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무소의 뿔처럼 263호

불교공연 연출가 이상종

'불교'와 '사람'과 '축제'를 사랑하는 불교문화인이라 자부하는 이상종.

1991년 공연기획과 연출 일을 시작해 1996년부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2호 연등회의 모태가 된 연등축제의 기술자문을 하고 있다. 2001년부터 회당문화축제·청량사 산사음악회를 비롯한 다양한 불교계 공연문화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 다수의 불교계 공연과 행사의 연출 감독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 위탁운영도 맡고 있다. 현재는 (주)스태프미래의 대표이사, 문화복지연대 공동대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문화예술홍보위원회 위원이다.

불교공연 연출가의 길

울릉도 지역 최고의 문화축제로 자리 잡은 회당문화축제.

나는 ‘불교’와 ‘사람’과 ‘축제’를 사랑하는 불교문화인이다. 그리고 불교문화 가운데에서도 불교축제와 행사연출을 전문으로 하는 불교예술인이다. 글을 시작하고 보니 연출가로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30년이 다되어간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래서 이번 기회는 어쩌면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귀한 시간을 갖게 해 준데 감사하며 불교공연 연출가로서 보낸 내 인생의 보람과 기쁨, 그리고 희망과 이상을 정리해 지금부터 진솔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릴 때부터 불자였던 나는 사람이 본질인 축제와 항상 가까이해서인지 몰라도, 난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특히 연출가로 보낸 지난 30여 년 동안 불교와 문화로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지금도 자주 만나,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일상의 추억과 성장을 동시에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인연 덕분에 이제는 연출가의 역할 못지않게 불교문화컨설턴트로서의 역할도 커졌다. 지속적인 문화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단일 작품을 연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내 신념을 많은 문화주최자들이 깊이 공감해주었기 때문이다. 또 그래서 어떤 일을 한 번 맡게 되면 보통 단발성으로 끝나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계속적으로 그 인연을 이어간다.

문화주체자들의 노력

폐사지 보전법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를 마련한 폐사지 투어 콘서트.

문화의 진정한 본질은 사람에 있다. 따라서 그 종단과 사찰이 지닌 나름대로의 문화를 올바로 성장시키려면 소속된 문화주체자들의 문화마인드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불교문화 전체가 고르게 성장하려면 각각의 문화주체자들이 서로 깊이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자 철학이다.

이러한 내 소신과 그간의 노력, 그리고 주변 인연들의 공감과 배려 덕분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대부분 서로 교류하며 처음에 비해 꾸준히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운동에 동참했던 많은 문화예술인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난 바로 이것이 문화가 가진 진정한 힘과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가끔 이런 자긍심이 들 때면, 복된 일들에 인연되게 해주신 부처님께 감사하며, 스스로에게도 작은 격려를 보낸다.

이렇게 난 불교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항상 사랑하다보니 회사의 주력사업 역시 불교축제와 문화연출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게 아니다. 사업과 연출기획의 폭이 자칫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염려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과론적으로 나와 우리 회사는 차세대 불교문화가 지닌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있으며, 그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교문화의 틈새를 공략한 판단과 노력은 지금도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늘 확신한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이 있기까지 난 연출가로서 아주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어떤 문화의 매력이나 연출 포인트를 발견하면 회사 경영자로서의 이성적 판단보다, 연출가로서의 감성적 판단이 더 앞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현재 한국불교 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문화아이템이 모두 나와 우리 회사의 손을 거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성장한 ‘연등회’

2012년에 지정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의 어울림마당.

그 중 일부만 들면 1996년부터 시작해 지금은 국가무형문화제 제122호가 된 ‘연등회’를 시작으로, 2001년 시작해 국내 최고의 산사음악회로 자리 잡은 ‘청량사 산사음악회’, 울릉도 최고의 문화축제인 ‘회당문화축제’, ‘폐사지 보존법’ 제정을 이끌어 낸 ‘폐사지 투어콘서트 달오름음악회’, 한국불교 1번지인 조계종과 조계사의 대부분의 문화행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 운영 대행, 제28차 WFB(세계불교도우의회) 서울총회 개막식과 교성곡 ‘회당’을 비롯한 대부분 문화행사 등 분야도 다양하고 폭도 매우 넓다.

그런데 이 중 특히 연등회, 청량사 산사음악회, 회당문화축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함께하고 있지만, 이른 바 수익만을 생각하고 덤벼드는 ‘단순 이벤트업자’라면, 한 번은 맡아도 절대로 두 번은 맡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고 힘든 행사다.

이 중 먼저 이야기하고픈 행사는 1980년대 여의도 제등행진으로 출발해 1994년 ‘연등축제’란 이름을 거쳐, 이제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성장한 ‘연등회(서울)’다. 이 축제는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과거 신라 연등회와 고려 팔관회의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 축제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행사다. 이 행사는 나를 문화, 특히 불교문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제대로 눈 뜨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2014년 2월 ‘연등회’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순간은 나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불교문화인으로서도 내 인생에 있어서도 한 획을 긋게 한 사건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더 전개하기 전에, 이 글을 빌어 불교와 문화에 인연되게 해주시고 늘 많은 가르침을 주신 지현 스님께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아무튼 이제 연등회는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행사는 힘들고 까다로운 요소들이 많이 있어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지금까지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서울 연등회는 도심 한복판에 해당하는 동국대운동장부터 종로 전 구간을 행사장으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진행 뿐만 아니라 안전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 축제에 자율적으로 참가하는 불교계 종단, 사찰, 단체가 200여 개나 되기 때문에 이들과의 소통, 지도도 세심하게 진행해야 한다.

