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를 빛낸 세계 불교유산 (265호)

강소연
25년 간의 불교문화재 조사 경력을 가진 젊은 베테랑 학자이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토대학 책임연구원·대만 국립중앙연구원 장학연구원·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에서 포닥연구원으로 일했다. 동국대학 연구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홍익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일본 미술문화계 최고 권위 학술상 ‘국화상’ 장려상, 한국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저서로는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 〈사찰불화 명작강의〉 등이 있다.

미혹한 중생위해
진리의 실체를
형상으로 표현하다

반가사유상(국보78호), 삼국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떻게 하면 존재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인들은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을 모색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중생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생로병사’라는 정해진 틀에 갇힌 운명이다. 이 같은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가? 인간 의식의 한계를 넘어선 곳에 많은 신들과 다양한 종교가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신에게 의탁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화두에 스스로 도전했고 그 실체를 본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해탈의 방법으로, 스스로 검증한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설파하여 우리에게도 이 유일한 길을 따르면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불상의 기원, 석가모니 부처님

보르부두르의 불상, 거대한 <화엄경>의 세계를 구축, 8세기, 인도네시아, 세계문화유산.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직후, 약 500년 동안은 어떤 존상도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그리고 초기 불교미술은 부처님의 형상을 구현하지 않았기에 ‘무불상(無佛像) 시대’라고 한다.

시대가 가장 올라가는 불전도(佛傳圖,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조각으로 묘사한 것)는 인도의 바르후트 탑과 산치 대탑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2∼3세기경에 조성된 이들 스투파(석가모니 부처님의 유골 또는 사리를 안치하는 건축물로 탑의 기원이 된다.)는 초기 불교미술을 대표하는데, 여기에 조각된 불전도에서는 부처님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다.

부처님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비워두거나 또는 다른 상징물들을 통해 암시를 한다. 부처님의 발바닥만 표현하여 그의 족적을 표시 한다거나 부처님이 득도한 보리수나무로 그의 상징을 대신한다. 또 법륜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나타내고 작은 스투파의 형상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표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밝힌 존재의 실체는 ‘연기(緣起)와 무상(無常)’인데, 특정한 상(相)으로서 부처님을 만들어 제시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본질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혹한 중생에게는 구심점이 되는 예배의 대상이 절실했기에, 교화의 방편으로서 불상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인도, 간다라와 마투라-굽타로
이어지는 양식의 전개

미륵보살입상, 사하리 바라로르 출토, 2-3세기, 간다라 양식.
부처님상, 아피차리토 출토, 2세기, 마투라 양식
부처님의 두상, 찬다 티라 출토, 굽타 시대
부처님 입상, 고빈드 나가르 출토, 434년, 굽타 시대

기원 후 1세기부터 쿠샨시대의 간다라 지방과 마투라 지방에서 각기 다른 양식의 부처님 형상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불상의 양식은 지역마다 다르게 전개되는데, 그 이유는 해당 지역에 따른 기후와 풍습, 나라별 사람들의 생김새 등의 풍토성(風土性)에 기인한다.

간다라는 인도 서북부 지역에 위치하기에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불상이 마치 그리스·로마의 신 또는 철학자처럼 표현된다. 간다라 불상은 부드러운 금발처럼 흐르는 머릿결에 갸름한 얼굴선, 그리고 옷 주름이 치렁한 통견의(通肩衣)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다. 눈은 반쯤 감고 아래를 응시하며 명상에 잠긴 듯 매우 지적인 모습이다.

반면, 마투라 불상은 민머리에 둥근 소용돌이 모양의 상투머리를 하고 눈은 활짝 만개하고 얼굴에는 만연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의 법의를 걸쳤는데, 인도 중부지방에 위치해 기후가 더운 탓에, 부처님의 몸체가 거의 다 드러날 정도로 옷 두께가 얇다.

