다.

유난히 꽃을 사랑하는 수강생들은 오늘도 따스한 눈길로 꽃을 바라보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는 조아람 씨는 “꽃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요. 누구든지 꽃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꽃은 모양도 향기도 좋아서 꽃꽂이를 할 때마다 늘 행복한 느낌이 들어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3년 전 부처님께 손수 꽃 공양을 올리고 싶다는 원을 세우며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한 김복례 씨는 꽃을 인생에 비유한다.

“저는 꽃을 볼 때마다 우리 인생을 보는 것 같아요. 봉오리가 맺힌 꽃을 꽂아 놓으면 다음날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활짝 핀 꽃은 어느 순간 시들어 버리거든요. 인생의 축소판인 꽃을 보며 순간순간 소홀히 살아서는 안 된다는 시간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불단에 생화가 없으면 왠지 모르게 부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그는 꽃꽂이를 배우기 전에도 늘 화분을 불전에 올렸다고 한다.

몇 년간 학원을 다니며 꽃꽂이를 배웠던 이상순 씨는 지연 스님의 꽃꽂이 강좌에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강좌에서는 대체로 플라스틱판 하나만 사용하는데, 화기(花器)가 많은 곳은 처음 봤어요. 화기를 스스로 고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또 학원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같은 수업을 듣는데, 이곳에서는 경력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작업하다보니 서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재료비 이외의 별도 수강료가 들지 않는다는 것과 스님을 비롯한 선배들의 애정 어린 조언도 보림회의 장점. 초보자의 작품이라도 지연 스님은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다. 잘된 작품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해 다듬어 준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꽃꽂이를 하며 궁금한 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끈끈한 정을 쌓고, 집에 갈 때는 작품에 사용했던 꽃을 가족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다시 꽂아둔다. 생생한 꽃이 있는 공간에서는 더 많은 웃음꽃,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깊은 신앙심으로 피어난 선(線)의 예술

오랫동안 서양꽃꽂이를 배우다 얼마 전부터 스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한 기독교인 김로렌 씨는 스님의 꽃꽂이를 통해 동양적인 선(線)을 배울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만드는 사람의 뜻대로 꽃을 다듬는 서양꽃꽂이에 비해 꽃이 지닌 선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불교꽃꽂이는 더욱 자연스럽고 조화롭다는 것. 침봉을 사용해 꽃대를 살려 만든 보림회 회원들의 작품에서는 통일감을 위해 꽃을 재단해 꽂는 여타의 작품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기에는 부처님과 불보살에 대한 깊은 신심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꽃꽂이의 기본이 되는 것은 신앙심입니다. 기법보다 우선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요. 명상과 참선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꽃을 가지런히 할 때도 일념 정진해야지 손 따로 마음 따로는 작품을 할 수가 없어요. 부처님과 불보살들께 이 꽃을 올린다는 지극한 불심이 깃들어 있을 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백년 가까이 부처님 전에 꽃 공양을 올린 지연 스님은 꽃꽂이를 할 때의 마음가짐을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시한다. 그래서 지금도 스님의 꽃꽂이는 처음 꽃을 꽂을 때의 마음과 변함없는 수행이다. 불보살에 대한 깊은 예경과 공경심으로 꽃꽂이를 해 온 스님의 솜씨는 불교꽃꽂이뿐 아니라 한국꽃꽂이협회, 세계교류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국내든 해외든 꽃꽂이를 하는 곳이면, 지연 스님부터 찾고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늘 분주하다. 꽃꽂이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을 여쭈었더니 “나처럼 46년째 하다보면 누구든 잘할 것”이라고 모란꽃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고희를 넘겼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지연 스님은 불교꽃꽂이의 교과서로 불리는 〈한국 꽃예술과 불교〉를 비롯해 교재도 여러 권 집필했다.

부처님오신날 불단을 장엄한 꽃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보처보살을 상징하기도 한다.

부처님오신날 불단 장엄은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는 보림회의 가장 큰 소임 중 하나다. 올해도 어김없이 봉은사를 비롯해 사찰 및 지역사암연합회에서는 스님과 회원들에게 아기부처님 관불단과 불단을 아름답게 장엄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지난 4월 5일 취재를 간 날, 보림회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단 상단과 아기 부처님 관불단 장엄을 시연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기원사 법당 불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좌우로 두 분의 협시보살이 화현했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아기 부처님도 나란히 섰다. 꽃 속에는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문수보살·보현보살도 모두 계셨다. 싱그러운 꽃송이마다 맺힌 수많은 불보살님께 예경하는 회원들의 얼굴에 아기 부처님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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