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요, 천태수행(263호)

축원문 중에 “사백사병(四百四病) 일시소멸(一時消滅)”이란 구절이 있다. 우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병(病)을 일시에 소멸시켜 줄 것을 기원하는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병장수하는 것을 바라지만,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것이 병고이고, 어느 새 우리 앞에 놓인 약병은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고전(古典)에 불로초(不老草)를 구한 사람이 있었다 한다. 이는 아마도 늙음 자체보다 늙고 병들어 죽는 ‘병사(病死)’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우리가 일생 동안 안고 살아야 할 것이 병이라면, 그 원인과 정체를 바로 알 때 병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서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하고 경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병이 있다고 하거나, 또는 사백사병(四百四病)이 있다고 한다. 팔만사천이란 수효는 보통 부처님이 베푼 팔만사천의 법문이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팔만사천 번뇌의 병을 다스린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고, 많은 불교 경전에서 우리가 가진 병고의 수효를 사백사병이라 밝히고 있다.

〈불설불의경(佛說佛醫經)〉에 의하면, 우리 몸의 네 가지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부조화(不調和)에 따라 네 가지 병이 생기는데, 이 사대요소에 각각 101가지 병이 일어나, 결국 4병으로부터 404병을 일으킨다고 설하고 있다.

사대(四大)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요소로 오온(五蘊) 중의 색온(色蘊)이고 나머지 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薀)은 정신적 요소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오온이 인연화합으로 이루어지므로 오취온(五聚蘊)이라고도 한다.

천태대사는 〈마하지관〉의 ‘병환경(病患境)’에서 인간의 몸은 지·수·화·풍의 사대를 이룸으로써 이미 병환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대는 마치 이웃한 네 나라와 같아서 서로 침범하고 훼방하되 힘이 균형을 이루면 바로 잠시 화평하다가 허한 때를 타서 바로 합병하여 삼켜버린다.

이렇듯 인간의 몸은 사대의 부조화에 의해 병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 병이 생기는 원인을 사대의 부조화에서 찾고 있는데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은 대개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사대에는 각각 고유의 품성이 있기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설이다. 〈구사론〉의 사대설에 의하면, 인체는 지(地)의 견고한 성품으로 유지하고, 수(水)의 습한 성품으로 섭수(攝受)하며, 화(火)의 따뜻한 성품으로 성숙해가고, 풍(風)의 움직이는 성품으로 증장시킨다는 것이다. 사대가 몸을 이루는데 병이 난 것은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어긋나 있기 때문이라 한다. 곧 지대는 수대를 막고 풍대는 지대를 흩트려 놓으며, 지대는 풍대를 차단하고 수대는 화대를 멸하고, 화대는 수대를 끓인다고 한다. 서로 서로 침해하는 것이 마치 상자 속에 네 마리 독사를 넣어둔 것과 같다. 그중에 강한 것이 약한 것을 해치니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런 사대의 성품 외에 어떤 요인에 의해 사대 요소가 각각 증가하고 감소함으로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불의경〉에서는 지(地)가 증가한다면 힘이 일어나고, 풍(風)이 증가하면 기(氣)가 일어나며, 화(火)가 증가하여 열이 나고, 수(水)가 증가하여 한기가 일어나 병을 유발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의 네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평형을 이룰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의학서로 꼽히는 허준(許浚, 1546∼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석가세존이 말하기를 “지(地)·수(水)·화(火)·풍(風)이 화합하여 사람을 이룬다. 근골(筋骨)과 기육(肌肉)은 모두 지(地)에 속하고, 정(精)·혈(血)·진액(津液)은 모두 수(水)에 속하며, 호흡과 체온은 모두 화(火)에 속하고, 영명(靈明)과 활동은 모두 풍(風)에 속한다. 그러므로 풍이 멎으면 기(氣)가 끊어지고, 화(火)가 없어지면 몸이 싸늘해지며, 수(水)가 마르면 혈(血)이 없어지고 토(土)가 흩어지면 몸은 상한다.”고 하였다.

조선 중기의 의인(醫人)으로 명망이 높았던 허준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속에서 중생의 치병 구제를 위해 〈동의보감〉을 편찬했고, 이후 〈동의보감〉은 조선과 동양 의학의 중요한 교재가 되었다. 〈동의보감〉은 이와 같이 불교의학의 내용도 일부 수용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내경편 태식법(胎息法)에 천태지관 법문이 인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허준은 불교의 사대설을 인용하여 조화와 부조화로 신체의 병이 생기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사대요소에 각각의 품성이 있고 그러한 품성의 작용으로 병이 생긴다면, 허준은 이들 요소는 일종의 기운[氣]의 조화와 부조화로 사대병을 야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상양자(上陽子)설에서는 “지기(地氣)가 왕성하면 뼈가 쇠처럼 굳고, 수기(水氣)가 왕성하면 정(精)이 옥처럼 맑으며, 화기(火氣)가 왕성하면 기(氣)가 구름처럼 퍼지고, 풍기(風氣)가 왕성하면 지혜가 신(神)처럼 늘어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정(精)-기(氣)-신(神)의 해석은 〈동의보감〉에서 중시하는 연단(鍊丹) 양생(養生)의 수양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대에 생기는 병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천태대사는 병을 알아내는 의사에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상급의 의술은 소리를 듣고 알 수 있고, 중급의 의술이라면 그 사람의 형색[色]을 보고 알 수 있으며, 하급의 의술이라면 맥(脈)을 진찰하여 병을 알아낸다고 하였다. 오늘날의 한의학 진료법에 비추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듯하다. 사대에 생기는 병에 대해서는 형색을 보아 진찰하는데, 사대가 증장하여 움직일 때[四大增動病相]라고 한다,

사대 가운데 만일 지대가 증가하면 종기가 생기고, 무겁게 가라앉고 마르고 야위는 등의 101가지 병을 초래한다. 수대가 증가하면 담이 끓는 심화병(心火病)이 생기고, 배가 부풀고 소화불량이 되어 배탈·설사를 하는 등 101가지 병이 생긴다. 만일 화대가 증가하면 오한·고열이 나고, 사지의 마디마디가 모두 아프며 입이 틀어지고 코가 막히며 대소변이 설사하거나 불통하는 등 101가지 병이 생긴다. 만일 풍대가 증가하면 몸이 허하여 매달리며 덜덜 떨리고 쑤시고 아프며 가렵고 답답하거나, 갑자기 부어서 구토가 나고 기침이 거슬려지고 숨이 급해지는 등 101가지 병이 생긴다.

또한 형색을 보아 얼굴에 광택이 없고 손발에 땀이 없으면 이는 간장병의 모습이고, 얼굴이 파랗고 창백하면 심장병의 모습이며, 얼굴색이 검은색으로 변하면 폐병의 모습이고, 몸에 기력이 없는 것은 신장병의 모습이며, 몸이 거칠어서 보릿겨와 같다면 비장의 병이 생긴 모습이라고 한다.

천태대사는 이와 같이 사대의 부조화로 생기는 병은 오장(五臟) 등의 신체 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원인을 찾아 지관(止觀)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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