간다라 불상은 그 지역에서만 나는 회청색 빛이 도는 차가운 느낌의 편암(片巖)을 쓰고, 마투라 불상은 붉은 빛이 도는 열정적 느낌의 사암(砂巖)을 써서, 재질 상의 대조를 보인다. 하지만 부처님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깨달음의 빛을 표현한 ‘광배’는 양자에게 물론 공통으로 나타난다. 신성한 진리와 계합한 자는 그 존재가 진리의 광명 그 자체이기에, (동서양을 불문하고) 성자를 구현할 때는 광배(光背 : 후광 또는 광륜, 성자의 머리나 몸체 주변으로 퍼지는 빛을 형상화한 것)를 필히 묘사한다.

굽타시대(5세기 경)에 오면, 이 두 양식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이상적인 국제적 양식이 탄생하는 데 그것이 굽타 양식이다. 굽타 양식은 간다라식 통견을 선택하지만 마투라식 인체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서, 얇은 법의를 통해 신체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조각한다. 옷주름은 마치 잔 물결처럼 몸체 위로 퍼진다. 그리고 생명력이 가득한 이상화된 양감(量感)의 인체가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진다. 몸체 자체로 신성성을 표현하게 된다. 머리 위에 불쑥 튀어나온 듯 보이는 둥근 육계와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가는 듯한 나발이 정형화된다. 이는 차크라(백회)가 열려 대우주와 계합하여 그 기운이 방출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의 굽타양식은 중국 당(唐) 양식의 기저가 되어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붓다의 어원과 대승불교의 불신관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불성, 다불(多佛) 표현, 용문석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불교의 역사는 크게 북방불교와 남방불교로 나뉘게 된다. 북방은 전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이고, 남방은 스스로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소승불교이다. 소승에서는 한 국토 한 시대의 붓다는 한 분 뿐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만 부처님이 아니라, 석가모니 이전에도(과거7불, 연등불) 현재에도(아미타불, 약사불) 또 이후에도(미륵불) 수많은 붓다가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나도 노력하면 내 속의 불성(佛性)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하여, ‘일체중생에게는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다.

‘부처’의 어원인 ‘붓다(Buddha, 佛陀)’는 범어로 ‘깨달은 자(覺者)’란 뜻이다. 옛 문헌 및 경전에는 ‘불체(佛體)’로 표기되고 ‘부텨’라고 읽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묘사한 불전도 중, 가장 중요한 정점이 되는 성도와 설법을 위주로 대다수의 상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불신관은 또 다른 불교미술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원(久遠)의 본불을 말하는 〈법화경〉, 광대무변한 부처의 세계를 말하는 〈화엄경〉 등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들은 모두 다불(多佛)사상을 말한다. 즉, 삼천대천세계에 무수하게 편재하는 불성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처의 작용은 삼신(三身)설로 나타난다. 수많은 붓다를 관통하는 본체, 자성(自性)의 진여(眞如)함을 이름하여 법신(法身, 비로자나)이라 한다. 수많은 겁의 세월을 통해 보살행을 닦아 그 과보로 이루어진 만덕(萬德)의 원융한 지혜를 보신(報身, 노사나)라고 한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은 중생을 교화하게 위해 중생이 알아볼 수 있는 몸으로 나투신 응신(應身, 석가모니)이 된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불교미술과 조형을 아우르고 관통하는 불신관이다.

중국, 북위·수·당으로 이어지는 불상의 전통

보살입상, 중국 수(隋)대(581-617), 暘盛堂 소장.

중국의 초기 불교미술은 5세기 때 조성된 운강석굴을 중심으로 꽃을 피운다. 운강석굴의 불상들은 북위(北魏) 양식을 대표하는데 부처님이 마치 활달한 북방의 무사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단단한 양감과 날카롭게 휘날리는 옷자락 등의 특징들은 고구려 불상에 그대로 영향을 주어 힘찬 남성성이 강조된 모습으로 불상이 조형된다.

그 후 특기할 만한 완성된 양식을 북제와 수 나라 불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제의 불상들은 고요하고 부드러운 명상적 분위기를 갖고 있다. 재료로 석회함이나 대리석을 주로 사용하여, 소재의 빛깔에서 오는 부드러운 톤 또는 하얀 빛깔을 십분 살려 북제 특유의 양식을 형성한다.

