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19년 간 40만 명에 자장면 공양

지역 어르신들이 대구 대성사 '무료급식소'에서 자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다.

한 달 두 번 금요일 무료급식
매월 1600명 어르신 자장면 공양


양파 썰며 눈물 흘려도
“항상 어르신들 생각 1순위”

“대성사가 무료급식을 시작했던 1998년부터 지금까지 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처음 먹었던 그 맛 그대로야. 맛이 아주 기가 막혀. 이제는 대성사 자장면 먹는 재미로 살고 있어. 허허허.”

대구 대성사(주지 영제 스님) 무료급식소에서 지난 4월 14일 만난 여든에 가까운 한 할아버지의 자장면 예찬이다. 하루 전날인 13일 오후 7시, 대성사 공양간인 향림당에서는 다음날 만들 800인분 자장면 재료를 준비하기 위한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익숙한 듯 삼삼오오 모여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이날 이들이 다듬을 재료는 밀가루 20kg 5박스, 양파 2망, 감자 1박스, 애호박 1박스, 양배추 5망 등이다.

먼저 대성사 전 간부인 이종욱 봉사자가 자장면의 면을 뽑기 위해 밀가루 반죽 작업을 진행했다. 이종욱 봉사자는 20kg 무게의 포대에 담긴 밀가루를 능숙하게 반죽기계에 털어 넣고, 그간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손대중으로 소금 간을 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에 하얀 밀가루가 묻었지만 개의치 않고 손으로 몇 번 턴 후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이종욱 봉사자는 밀가루를 기계에 담으며 “제가 봉사활동 경력만 24년입니다.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재미가 나더라고요. 자장면 반죽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혔죠.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 세상은 이렇게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웃어보였다.

이종욱 봉사자가 정성들여 만든 반죽은 무료급식소를 총괄 지휘하는 황필수 사업위원이 대형 플라스틱대야에 넣어 비닐을 덮은 후 잘 숙성되도록 꾹꾹 눌러준다. 밀가루 반죽이 준비되는 사이 여성봉사자들은 자장면에 들어갈 채소인 양파ㆍ감자ㆍ애호박ㆍ양배추를 물로 씻고, 껍질을 제거한 후 채 썰어 한쪽에 모아 놓는다. 양파 껍질을 벗길 때는 모든 봉사자들이 매운 양파로 인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짜증을 부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두 시간에 걸쳐 준비된 800인분의 자장면반죽은 숙성이 잘 되도록 부엌 한편에, 채소는 상하지 않도록 저온창고에 보관했다.

늦은 시간까지 재료를 준비했던 한 봉사자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봉사자들은 우리가 만든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성사 무료급식소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들은 대성사신도회 서구ㆍ남구ㆍ북구ㆍ중구ㆍ달서구ㆍ성서구 등 6개 지회, 합창단, 유치원 자모회 및 교사, 대구금불대학생 등 대성사 소속 신행단체들이다. 이외에도 대구 지역 내 봉사단체인 코끼리봉사단, 참사랑실천 대구세관봉사회, 성당동 새마을부녀회 등이 무료급식 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대성사 무료급식소가 운영되는 14일 오전 9시. 이른 아침부터 자장면을 만들기 위해 봉사자들이 다시 모였다. 먼저 전날 밀가루를 반죽했던 이종욱 봉사자가 잘 숙성 된 반죽에 옥수수 전분을 골고루 바른 후 길게 펼치기 시작했다. 전분은 반죽이 들러붙지 말라고 뿌린다. 면발을 쫄깃하게 하기 위해 반죽 펼치는 작업을 4~5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기계에 넣어 가느다란 면발을 뽑는다. 면이 준비됐다면, 채 썰어 놓은 야채를 볶을 차례다. 야채를 볶을 기름은 돼지고기 비계를 사용한다.

