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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이야기는 치유다
  •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과 교수
  • 승인 2017.02.2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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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삶의 지혜와 혜안 담겨
웃음 속 본뜻 놓쳐선 안돼

지난 겨울은 추위에도 유난히 뜨거웠다. 나라안팎의 이슈뿐만 아니라 내 근황도 역동했다. 거리와 내 몸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였다.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소나무, 목련, 감나무, 철쭉 등이 있는 들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몇십년 만에 눈을 치우며 땀도 흘렸다. 그리고 ‘불교설화와 마음치유’를 주제로 신간을 출간했다. 그동안 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다듬고 묶어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보듬길 소망했다.

삶의 이야기 속에는 이슈의 답이 있는 듯하다. 이야기는 치유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씨줄날줄이 되어 공감하고 하모니를 이룰 때는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마음치유의 목적뿐만 아니라 지음(知音)과 나누는 이야기에는 인생의 참맛이 우러나온다. 이는 침체되거나 들뜬 마음에 균형을 잡아준다.

흔히 몸도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지불식간 무시한 몸이 저항을 할 때쯤이면 병원 신세를 지기 마련이다. 타인과 마음을 나누듯 내 몸과 만나는 참맛의 시간이 필요한 때를 알려준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몸의 이야기는 곡진하고 간절하다. 독감이 유행하는 환절기를 건너며 이사와 집필로 무리한 탓인지 어깨 통증과 감기로 고생을 했다. 그래서 분주함을 멈추며 몸의 어법에 주의를 기울이고, 새 봄을 준비하는 햇살의 온화함에도 마음을 열어야 했다.

빅터 플랭크(1905~1997)는 ‘미래’를 중심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다. 그가 쓴 <죽음의 수용소>는 냉혹한 엄동설한보다 더한 나치의 참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체험수기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겠다는 보다 큰 목적을 가짐으로써’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존이 가능했다고 밝힌다. 자신의 ‘이야기’가 스스로를 지킨 힘이 되었다. 나치 수용소에서 통찰의 지혜를 얻은 그는 인생의 여정이 갖는 의미를 세 가지로 전한다. 첫째는 창조성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성취하고 공헌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둘째는 만남과 경험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연과 문화적 체험을 아우르는 만남의 활동이다. 셋째는 운명과의 투쟁이다. 고난에 자포자기하는 게 아닌 극복하는 의지를 말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있어서도 시련을 감내하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의미를 찾아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삶의 이야기는 리뉴얼(재생)이다. 자신을 새롭게 디자인한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주인공은 삼십 미터나 되는 긴 담장의 페인트칠을 즐거운 놀이로 변형시킨다. 친구들은 주인공의 페인트칠에 환호하며 동참하려 한다. 동네 아이들은 서로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돈을 내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힘겨운 일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활동으로 재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는 즐거움과 재미라는 힘의 지지대이다.

〈백유경〉은 우화로 꾸며졌다. 부처님 가르침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난해한 교리 중심에서 벗어나 재미난 비유로 엮여진 경전으로, 삶의 지혜와 혜안을 제시한다. ‘옛날……’로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지혜의 참맛이 배어 있다. 하지만 웃음만 남고 이야기의 본뜻을 놓친다면 실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위트가 주는 위로와 함께 올 한해는 내 몸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가 전하는 인생의 참맛을 공유하는 따뜻함을 소망한다. 언 길이 녹아서 발걸음은 가볍고 산뜻하다. 봄은 희망의 상징이며 상실과 좌절의 대치법, 새로운 시작의 명약임이 분명하다.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과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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