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무소의 뿔처럼(262호)

불교 사진가 하지권.

팔만대장경 사진촬영 통해
불교와 인연 맺은 지 16년

1971년생. 경일대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샘이깊은물〉과 불광출판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화엄사 화엄석경 사진 복원 디지털화 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외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여러 사찰에서 불교 관련 사진작업을 해왔다. ‘절집’을 주제로 두 번의 사진전을 연 바 있으며, 사찰음식과 불교문화에 관한 여러 도서에 사진을 담당하여 출판했다.

카메라 장비를 차에 싣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출장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사진쟁이로 살아온 기억들이 영화필름처럼 떠오른다. ‘사진이란 뭘까?’로 시작한 생각은 불교사진가로서의 작업과 삶으로 옮겨간다. 늘 그렇듯 모든 생각들은 산사에 도착한 후에야 멈춘다. 주섬주섬 카메라 장비를 챙기고 사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산사의 아름다움을 찾아 절 깊숙이 들어간다.

팔만대장경과 함께한 8년

나는 삼십대를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함께 보냈다. 천 년의 시간을 담아온 고려대장경의 시간 한 편에 나의 30대도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2001년. 잡지사 ‘뿌리깊은나무’에서 월간 〈샘이깊은물〉 사진기자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전부터 일하고 싶던 잡지사였고, 마침내 소망을 이뤄 젊은 패기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었지만 운명은 다른 길로 이끌었다.

“대장경 찍어 볼래?”

지금은 고인이 된 사진가 박보하 선배의 말 한 마디에 무작정 따라나섰다. 박보하 선배가 해인사에서 전산화 작업의 일환으로 팔만대장경 사진 복원작업에 착수한 직후의 일이다. 그때 무작정 따라나선 8년의 시간은 불교사진가로 살아가는 밑거름이자 인연이 되어 주었다.

셔터막이 찢어지도록 찍다

당시 복원 작업에 사용된 카메라는 600만 화소의 디지털팩을 장착해 촬영했다. 무한 반복되는 작업이어서 단조로움 때문에 오랜 기간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카메라 역시 8만 장이 넘는 경판을 촬영하려면 앞면 뒷면 계산을 해도 최소 16만 컷을 촬영해야 했다. 어느 날 기어코 카메라의 셔터막이 찢어지고 말았다. 불가피하게 작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올라가 고쳐서 내려왔다.

경판을 한 장 한 장 찍다보면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경판 끄트머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각수(경판을 새긴 사람)의 글씨를 보고 감탄할 때도 많았다. 그 글씨가 어찌나 다양하고 재미있는지, 어느 순간 그 각수와 조우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해인사 장경각까지 밀려들었다. 해인사 스님들은 축구를 좋아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월드컵의 열기로 해인사 마을에는 야외 스크린이 등장했고, 마을사람들은 함께 둘러 앉아 한국팀을 응원했다. 이 때 잠시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 올라가 축구를 보고 내려와 다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불 앞에서 사진촬영을 준비하는 하지권 씨.

봄날 문경 봉암사의 추억

2009년 봄날, 문경 봉암사에 취재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 점심공양을 한 뒤 천천히 경내를 돌아보고 사진촬영을 했다. 나뭇가지에는 새싹들이 피어나고 꽃가루는 봄바람을 타고 날았다. 봉암사 마애불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저녁 공양도 놓쳤는데, 동행한 동료가 공양을 받아 내 방에 가져다주었다. 촬영에 빠져 남에게 신세를 져버리고 말았던 셈이다. 그래놓고도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다시 마애불상 앞에 카메라를 들고 빛이 불상에 닿기를 기다렸다. 푸른 새벽이 물러나고 희양산을 넘어온 햇살이 드디어 마애불에 닿기 시작했다.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부처님 상호에 햇살이 닿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거룩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집중했던 것일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부처님과 만나는 듯 했다. 마애불 옆을 지나가는 시냇물 소리는 묵은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었고, 바위틈 수줍게 핀 분홍빛 진달래는 밝은 빛을 발하며 눈을 맑게 해주었다.

촘촘하게 보낸 산사의 시간

새벽이슬에 젖어 산사에 올라 해질 무렵 노을까지 사진에 담아 절에서 내려오길 16년. 이렇게 자연을 벗 삼고 절집의 문턱을 넘을 때 산사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법당 마루에 카메라와 쓰던 모자를 벗어 놓고 부처님께 촬영 잘했다고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 민망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잠시 법당에 앉아 마음을 쉬었다.

작년 겨울이었던가? 해질 무렵 대흥사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가 울리기 시작했다. 울림을 사진에 담고자 카메라 파인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두륜산을 휘감고 돌아온 울림은 내 가슴에 닿았을 때 떨림이 되었다.

이러한 산사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가슴으로 느낀 감동들이 나의 사진에 순수하게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 나의 마음이 전해졌다면 그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절 사진은 하루아침에 찍을 수 없다. 촘촘하게 보낸 산사의 시간과 비례해 작품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머물러야 절집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불교사진가로 산다는 것

대장경 복원 작업 이후 난 불광출판사에서 월간 〈불광〉의 사진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사찰들을 돌아다녔다. 수없이 얻어먹은 절밥과 수없이 만난 스님들과, 또 이곳저곳에서 보고 들었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지금도 절에 가서 스님을 뵈면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스님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스님과의 지난 인연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권 씨의 작품 중 '송광사'. 산자락 너머로 저무는 태양이 하늘에 화염 불꽃을 뿜어내는 듯 하다.

절 마당을 얼쩡거리는 나에게 보살님이 건네준 떡 한 조각은 불교에 한 발 더 빠져드는 인연이 되었다. 촬영을 마친 후 저녁예불 때 법당에 들어가 합장을 하고 반야심경을 외우며 하루를 정리하는 게 일상이 되게 했다. 이렇게 산사에서 보낸 시간과 마음은 그대로 압축되어 사진에 담겨 있다.

나는 최근 두 번의 국내 전시를 통해 압축된 시간들을 풀어 놓았다. 사진을 본 관람객들은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어본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냥 기다립니다.”

사진집 〈절집〉(눈빛출판사)도 세상에 내놓았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고 축하해 주셨다. 해외전시도 이어졌다. 〈2015 중국 DALI International photography exhibition〉, 〈2016 아르헨티나 FESTIVAL DE LA LUZ〉에 한국 작가로 참여해 한국 불교를 소개하는 기회도 가졌다. 지금은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며, 불교사진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작업 중이다. 조만간 새로운 작업을 통해 대중과 만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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