“돼지고기 비계로 기름을 내면 식용유로 볶는 것보다 훨씬 맛이 고소해집니다. 30~40년 전에 쓰였던 전통방식이죠. 또 저희는 어르신들 건강을 생각해 조미료도 과하게 쓰지 않습니다. 원래 조미료를 아예 쓰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 입맛이 조미료에 익숙해져 사용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황필수 위원의 설명이다. 돼지고기 비계에서 기름이 나오자 이 기름에 양파ㆍ감자ㆍ애호박ㆍ양배추를 충분히 볶아낸 후 건진다. 남은 기름에 자장면의 하이라이트인 춘장을 넣고 볶자 순식간에 먹음직스러운 자장 냄새가 향림당에 가득 찼다. 자장에 볶은 채소ㆍ다진 마늘ㆍ고춧가루ㆍ설탕ㆍ물 등을 넣고 황 위원이 최종적으로 간을 맞춘다. 여기에 자장이 응고되게 물에 푼 갈분을 부어주면 마침내 맛있는 자장소스가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자장소스에 미리 뽑은 면발을 익히고, 채 썬 단무지를 올려놓으면 19년 전통의 대성사표 자장면이 완성된다.

이 시각 어르신들은 자장면을 나눠주는 시간(낮 12시) 보다 두 시간 정도 앞서 하나둘 향림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한 어르신에게 점심시간보다 일찍 온 이유를 묻자 “지금이야 이렇게 한가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장면 먹으러 오는 사람으로 북적거려. 늦게 오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일찍 와서 기다리지.”라고 답했다. 어르신의 말처럼 오전 11시가 넘자 400석에 가까운 자리는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늦게 온 어르신들은 향림당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황필수 위원은 어르신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어르신들이 공양간에 들어오는 시간을 제지하지 않는 이유는 혹여나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들어올 때 넘어질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서로 자리에 먼저 앉으려고 밀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하면서 “굳이 우리가 인원정리를 하지 않아도 어르신들 스스로 질서정연하게 잘 앉는다.”고 웃어보였다. 황 위원의 설명처럼 어르신들은 본인들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빈자리를 채우며, 차분히 자리에 앉아 자장면이 나오길 기다렸다.

대성사 무료급식소는 IMF 초기인 1998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매월 둘째ㆍ넷째 주 금요일에 지역 독거어르신ㆍ소외계층ㆍ실직자 등에게 자장면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매주 금요일에 자장면 공양을 제공했다. 초기에는 두륜산공원에서 진행했는데, 대성사에 향림당이 마련된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하루 평균 8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찾아와 자장면을 먹는데, 지금까지 19년 동안 무려 40여 만 명이 넘는 인원에게 자장면을 공양했다.

이날 자원봉사에 참여한 ‘참사랑실천 대구세관봉사회(회장 나두영)’와 ‘코끼리봉사단(단장 김현의)’은 완성된 자장면을 부지런히 어르신들에게 배달했다. 봉사자들은 자장면 한 그릇을 어르신에게 전해줄 때마다 “맛있게 드시고, 항상 건강하세요.”라고 덕담했다. 자장면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먼저 전해졌고, 이어 들어온 순서대로 어르신들에게 전달됐다. 어르신들은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열심히 비빈 후 양념소스까지 남기지 않고 맛있게 드셨다.

10년 전부터 대성사 자장면을 먹었다는 한 어르신도 “일반적으로 밥은 주위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자장면은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해서 자장면 무료급식이 반갑다. 또 대성사 자장면은 사서먹는 것과 달리 조미료도 별로 안 들어가고, 봉사자들이 정성을 쏟아서인지 훨씬 맛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1박2일에 걸쳐 마련된 800인분의 자장면은 급식이 시작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뒷정리를 마친 황필수 위원은 “주변의 다른 무료급식소들은 정부나 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 그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지원 받는 곳의 입김이 들어가게 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대성사 무료급식소는 100% 신도회의 기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항상 어르신들을 1순위로 생각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대성사 무료급식소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이어 황 위원은 “앞으로 여력이 된다면 예전처럼 매주 자장면 공양을 하려 한다. 어르신들도 그걸 원하고 있다. 또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이 좁게는 대성사를, 넓게는 천태종을 대구 뿐 아니라 전국에 알린다고 생각한다. 이런 게 바로 포교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대구의 상징이 된 대성사 무료급식소의 자장면 공양. 대구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봉사단체로 시민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길 바라며,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과 고통 받는 이들이 없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봉사단체가 되길 기대한다.

대성사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자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자장면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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