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도란도란(264호)

아들의 시험공부와 나의 기도

손영희 / 부산 연제구 연산동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인사 초입의 백자리를 지났다. 그리고 일주문에 들어서면서, 오늘도 드넓은 구인사 도량이 얼마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평온한 느낌이 가슴에 닿는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법당에 들어가 합장을 하고 참배를 드린다. 아침이면 도시락 2개를 싸들고 현관을 나서는 아들을 보노라면, 얼마나 힘들까 가슴이 저려진다. 물론 열심히 노력도 해야겠지만 불보살의 보살핌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두 손을 모은다.

밤새 관음정진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새벽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내 마음 또한 작은 정성으로 부처님께 매달려 본다. 옆자리 노보살님은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시는지, 나 또한 덩달아 신이 나서 수행이 절로 된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기도한다.

‘내 주위 모든 어려운 분들이 중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옵소서. 공부를 해서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면 나누어주는 미덕 또한 나의 공부요, 보살수행이다.’

이제나 저제나 오는 것을 기다리듯 미소 짓고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은 항상 부자이다. 우리 불자들의 소망을 변함없이 듣고 계시는 대조사님이 모셔진 삼보당에 들어서서, 큰스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많은 중생들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수행정진 한다.

구인사 도량이 내 집이요, 내 가족이 있는 안방이 법당이다. 우리 모두 정진하여, 이웃을 돌볼 줄 아는 불자가 되고,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면 좋겠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유년(丁酉年) 새봄 새다짐

昌潭 김정환 / 서울 관문사 기획위원

관문사에 들어오다 보면 좌측에 모셔놓은 석상(石像)이 하나 있는 것을, 관문사 신도님이라면 다 보셨을 겁니다. 이 석상은 당나라 시대 조과선사(鳥窠禪師)이신데, 이 스님에 얽힌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학자인 백낙천이 하루는 조과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조과선사라는 분은 나무에서 참선을 하시는 분으로 유명하였는데, 그 분의 명성을 듣고 찾아간 것이지요.

절에 찾아갔을 때 그 날도 조과선사는 나무에서 참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백낙천이 한참을 기다리다가 기침을 하고는 선사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스님 위험한 것 같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대도 위험한 것 같구려. 마음에 자만이 꽉 차있으니까 말이지요.”

한번 무안을 당한 백낙천은 오기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공자와 맹자가 가르친 대의는 충이나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불교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불교의 대의는 바로,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基意) 시제불교(是諸佛敎)입니다.” 즉 “악한 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지 말고, 착한 일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받들어서 행하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그 뜻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백낙천이 말하였습니다. “스님 그것은 누구나 아는 것 아닙니까?” 스님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 살 아이도 알지만, 팔십 노인도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수행(修行)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천(實踐)이라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지난 동안거(冬安居) 대중설법에서 “계행(戒行)에 있어서 한 가지 법을 실천하는 그 마음자리가 만법(萬法)이 공(空)한 자리요, 한 가지 법이 무너지면 만법(萬法)이 무너지는 자리이니 마음자리 잘 정해서 기도 많이 하시라.”고 법을 내려 주셨습니다. 어렵겠지만 ‘천 리(千里)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수계법회(受戒法會)에서 큰스님께서 내려 주신 신도오계(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의 실천 덕목을 관음정진(觀音精進)과 함께 차분하게 하나하나 실천해서, 높고도 넓은 공(空)한 마음자리인 보리법계(菩提法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상월원각대조사

 

세상 가장 낮은 자들의 등불 되는 삶

김유진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로

“안녕하십니까. 세상 가장 낮은 자들의 등불 되는 삶을 살고픈 수험번호 473번 김유진입니다.”

이렇게 수백 번 되뇌며 면접장 문을 두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병원 입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신규 간호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십여 년 전의 나는 참으로 힘겨웠다. 학창시절 음악을 전공했던 나는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꿈을 접게 되었다. 장사꾼처럼 삶을 흥정하며 불투명한 미래의 무게를 저울에 달고 혹독한 값을 매기며 나는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내게 필요한 것은 힘껏 고함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이었다. 정처 없이 방황하다 도착한 그 곳에서 나는 문상비둘기처럼 목 놓아 울었다. 내 울음이 숲의 끝에 자리 잡은 절에 닿길, 관세음보살의 귀에 닿길 기도하며 정근했다.

그러던 중 보게 된 〈보왕삼매론〉의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로써 성현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선율이 되어 내게 범람해 왔다. 처음으로 내 병을, 병을 물려준 부모님을, 이깟 병에 무너져 꿈을 포기한 나 자신을 미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법구경〉에서 “사람이 기쁨과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생명을 아프게 하거나 해치지 마라. 살아있는 것들의 아픔을 없애주고, 죽음에서 살려 주는 일을 즐겨하면 훗날 반드시 행복의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했다.

싹이 난 감자를 맛본 것처럼 마음이 아릿해졌다. 내가 아팠기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아픈 이를 어루만져 주고 그들을 사랑하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행복은 북극성처럼 늘 그곳에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성별, 질환, 인종, 국가의 벽을 넘어 이 세상 가장 낮은 자들의 등불 되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이 신념을 가슴에 오롯이 품은 채 나는 간호사가 되었다.

아직도 사회에서 소외되어 버려진 아이들, 독거노인, 노숙자, 난민들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은 십 년 전 내가 있던 터널보다 더 어두컴컴한 곳에서 아파하고 있다. 그 아픔을 보듬고 어둠을 비추는 등불 되어, 함께 밝은 미래를 그리는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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