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요, 천태수행 (262호)

근래 들어 종교계부터 의학계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행하는 것이 ‘명상(冥想, meditation)’이다. 명상은 그 종류도 많거니와 그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명상을 권하는 말은 흔히 듣는 일상어가 되었다. 개인의 건강과 병의 치유, 힐링을 위한 도구로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명상을 이용한 심신 치유 프로그램으로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치료(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MBCT)·변증법적 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 DBT)·수용-전념치료(Acceptance & Commitment Therapy, ACT) 등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명상은 과연 현대인의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인가.

이와 같이 근래에 명상이 크게 유행하게 된 데에는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스트레스를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명상하는 행위만으로는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명상을 통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생각을 심어주며 적잖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 심신의 평안을 얻으려면 그동안 우리를 지탱해 온 삶을 뒤돌아보고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내 몸과 마음이 지금 편안하지 않다면,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고통스러운 상태로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알게 모르게 배인 생활습관부터 정리하지 않고는 명상이라는 약을 써봐야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힘들다.

사람들은 명상을 한다고 앉아 있다가 엉뚱한 생각에 빠지거나, 꾸벅꾸벅 졸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깊은 명상에 들지 못하는 데에는 마음에 다섯 가지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욕망·성냄·졸음·후회심·의심. 이 다섯 가지가 우리의 맑고 편안한 마음을 덮어버린다고 하여 천태대사는 ‘오개(五蓋)’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깨끗한 마음을 덮어버리는 덮개를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대개 명상을 하며 앉아 있으면, 가장 먼저 무언가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른다. 맛있는 음식·옷·돈·권력 등 갖가지 욕망이 일어난다. 다음에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 불만과 집착이 생기며 화가 일어나고, 이런 생각들이 수그러들 때쯤이면 졸음이 몰려와 수면에 빠지고, 졸다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천태수행법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편행을 두고 있는데, 본 수행인 정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방편행을 닦도록 하고 있다. 방편행을 제대로 닦고서야 본 수행의 정밀한 지관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천태대사는 〈석선바라밀차제선문〉·〈마하지관〉·〈수습지관법요〉·〈소지관〉에서 모두 방편행을 닦도록 하고 있다. 자세히는 25방편행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실제적인 준비 수행은 앞서 언급한 오개(五蓋)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낸다는 뜻으로 우리의 모습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을 비유한다. 즉, 지금까지의 낡은 제도나 관습을 고쳐 상태가 새롭게 바뀐 것을 말한다. 동물들이 변화할 때는 허물을 벗는다. 금빛의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허물을 벗어나야 한다. 이런 뜻으로 ‘금선탈각(金蟬脫殼)’이라는 말이 있다. 꼬물꼬물한 애벌레가 자라서 성충이 되고, 금빛 날개를 단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려면 그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 한다. 우리를 덮고 있는 허물같은 마음들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연습이 오개를 버리는 일이다.

다섯 가지 허물 중에 첫 번째는 ‘탐욕의 덮개’이다. 명상을 해보겠다고 큰마음을 먹고 앉아 있는데 명상 중에 문득 탐욕이 일어난다. 이것이 생각생각 이어지면 착한 마음을 덮어 자라나지 못하게 하므로, 이를 느끼면 곧 버려야 한다.

중국 불교소설 〈서유기(西遊記)〉에는 탐욕의 전형으로 ‘저팔계()’가 등장한다. 돼지를 뜻하는 ‘저(猪)’에, 삼가고 경계해야할 8계율을 뜻하는 ‘팔계(八戒)’의 이름은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탐욕의 덮개를 걷어내면 능히 깨달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인지 그를 ‘오능(悟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다소 엉뚱한 성격의 소유자인 ‘사오정(沙悟淨)’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 마음의 행로를 보여준다. 그의 이름에도 고요하고 청정함을 깨달아가는 의미로 ‘오정(悟淨)’이 들어 있다.

천태대사의 〈차제선문〉에는 다음과 같이 욕망의 덮개를 책망하여 버리도록 하고 있다.

“어찌 밖의 욕망을 쫓아 오욕에 침몰하는가.
이미 오욕을 버렸다면 포기하고 되돌아보지 말아야 하느니
어찌 되돌려 얻으려 하는가.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토한 것을 주워 먹는 것과 같구나.
모든 욕망은 구할 때 괴롭고, 얻었을 때는 두려우며,
잃어버리면 슬프고 괴로워 조금도 안락한 곳이 없구나.
모든 욕망에는 이런 우환이 있으니 가책하여 능히 버릴 수 있다면
복과 선성의 즐거움을 얻어서 다시는 욕망에 속아 넘어가지 않네.”

둘째, 성냄의 덮개이다. 우리가 앉아서 명상을 하려고 하면 다시 떠오르는 것이 화내는 마음이다. 화내는 마음의 원인은 단순히 현재의 상황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이 사람은 나를 괴롭히고, 나의 부모를 괴롭히며, 나의 원수를 칭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나 모두 아홉 가지 괴로움[九惱]이 생겨서 화를 내고 원한[恨]이 생겨 마음을 덮어버린다고 한다.

어느 날 제석천이 부처님께 어떻게 해야 안온하고 근심이 없으며, 선근을 얻을 수 있는지 여쭙자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화를 죽이면 안온하고, 화를 죽이면 근심이 없다. 화는 독의 뿌리이고 일체의 선근을 없애버린다.”고 말씀하였다. 자비와 인욕의 마음으로 성내는 마음을 없애고, 마음을 청정하고 안온하게 해야 한다.

셋째, 졸음의 덮개이다. 우리의 밝은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을 ‘졸음’이라 하고, 모든 의식이 어두워져 막혀서 사지가 멋대로 놀게 맡겨둔 것을 ‘잠’이라고 한다. 수면은 무명을 증장시켜 도의 힘을 떨어지게 하는 악법이므로, 항상 가책하여 선정을 덮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대지도론〉에는 “매일 어둠이 들어오면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오듯이, 졸음은 진실을 가리고 속여서 사람의 밝은 지혜를 빼앗아 버린다. 졸음은 마치 흰 칼날이 번득이는 전쟁터에 있는 것과 같고 독사와 함께 방을 쓰는 것과 같이 위태롭다.”고 하였다.

넷째, 들뜨고 후회하는 마음의 덮개이다. 명상을 할 때 전에 행했던 산만하고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 크게 후회하고 걱정하면, 두려움과 후회가 화살이 되어 마음에 단단히 박혀 선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만약 후회할 만한 죄를 행하여 깊이 뉘우쳤다면 다시는 그 일에 대해 두고두고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에 후회가 없어야만 아직 하지 않은 일을 새로이 행할 수 있고, 이미 지은 나쁜 일은 다시 짓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의심의 덮개이다. 의심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요, 둘째 스승을 의심하는 것이며, 셋째 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이 일어나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하지 못하여 근기가 어둡고 무거운 마음이 되므로 이를 경책하여 의심을 버려야 한다. 어떤 사람이 스승에 대해 의심을 품어 “저 사람은 외모가 못생겼고 위엄도 없어서 학문도 높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나를 가르치겠는가.”하는 생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냄새나는 주머니에 금이 들어 있을 때, 금을 갖고자 한다면 냄새나는 주머니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깊은 명상에 들어가기 어렵다. 우리 앞에 있는 여래 갈래의 길 가운데 진실한 법이라고 선택하면 의심 없이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그 길에 대해 의심만 하고 있으면 영영 보배성에 이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