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 싯다르타이야기(264호)

카필라 성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송아지와 어린 양들이 풀을 뜯고 있어요. 참이와 꽁이는 샤카족 아이들과 술래잡기하고 있었죠. 따뜻한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옵니다.

 

“샤프란 향기다. 찾으러 가자!”

꽁이가 뛰어가는 아이들에게 소리쳤어요.

“꽃은 찾아서 뭐하게~ 더 놀자~”

풀밭에 누워있던 맹이가 벌떡 일어났어요.

“같이 가~”

키 큰 나무가 하늘을 드리운 숲속으로 들어가자 새소리가 들리는 곳에 옹달샘이 보이고, 보라색 샤프란 꽃밭이 펼쳐졌어요. 바구니 가득 꽃을 딴 아이가 말했어요.

“내가 제일 앞에서 꽃길을 만들래.”

참이가 물었죠.

“꽃길은 왜?”

“오늘 왕자님이 태자가 되시는 날이잖아”

아이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놀기 좋아하는 꽁이와 맹이는 손뼉을 쳤어요.

“와, 잔칫날이다.”

꽃바구니를 든 샤카족 아이들이 우르르 언덕을 내려가자 참이와 꽁이, 맹이도 신나게 성문 앞으로 달려갔어요.

성문 앞에는 벌써 많은 백성들이 모여 있었어요.

모두 평화로운 얼굴이에요.

“올해도 풍년이 들것 같어.”

“맞어, 태평성대지. 이게 다 태자마마 덕이여.”

풍악을 울리며 왕과 왕비의 마차가 성문을 나서자 아이들이 꽃을 뿌렸어요. 왕비 곁에 앉은 싯다르타는 태자 보관을 쓰고 있었답니다. 황금색 비단 옷에 금실로 수놓은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르고, 팔목과 발목에는 황금 고리를 둘렀으며, 작은 금방울이 달린 가죽신은 앙증맞았어요.

“어쩜! 늠름하기도 해라.”

“왕비께서 손수 태자를 돌보신대요. 건강하게 잘 키우셨네.”

마야왕비의 동생인 새어머니 마하빠자빠띠는 화사한 미소로 백성들에게 답했어요. 참이와 꽁이, 맹이가 힘껏 소리쳤어요.

“태자님~ 훌륭한 분 되세요~”

걸음마를 시작한 싯다르타는 황금 안장을 얹은 숫양을 타고 궁전 뜰에서 사촌들과 놀았어요. 그의 곁에는 항상 국사의 아들 우다이와 마부 찬나가 있었답니다.

일곱 살이 되면서 태자를 교육시킬 학교가 세워졌어요. 함께 공부 할 500명의 샤카족 아이들도 선발되었죠. 싯다르타는 베다와 우파니샤드 경전과 외국어·문학·수학·천문학·정치학·경제학·음악 등을 익혔고, 말 타기·창 다루기·활쏘기 등 29가지 무예를 닦았답니다. 싯다르타는 큰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듯 스승의 학문을 받아들였어요. 어느 날은 고문서를 읽던 스승이 어려운 문장에 막혀 생각에 잠겼을 때, 넌지시 글자를 알려줘 스승을 놀라게 했죠. 무예에도 뛰어나 시합이 열리면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어요. 싯다르타는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답니다.

태자궁 창가를 기웃거리던 꽁이는 놀라운 걸 봤나 봐요.

“책상 위에 책 좀 봐. 저걸 몽땅 어떻게 머릿속에 넣지?”

“스읍, 난 책만 펴면 잠이 오더라.”

맹이는 잠이 덜 깼나 봐요. 참이는 그저 웃지요.

“후후, 부처님이 되실 분이잖아.”

책장을 넘기던 싯다르타가 담장너머를

바라보았어요. 멀리 히말라야 산비탈에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죠. 함께 책을 읽던 우다이는

물끄러미 싯다르타를 쳐다봅니다.

“우다이, 눈이 녹고 있어. 이맘때쯤이면 백성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

“너도 모르는구나. 찬나를 불러야겠어.”

그러나 찬나는 싯다르타를 연회장으로 모시고 갔답니다. 풍성한 상차림, 화려하게 치장한 귀족들, 흥겨운 음악, 춤추는 무희들, 그리고

술과 웃음. 싯다르타는 눈길을 돌려버렸죠.

“찬나야, 말을 가져오너라.”

따가운 봄볕에 바싹 마른 들판이 펼쳐졌어요.

윗옷을 벗어던진 맨발의 농부가 자신만큼이나 마른 소의 등짝을 채찍으로 후려쳤어요. 소가 쟁기질을 하면 새 떼들이 내려앉아 흙속에서 발버둥 치는 벌레들을 쪼아 먹었죠. 순간 싯다르타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어요. 싯다르타는 말에서 내려 농부에게 다가갔어요.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조금 쉬었다 하세요.”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는 걸요.”

싯다르타는 당신 같은 왕족과 귀족들 때문이야, 라며 외치는 듯한 농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요. 배를 채운 새들이 후드득 날아가자 매 한 마리가 새들을 향해 날아갔어요. 싯다르타는 발길을 돌렸답니다.

“찬나야, 산 것끼리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구나. 강한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 세상이었어. 궁에서 편하게만 살아온 내가 부끄러워.”

싯다르타는 홀로 숲으로 걸어갔어요. 가지가 무성한 잠부 나무 아래에서 두 다리를 포개고 깊은 생각에 잠겼지요.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고요한 숨결에 몸을 맡긴 싯다르타는 흔들림이 없었어요.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연회장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어요. 왕과 대신들이 태자를 찾았지만 명상에 든 싯다르타를 방해할 수 없었어요. 기우는 해가 잠부 나무 뒤에 걸리자 싯다르타의 몸이 찬란하게 빛났어요. 왕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낮추었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 절을 하게 되는구나.”

싯다르타가 천천히 눈을 떴어요.

“아바마마, 저는 이제 눈물과 고통을 일으키는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겠어요.”

한참이나 숲속에서 지켜보던 참이가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얘들아, 태자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들었어?”

기지개를 켜며 꽁이가 대답했어요.

“탐욕이 싫다고 한 것 같은데?”

맹이는 눈을 비비며 묻네요.

“탐욕이 뭐야?”

참이가 조용히 말했어요.

“지나치게 욕심 부리는 걸 말해. 명상에서 깨달으셨나 봐. 우리도 해보자.”

세 친구들이 싯다르타처럼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눈을 감자 산들바람이 불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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