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마치 한낮의 꿈과 같다.”
조선 후기의 월창(月窓)거사 김대현(金大鉉, ?∼1870)이 쓴 〈술몽쇄언(述夢言〉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은 한낮의 꿈과 같을 뿐만 아니라, 허공에 핀 한 송이 꽃과도 같다. 월창거사는 조선 말기를 살았던 거사로 〈선학입문〉과 〈술몽쇄언〉이라는 두 권의 명저를 남겼다.
1975년 무렵, 23세의 젊은 나이에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다. 당시는 삼중당문고, 삼성문화문고, 을유문고, 범우문고 등 문고판이 유행하던 시절이다. 〈술몽쇄언〉은 을유문고에서 1974년에 출판되었는데, 나는 문고판을 모으는 재미로 이 책을 샀었다. 그런데 이 책의 부제인 ‘꿈과 인생’이라는 문구가 승복을 입고 있던 나의 마음에 다가왔고, 푹 빠져들게 되었다.
인생이 ‘몽환과 같고(夢幻泡影)’, ‘아침 이슬과 같다’고 한 〈금강경〉의 알 듯 말 듯한 구절과 다르게, 이 책은 실화를 읽는 것처럼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후 나는 ‘무상성’ 등에 천착하며 니힐리즘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나이가 든 지금에는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인생을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있다.
〈술몽쇄언〉은 월창 거사가 어느 날 한낮에 창가에서 졸다가 꿈을 꾸고 나서 쓴 인생에 대한 수필집이다. 삶, 인생은 마치 한낮의 꿈과 같다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뭘까? 그는 “하루는 창가에 누워 졸다가 꿈을 꾸었는데 잠이 깨어 사람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이에 그것을 적어 〈술몽쇄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자질구레해서[言] 꿈 깬 사람에게는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장자를 번역한 남만성 선생이 이 글을 번역하고 각 단락에 대한 해설을 붙였는데, 그야말로 명번역, 명해설이었다.

“꿈속에서 남과 원수를 맺어 분노와 원한을 이기지 못하다가, 잠이 깨어서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환각(幻覺)이고 마음은 허망할 뿐이다. 원수도 없고 원망할 자도 없다. 실로 나를 원수로 하는 자 없는데 내가 원망한 것은 스스로 망작(妄作)일 뿐이다. 내가 진실로 망작하지 않으면 실로 원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 진실로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고 스스로 반성한다면 모든 것이 다 꿈이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백세(百世)에 걸쳐 맺어진 인연도 한 생각으로 소멸된다.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술몽쇄언〉 中 구원(仇怨)

무상성은 인생을, 인생은 무상성을 의미한다. 무상성을 벗어나는 방법은 유한한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것밖에는 없다.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깨고 나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아련한 영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허망함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인생은 몽환, 무상, 허공에 핀 꽃이다. 그러므로 우리네 삶의 관건은 어떤 꽃을 피울 것이냐, 그 꽃을 어떻게 가꿔갈 것이냐다. 기왕이면 많은 것들을 탐구해 보고, 이기(利己)보다는 이타적인 삶을 살면서 무상 위에 핀 꽃을 최대한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방일하지 말고, 남을 의식하지 말고, 무언가에 몰입해야 한다. 우리의 화두는 꿈과 같은 허망한 인생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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