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펴들면 제일 먼저 부고란부터 살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의 가족이 작고했다면 빠지지 않고 문상(問喪)하였습니다. 그리곤 진정으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을 같이 했습니다. 그의 나이 40이 채 되기도 전에 그는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해 최연소 상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가 남다른 창의력이나 기획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최고 경영자의 친인척도 아니고 학연·지연도 전혀 없는데 해마다 인사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되면 그의 이름이 추천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는 그의 문상에 있었습니다. 그는 문상을 형식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예의 바르게 애도를 표하고 꼭 자기 명함을 꺼내 주었습니다. 상주 역시 찾아올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생소한 안면인데도 품 넓게 찾아와 조문해주니 남다른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먹고 사는 재주가 있습니다. 능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능력은 부족하다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저마다의 독특한 재주가 숨어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그러므로 재주가 없다고 하여 자신을 비하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장자(莊子)〉 ‘산목편(山木篇)’에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말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쓸모가 있다는 뜻입니다. 장자가 산길을 가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꾼이 그 나무를 베려고 하지 않자 궁금해 장자가 까닭을 물으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좋지 못하기 때문에 그 타고난 수명을 다하게 되는구나. 무용지물이란 아무 데도 쓸모없는 물건을 말한다. 그 무용지물이 오히려 유익한 쪽으로 존재하는구나.”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재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앞에 예로 든 사람은 솔직히 말해 자신의 약점을 잘 극복해내며 인간관계를 형성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고란을 활용하여 지인의 가족들이 겪어야 할 슬픔을 찾아 조문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쁜 일상생활의 시간을 쪼개는 것도 그렇지만 결코 작은 실수라도 해서는 안 될 장소와 상황을 묵묵히 소화해 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이념이 혼재하고 있는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려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별한 노력이란 자신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직결됩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문이 있습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마다 문이 있고 모든 행복과 불행의 단초는 이 문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이 문단속을 잘 해야만 패가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엄격한 자기관리는 듬직한 인간관계를 쌓아나가는 토대가 됩니다.
문(門)은 여러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학벌일수도 있고, 지연 또는 혈연일 수도 있으며 직장·가족·친지·친구와 동창 등 친분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하는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은 사람 관계에 있어서 옷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가령 대학교수든 종교인이든 사회에서 보다 격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사람일지라도 예비군복을 입었을 땐 똑같아진다는 얘기와 통합니다. 즉 신분을 잠시 잊고 무리와 동화돼야 어울릴 수 있다는 의미인데 함께 노상방뇨를 즐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어울림의 동화’를 위해서 옷 속에 가리어진 자신의 신분을 이때만큼은 잊고 지냅니다.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만남을 잊거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낭패스런 일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는 한 번 만난 사람은 반드시 기억해 다음 만남의 자료로 활용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 얼굴과 이름 기억하는 것에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는 어떤 사람은 첫 이미지와 연상어를 메모함으로써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데 활용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자신을 알리는데도 주효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을 함께 기억합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만났음에도 그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을 무심히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항상 친근하게 제자들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사이가 더욱 신뢰와 친근함으로 두터워졌던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법으로 볼 때 동시대를 사는 인연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옷깃 한 번 스치는 인연도 예사롭지 않은데 하물며 동 시대에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지중한 인연입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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