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264호)

남녘에서 시작한 봄소식이 온 국토를 덮었습니다. 봄꽃의 향연은 여실히 희망의 새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꽃길만이 아니어서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또 경제대로, 우리에게 희망을 줘야 할 대상들이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멀리 가 있습니다. 희망을 포기한 이들이 절망을 이야기하는 현상들이 사회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매화입니다. 사군자의 하나로 군자를 상징하며 봄의 전령사인 매화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예찬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시경(詩經)〉에 ‘梅經寒苦發淸香(매경한고발청향)’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매화는 추위를 겪을수록 더욱 맑은 향기를 낸다는 뜻입니다.

매화가 군자의 상징인 것은 결코 화려함이나 또한 지나친 향기 때문이 아니라 추위가 채 가시기 전 추위 속에서 홀로 피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시경〉에는 ‘人逢艱難顯其節(인봉간난현기절)’이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그 절개가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들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극복할 것인가 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즘 거리를 지나다보면 형형색색의 연등들이 거리에 내걸린 것을 보게 되는데,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졌음을 실감케 하는 현상이지요.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면서 우리 불자들이 가장 많이 헌등하는 등이 연등 일것입니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이유는 진흙 속에 피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어니불염(淤泥不染)의 덕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흙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물들지 않기 위한 연꽃의 노력이 바로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고, 더 나아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어느 해보다 좀 특별하게 여겨지는 4월, 우리 국민의 ‘애송시’ 한 편을 읽어 봅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우리가 잘 아는 미당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입니다. 가을에 피어난 국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렸을 시. 그래서 국화가 피는 가을에 회자되는 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을에 아름답게 피어난 국화는 소쩍새 우는 봄에 새싹이 돋아나고, 천둥치는 여름 비바람 속에서 자라났기에 무서리 내리는 늦가을에도 아름다운 자태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봄을 상징하는 매화와 더불어 국화도 군자의 상징인 사군자 중 가을을 상징하는 꽃이군요. 그러고 보면 희망이라거니, 행복이라거니 하는 결과는 결코 환경이 만들어 준다거나 남이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이지만 올해는 좀 더 그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는 지혜로운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매화가 추위 속에 피어나듯,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듯, 한 송이 국화꽃도 고통을 감내한 결과이듯 말입니다.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그 절개가 드러난다’ 하였으니, 우리의 의지가 이 세상을 희망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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