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264호)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불교계 잡지기자라고 명함을 건네주면, 이따금씩 종교보다 ‘나 자신’을 믿는다며 미리 선을 긋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으로 ‘자기를 믿고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라고 생각만 할뿐 잠자코 있는다. 쓸데없는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불교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생뚱맞다고 느껴지니까. 무엇보다도 내 스스로 그들과 불교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다.

어느 날, 한 불교단체에서 주최한 시상식에서 큰 상을 받은 사람을 인터뷰하던 중에 자신의 이름과 소감을 쓰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 난 그가 상을 받은 것을 기뻐하기는커녕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았다. 또, 불교 행사에 초대된 내빈들이 으레 시작하는 인사말이 있다.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크고 작은 행사를 취재하며 ‘포교’도 불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불자들의 포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낸 말이 아닐까. 하지만 이 말은 관계에 집착하지 말고 순리에 맞게 살아가라는 뜻이지, 포교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불자들은 불교가 좋은 줄은 알지만, 남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준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단지를 자기 방에다 꼭꼭 숨겨놓고 혼자만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남에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내 것이 닳거나 사라지지도 않는데 너무나도 조심스럽다. 포교를 하려는 내 자신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남들에게 불교를 알린다고 해서 내게 특별히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만 된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포교란 각자 능력껏 다른 사람들에게 불교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이 평생 하신 일이 ‘포교’였고, 우리들도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불교를 처음 알게 되지 않았던가. 지혜와 방편을 갖추신 부처님도 사람마다의 특성(근기)에 맞추어 설법하시고자 평생을 애쓰신 만큼, 불자라면 불법승 세 가지 보물을 혼자서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더 많은 도반들이 다함께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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