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등불이 되어 준 초발심(263호)

 방귀희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 동국대 불교철학과를 졸업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석사, 숭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장애인문화진흥회 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1996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7년 한국여성지도자상, 2008년 자랑스런 한국장애인상, 2011년 조계종 불자대상 등을 수상했다.

 

 

어머니는 보살

어머니는 항상 장애인 딸 때문에 죄인처럼 사셨다.

공양주 보살처럼 회색 몸빼 바지에 겨울에는 무채색 스웨터를, 여름에는 모시로 만든 개량 한복을 입고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아버지가 건축업을 하셨기에 엄마는 인부아저씨들의 점심과 새참을 해대기 바쁘신 데다, 모든 일상생활이 엄마 손에 의해 이루어진 딸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엄마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엄마의 무한 희생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당시 우리 사회는 대학에서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아 엄마는 딸의 대학 입학을 위해 대학마다 찾아가서 호소하고 거부당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입학지원서를 사갖고 오셨다. 나는 사회적 차별에 분노심도 가질 줄 몰랐던 풋내기였다. 그저 공부만 하면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렇게 나약하고 의존적이던 나를 대학에, 그것도 불교공부를 할 수 있게 인도해 준 것은 어머니께서 불심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장애를 가진 딸이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게 하는 데는, 재산보다 지식 그리고 사람과 어울리는 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것이었다.

최근 나라를 뒤흔든 이화여대 부정입학 게이트를 보면서 정말 우리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새삼 통감하며 좋은 부모란 금수저로 태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훈육해 주는 부모라는 것을 알았다. 그 딸은 엄마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많은 장애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초발심

나는 불교를 사찰이 아니라 강의실에서 접하였다. 나는 불교를 종교로서 체험한 것이 아니라 이론으로 공부하며 습득하였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초발심은 수행을 거쳐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해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초발심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생각하느라고 한참을 머뭇거렸었다. 생각해보니 나의 초발심은 어머니로부터 시작하였다. 엄마의 가장 큰 나들이는 1년에 단 한번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가는 일이었다. 새해 달력을 펴며 가장 먼저 살펴본 날짜가 초파일이고, 초파일을 앞두고는 옷을 손질하고, 미장원에 가서 파마도 하셨다. 그리고 초파일 며칠 전부터는 밥상에 고기 반찬이 오르지 않았고,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 언행을 자제하셨으며 전날에는 목욕탕에 다녀오는 등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셨던 것이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부처님은 신성한 존재이고 불교 신앙은 인간을 선한 삶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식구들이 아무리 많아도 종교는 불교로 통일이 되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불자로 사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나는 불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장애인문화예술에 도움을 많이 주시는 분이 “올해 내 목표는 방귀희 씨를 교인 만드는 거야.”라고 하였다. 순간 머릿속이 찌르르 했다. ‘내가 불자로 보이지 않게 행동했나?’ 하는 자괴감이 일었다.

이후 나는 보다 착실한 불자가 되자고 굳게 마음먹고, 그 동안의 태만함을 반성하였다. 불자다운 불자가 되기를 스스로 다짐하며, 면모를 갖추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수시로 책꽂이에서 불교 경전을 꺼내어 읽었다. 어느 날 마주친 이런 경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며
이치가 명확할 때는 과감히 행동하라.
제 몸을 위해 턱없이 악행하지 말고,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라.’

<잡보장경>에 나오는 이 부처님 말씀은 지금의 우리 상황에 너무나 딱 맞는 교훈이다.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면 되는데 알고 있는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의혹이 커지는 것이고, 진실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했기에 정의가 사라지고 불법이 횡행한 것이니 말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무릎을 치며 공감하면서 깨닫게 한다. 내가 불자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농담으로라도 개종 요구를 받으면 ‘나는 불자입니다.’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가난한 협회를 운영하다 보면 후원자들에게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려고 내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였던 때가 있었다. 확고한 신념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런 요구를 했을 것이다. 우유부단해 보이는 나의 모습에 어머니께서 가장 마음 아파하셨을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여 혼자서 크게 외쳐본다.
“나는 불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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