또 서울시·종로경찰서 등과의 행정 협의, 각종 방송·여행사·타 종교계·대외민원 등 많은 부분을 항상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이 행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약 3개월 간은 항상 예민해진다. 그러나 행사 당일 참가하는 5만 명의 불자와 내외국인 및 일반 관람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때면, 힘들었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이내 일명 아빠미소가 내 얼굴에 가득 채워진다. 나와 함께하는 수백 명의 스태프 역시 이 보람을 이제는 제대로 아는 탓에 그들이 신앙하는 종교와 상관없이 그들은 이미 연등회의 팬클럽이자 진정한 의미의 불자다.

울릉도 ‘회당문화축제’와 청량사 ‘산사음악회’

대표적인 야외음악회의 모범이 되는 청량사 산사음악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추모분위기로 단 한 번 거른 것을 제외하고, 2001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이 축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울릉도 최고의 문화축제다. 이 축제를 열려면 수많은 스태프들과 장비를 싣고 12시간, 운이 나쁘면 18시간여 걸리는 동해 뱃길을 건너야 한다. 그리고 행사기간 내내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싸워야한다. 그러나 시련이 큰 만큼 이 축제는 매년 드라마 같은 기적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 축제의 진정한 기적은 흥행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불교종단이 주관하는 축제지만 섬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마저도 사랑하는 축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울릉도는 문화 소외지역이고, 독도로 인한 예민한 영토문제가 늘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울릉도는 진각종의 종조가 탄생하신 성지의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호국불교 정신을 문화로써 승화시키고, 울릉도에 문화와 복지를 증진시키고자하는 순수한 목적으로 행사를 기획했다. 초기에는 여러 시련도 있었지만 결국 울릉도민들과 이 시기 울릉도를 찾는 모든 관광객들을 반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기적과 감동의 핵심은 대학생 및 청년 불자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회당문화축제는 여타 지방축제와는 큰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무대 준비 못지않게 자원봉사단의 기획과 운영에도 매우 신경을 썼다. 이렇게 사람들의 원력이 점점 커져서인지 회당문화축제는 울릉도의 잦은 날씨 변화로 울릉군 주관의 축제들도 해내지 못한 16년 연속 무사고 개최라는 대기록을 자랑한다. 정말 부처님의 깊은 은혜를 실감하게 하는 행사다.

다음은 국내 최고의 ‘청량사 산사음악회’다. 이 음악회는 기암절벽 위에 만들어지는 무대와 객석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청량산의 풍경을 빛으로 살리는 조명연출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연출이 진행되면 관객들은 마치 부처님의 세계를 본 듯 황홀경에 빠져든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조명과 많은 장비들이 필요한데, 청량산의 험한 산길을 넘어 이 장비를 수송하는 일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게다가 설치도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다. 깊은 산속을 헤집고 다니며 일일이 조명을 설치해야 하는데, 조명설치만 꼬박 3일 밤낮이 걸린다. 그래서 비바람이 심하거나 작업 막바지가 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체력과 인내심은 늘 한계에 달한다. 관객들 역시 이 음악회를 보려면 엄청나게 가파른 산길을 올라와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는 행사 시작 10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는 관객들도 있다. 그렇게 모인 1만여 명의 관객들이 탄성을 자아낼 때면 지나간 힘든 시간은 청량산의 구름처럼 삽시간에 사라진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난 확실하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바로 고생은 스스로 선택하면 고행이 되고, 시련은 지혜로 바라보면 법문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난 지금까지 이 일을 통해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것이고, 고행의 길에서 불교문화인으로서의 내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늘 곁에서 함께하고 있는 주변의 인연을 통해 무한한 감동과 사랑의 의미도 배운다.

물론 내가 하고 있는 불교문화 관련 일은 대중화·사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 누군가가 이 길을 간다는 것은 일구지 않은 자갈밭을 맨발로 걷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신념과 열정으로 함께한 많은 이들의 걸음은 이제 번듯한 길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로 인해 앞으로 불교문화의 가치와 가능성은 무한히 넓어지리라 본다. 연등회를 비롯한 지금의 1세대적 불교문화콘텐츠들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며,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난 앞으로 우리 전통의 흥겨움을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려 한다.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하나 되어 우리의 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대동놀이를 체계화하고 널리 보급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궁극적인 숙제로 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늘 초심을 살피고, 나와 뜻을 같이하는 선지식들을 더 찾아내고 가까이하며 설득하는 일을 해나갈 것이다.

끝으로 아직은 덜 성숙된 불교문화포교의 최전선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우리 ‘STAFF 미래’ 식구들과 불교문화 관계자 모두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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