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호 금강단상

“엄만 지그이(지금이) 정말 소중한 행복이란다. 사랑한다. 아들 건강하게 웃으며 살거라.”, “행복한 내 어들(아들) 엄만 행운야. 다정한 서방 되그라(되거라).”, “내 아들 항상 행복하거라. 엄마 아들여서 고맙고 만이(많이) 사랑한다.”

오늘도 엄마는 서른이 넘은 아들에게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틀린 채 문자를 남긴다. 나는 늘 그렇듯이 문자를 확인한 후 핸드폰을 닫는다.

몇 년 전 엄마는 나에게 “아들, 엄마도 문자 보내는 것 좀 알려줘.”라고 살갑게 부탁을 했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 버튼을 누르면 문자로 가고, 이렇게 하면 글자가 써지고…….” 하면서 대충 알려드렸다. 그래도 혼자서 이것저것 눌러보시더니 지금은 문자메시지를 곧잘 쓰신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바꾸셨는데, 돈 안 드는 메신저를 쓰지 않고 지금도 항상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어느 날 취재가 있어서 노인복지관에 간적이 있었다. 복지사 선생님들과 한 할머니 집을 방문했는데, 성인 어른이 한 명 누울 정도의 공간만 있는 원룸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할머니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들여 아들 집을 장만해 줬고, 아들과 함께 살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정이 생겨 아들이 이 방을 구해주고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그래도 아들 녀석이 작지만 이렇게 지낼 공간을 마련해 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말과 다르게 쓸쓸함과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를 만나고 난 뒤 복지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복지사 선생님은 “그 방 월세가 20만원이에요. 할머니 연금이 20만원인데 그 돈이 고스란히 월세로 들어가요. 그런데 그 방마저 아들이 본인 명의로 해서 아들이 보증금을 빼갈까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고 계세요.”라고 상황 설명을 해줬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을 할머니의 말로(末路)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갑자기 엄마의 문자가 생각났다. 엄마의 문자를 보면 한 자 한 자 아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 엄마의 정성을 나는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다. 내가 답장이 없어도 엄마는 지금까지도 “아들 사랑해.”라고 정성껏 문자를 보내고 있다. 답장 없는 문자를 보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엄마에게 살가운 문자와 전화를 드려야겠다.

마지막으로 <금강> 2월호 ‘가족이 함께 배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자비경> 경구가 생각난다.

‘마치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목숨 바쳐 사랑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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