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란 질문의 연속
하지만 질문 기피하는 세대
탐구정신 되살리기 급하다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선 경력부터 따지면 훨씬 더 오래됐지만, 전임교수로 가르친 세월도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매년 봄이면 방금 고등학교 교복을 벗은 새내기들을 맞이한다. 나는 아무래도 변화가 늦은데 매년 새로 맞는 학생들의 성향은 꽤나 가파르게 변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목격한 청년 학생들의 변화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걱정스러운 것도 있다. 긍정적인 변화로 가장 두드러지게 목격되는 것은 체격과 영양 상태가 좋아졌다든가 국제적인 감각이 풍부해지고 이른바 선진강국들에 열등감 없이 기죽지 않는 당당함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청년실업사태로 잔뜩 쭈그러들어 있는데 무슨 소리냐 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직은 취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내몰리지는 않는 재학생들을 두고 얘기하는 일반론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노파심 때문일까, 그런 긍정적인 것들보다는 걱정스러운 변화가 더 무겁고 심각하고 생생하게 목격되는 게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교육자로서 내가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학생들의 변화가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사회성 약화를 꼽을 수 있다. 이른바 ‘팀플’을 싫어하는 것이 그 증상의 하나이다. 한 15년 전까지만 해도 세 명씩 조별로 탐구활동을 해서 과정과 결과를 발표하게 하면 재미있게 임하곤 했다. 그런데 점차 그런 수업활동에 심드렁해하는 기색이 짙어지더니 급기야 조별활동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밝히면 수강신청을 우수수 취소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이른바 혼밥, 혼주, 혼놀 등 온갖 일상 활동을 혼자 하는 것을 편해 하는 세태도 같은 증상일 것이다. 함께 활동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향이 사회생활에 긍정적으로 반영되기는 어려울 것이니 걱정이 된다.

또 하나 심각하게 걱정이 되는 추세는 입이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느껴지던 현상이지만 갈수록 심해진다. 아무리 채근을 해도 질문을 안 하며, 자기가 알고 생각하는 것을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공개발언은 물론이고 교수와 단둘이 얘기하는 자리도 기피한다. 학문이란 게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질문을 하고 말을 해봐야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무엇을 더 알아야 할지 알아차릴 수 있는데,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발동되지 않는 셈이다.

그 원인의 일단은 기계적인 정답 찾기 기술만 익히게 하는 수능시험이라는 대학입시제도에 있다. 학교 시험도 그에 따라 온통 정해진 답 찾기 문제로 점철된다. 수능시험 대비훈련을 시킬 뿐이지 학생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오히려 생각을 차단시킨다. 정답 외우는 기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미래의 동량들에게 창의적인 지식활동의 출발점이 되는 질문을 빼앗아버리고 정해놓은 답만 외우게 하여 생각의 싹을 밟아버리는 교육현실을 어찌할까, 한숨이 나온다.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일이 무엇인지, 더 직설적으로는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일으키고는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을 머물게 하고 항복시키느냐’는 등의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서 스승에게 들이대듯 질문을 퍼부어 설법을 이끌어내던 옛 사람들의 진지하고 용감한 탐구정신을 어떻게 해야 오늘의 청년학생들에게서 살려낼지, 나부터가 일개 월급쟁이로서의 교수를 넘어 선지식 흉내만이라도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급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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