수나라 불상은 타원형의 세장한 몸통 속에 숭고한 종교미를 갖추었다. 보살상의 경우는 아름다운 영락 장식이 돋보이는데, 이를 품어내는 단정한 자태와 그윽한 표정 탓에, 묘한 절제미가 일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숭고한 신성성은 당(唐) 양식에 오면 사라진다. 당대 불상의 신체는 풍만하고 옷 주름은 사실적으로 날카로워진다. 인도 굽타 양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굽타 양식에서는 볼 수 없는, 세속적으로 육화(肉化)된 표현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반가사유상과 석굴암의 세계적 위상

반가사유상(국보83호), 삼국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유상은 석가모니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본명을 가진 태자였을 때의 모습이기에 ‘태자상’, ‘태자사유상’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반가사유상 국보78호 및 국보 83호를 보면, 아름다운 청년이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깊은 삼매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번져 선정 속의 법열(法悅)을 즐기는 듯하다. 가는 팔과 긴 허리 등 뒤태를 보면 그의 앳된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인체 표현의 생동감과 사실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조형미를 과시한다.

특히 여타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반도 특유의 ‘금동’이라는 소재로 주조하였기에, 현존하는 다수의 반가사유상 중에 가장 높은 차원의 조형물로서 평가받는다.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은 일본 교토 고류지(廣隆寺)소장 국보 1호 반가사유상과 형식적으로 거의 동일하여, 일본 불교미술의 모태가 되는 아스카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금동광배, 부소산성 출토, 백제시대, 7세기 전반,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또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석굴암에는 본존으로 석가모니 성도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화강암 몸체로 부터는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석굴암의 내부의 둥근 공간은 이러한 정밀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석굴암은 둥근 천정(돔 형식의 오목 천정)과 둥글게 축조된 원실(圓室)이라는 독특한 원형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좌상, 목조, 고려시대,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굴암, 석가모니성도상과 둥근 천정, 통일신라시대, 8세기, 경주 토함산, 세계문화유산.

부처를 모신 공간을, 화강암의 석재로 원형으로 축조한 것은 석굴암이 유일무이한 예이기에 그 건축학적 가치는 실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는 여의주로 상징되는 ‘성품 자리’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원융무애한 원천적인 불성과 그로부터 나오는 부처와 보살의 공덕 장엄의 세계를 둥근 판테온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그러한 공간의 핵심적 존재인 본존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에너지는 원실을 가득 채우며 퍼져나가 우주 전체로 확장된다.

일본, 동대사의 대불(大佛)과 화엄사상의 표현

노사나불좌상, 752년, 높이 14.73미터 일본 나라시대, 일본 동대사 금당의 주존불.
불공견색관음상. 일본 나라시대, 8세기, 일본 동대사 소장 텐표(天平)조각을 대표하는 걸작.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알려진 것이 일본 나라(奈郞) 동대사(東大寺)의 대불전이다. 이 대불전 안에는 노사나 대불(8세기)이 있는데 높이가 무려 17미터이고 무게는 380톤에 달한다. 동대사는 화엄종의 본찰로, 그 전래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승불교의 우주관을 표현한 〈화엄경〉의 ‘여래성연기(如來性緣起, 축약하여 性起)’ 사상은 8세기를 정점으로 하여 이후의 불교 조형의 중심적 원리로 자리 잡는다. 깨달음의 자리인 여래성에서 무량한 불성이 무궁무진하게 법계연기하여 일어나는 장엄한 모습을, 법신 비로자나불과 보신 노사나불로 표현한다.

이러한 화엄적 우주관을 만다라 형식의 축조물로 조성한 것이 인도네시아의 보르부두르 사원이다. 사원의 회랑 둘레만 4km에 달하고, 1460개의 부조와 504구의 불상, 72개의 세계종(世界種) 조형물로 구성되었다. 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신비스럽고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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