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내뱉는 말은 내 마음의 표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구업(口業)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욕설이 방송과 SNS에도 난무하고 있습니다. 유명연예인이 방송에서 욕설을 해 화제가 되고 있고, 구독자가 40만에 이르는 한 유튜브에서는 방송진행자가 한 장애인을 비하하고 욕하는 장면을 생중계해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스마트폰용 카카오톡에서는 청소년들의 욕 대화가 화면을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더욱이 충격적인 사건은 수업시간에 서로에게 욕을 해보라고 시킨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이 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본 종의 제2대 종정 대충대종사님께서는 “말은 마음의 꽃이다. 차라리 말을 안하면 다른 사람이 모르지만, 일단 말을 내뱉으면 그 결과는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옛사람들도 “말은 내면의 거울이요, 인품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언어습관은 곧 그 사람의 인품과 직결됩니다.

불교에선 흔히 삼업(三業)을 기본교리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으로 짓는 것을 신업(身業)이라 하고, 말로 짓는 것을 구업(口業), 생각으로 짓는 것을 의업(意業)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이 삼업을 얼마나 올바르게 단속하고 다듬느냐를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입으로 짓는 구업엔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거짓말하는 망어(妄語)입니다. 둘째가 사람 사이와 관계를 이간질시키는 양설(兩舌)입니다. 셋째가 욕설과 남을 험담하는 악구(惡口)입니다. 거친 말과 남을 헐뜯는 험담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질 등은 건강한 사회를 해치는 대표적인 악구(惡口)에 해당합니다. 넷째는 이치에 어긋나는 궤변을 늘어놓는 기어(綺語)입니다. 이들 4가지 입으로 짓는 구업은 단순히 사람의 감정만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분노를 야기하게 되면 살상을 부르게 되고, 위화감과 갈등을 조장해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사람은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태어난다.”며 함부로 구업을 짓지 말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함경〉에서는 착하게 말하는 것을 제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착하게 말하는 것이 제일이니 이는 곧 부처님의 말이로다. 험담하지 않고 사랑으로 말하는 것 그 다음이고, 거짓 없이 진실한 말이 세 번째이며, 법답지 않음을 피하는 법다운 말이 네 번째니라.”

부처님은 말과 관련하여 사람에겐 네 가지 부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새를 비유해 말하면, ‘구시라’는 소리는 좋은데 모양이 추하다고 했고, ‘새매’는 모양은 좋은데 소리가 좋지 않고, ‘올빼미’는 소리도 추하고 모양도 추하며, 이에 반해 ‘공작새’는 모양도 좋고 소리도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네 가지 부류가 있는데 첫째, 얼굴은 잘 생기고 행동은 점잖으나 법(法)을 외우지도 못하고 받들지도 않는 사람은 모양은 좋은데 소리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몸은 비록 허름하고 행동거지는 뛰어나지 못하나 항상 법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스스로 받들어 행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소리는 좋은데 모양이 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계행(戒行)도 지키지 않고 법을 듣지도 않으며 혹 들었다 해도 바로 잊어버립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양도 추하고 소리도 추합니다. 넷째, 행동거지도 뛰어나고 얼굴도 단정하며 법을 항상 받들어 행하고 조그마한 허물이라도 부끄러워하며 고쳐 나갑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양도 좋고 소리도 좋은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소리’란 ‘말’을 의미합니다.

과거 한 중앙일간지에서 ‘사회품격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평균 품격지수를 100점을 만점으로 제시했는데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는 36.6의 낙제점을 주었습니다. 이 가운데 정치인의 언어 품격에 대한 점수가 28점으로 조사 항목 중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또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말을 기준으로 한 네티즌 품격은 32점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아름답지 못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입이 사나운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훈계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로 그를 훈계하였습니다.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보살은 사슴으로 태어났다. 이때 어미사슴이 제 아들사슴을 보살에게 보이면서 ‘오빠, 이 조카사슴에게 환술 좀 가르쳐 주세요.’ 부탁해 시간을 정해 공부하도록 하였으나 조카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곱 번 경계하였으나 나타나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사냥꾼에게 잡혀죽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야기를 마친 후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조카사슴은 저 입이 사나운 비구이고, 누나는 연화색이며 훈계한 사슴은 바로 나다. 그때에도 말을 듣지 않아 죽임을 당하더니 금생에도 마찬가지다.”

착한 말을 하도록 사나운 말에 대한 허물을 지적하면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거칠고 사나운 말이 판치는 시대에 착한 말을 씀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불자들이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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