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264호)

이진숙

199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원숭이는 날마다 나무에서 떨어진다〉, 〈판다를 위하여〉, 〈발가락이 그립다〉 등이 있다.

 

저는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선생님의 얼굴 또한 기억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모든 것을 기억해내기엔 제가 너무 어렸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정규교사가 아닌 방과 후 주산을 가르치는 키 작고 술주정뱅이에 가까운 초라한 얼굴의 남자선생님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종종 있고, 그때마다 선생님의 안부와 선생님의 쓸쓸한 인생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입니다. 저는 주산부의 학생이 되어 합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주산이 굉장히 인기 있는 특별활동이었습니다. 주산의 급이나 단을 따게 되면 취업이 보장되는 시절이었지요. 방과 후 학습장소로 가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주전자와 술값을 주시면서 심부름을 시키시는 겁니다. 술 한 주전자와 오징어 한 마리, 그것은 제가 주산부 활동을 그만 둘 때까지 변함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오징어 다리는 심부름 값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알코올에 탐닉하는 선생님이었지만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주산 훈련은 계속되고, 밤이 되면 선생님과 학생 모두가 한 방에서 잠을 잡니다. 선생님께서 가운데 누우신 가운데 여학생과 남학생이 서로 반대편으로 자리해서 자는 것입니다. 우리 여학생들은 선생님 옆에 눕는 것이 거북하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선생님 곁에 누울 학생을 정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세 끼 밥을 제대로 먹는 집이 거의 없었고, 한 방에서 조부모와 부모, 자녀가 함께 생활하는 집도 제법 있었기 때문에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러한 합숙환경에 크게 신경 쓰는 학생이나 부모는 없었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군것질감이라고는 색색으로 물들인 단물이나 볶은 콩 정도가 있었을 정도의 어려운 살림살이였으니까요.

가끔은 길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거나 저녁을 집에서 먹고 오는 경우지요. 선생님은 이미 술에 취해서 길거리를 헤매고 계십니다. 신고 있던 슬리퍼 한 짝은 벗겨져 반대편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안타까워 반대편 길로 가서 슬리퍼 한 짝을 주워다가 선생님 발 앞에 놓습니다. 선생님은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실 뿐입니다. 저는 마음이 흡족하여 합숙장소로 가서 선생님을 걱정합니다.

술에 취해 합숙장소로 돌아오신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합니다. 술 취한 기색은 전혀 없습니다. 연습문제 한 문제를 틀릴 때마다 우리는 책상 위에 올라가서 종아리를 맞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역시 무지몽매한 학습 환경이라고 비난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의 매를 맞았다고 생각할 뿐 선생님의 손찌검이나 욕설이나 비난의 말을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새벽 4시가 되면 술꾼 선생님과 어린 학생들은 눈을 비비며 정좌합니다. 집중력이 필요한 암산은 새벽에 연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드시는 선생님이시지만 새벽 4시의 기상 시간을 어긴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지독한 술꾼인 데다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고 어설픈 인생 실패자처럼 보이는 분이었지만 선생님께서는 분명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우리는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주산부를 떠날 때까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이 들어 그때의 선생님보다도 훨씬 나이가 든 지금에도 말입니다.

요즘 같은 SNS 환경이라면 선생님의 그러한 행적은 그 인생이 끝장이 나고도 남을 정도의 비난을 받을만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의 고뇌가 무엇이었을까를 먼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그 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나쁜 선생이 되는 것은 좋은 선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세상이 찬바람 쌩쌩 부는 폭풍의 언덕이라고 느끼며 서로를 비난하고 가슴아파합니다. 자기 자식이 수업시간에 손을 들었는데도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여 자식의 선생 머리채를 잡습니다. 자식이 정신적인 미성숙아가 된 것은 선생님이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주어지고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고받는다는 말 자체가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 이전의 인간과 인간끼리의 믿음과 교감이 훨씬 더 소중한 덕목일 것입니다.

선생님, 오늘도 어디에서 막걸리 한 되 받아놓고 삶의 고독함과 그 오묘한 이치를 들여다보고 계시는지요? 선생님과 함께 했던 고적한 오후의 졸음 섞인 따스한 햇살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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