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262호)

베풀어 주신 사랑과 배려를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며 살겠습니다

한국은 겨울이라 매우 추워요. 쿠바는 겨울이 없어 추위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실 것 같아요. 쿠바에서는 내 몸이 버터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 때문에 몹시도 힘들었지만, 매서운 바람 앞에 서니 쿠바의 날씨가 그리워집니다.

짧은 커트 머리, 하얀 피부에 맑은 눈빛을 지닌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딸과 함께 여행을 갔다 온지 벌써 육 개월이 지났어요. 아바나에서 할머니 집에 머물게 된 것은 행운 중의 행운입니다. 할머니는 “우린 한 가족이야.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라.”고 하셨지요. 의사인 며느리는 발을 다쳐 고생하는 우리 딸을 치료해주었어요. 할머니는 얼음찜질을 할 수 있게 얼음주머니를 준비해주셨고요. 우리는 그 따뜻함에 감동했어요.

할머니는 옆집에 사는 다니엘에게 “시간 나면 아바나를 구경시켜주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어요. 옆집이라고 하지만 담과 담 사이가 두어 뼘 정도 밖에 되지 않는지라, 다니엘은 직접 만든 칵테일 모히또나 다리끼리를 담 너머로 건네주곤 했지요.

흥겨운 파티를 열었던 그날 밤을 추억하고 싶어요. 발코니에 하얀색 테이블과 흔들의자 세 개가 들어온 기념으로 우리는 파티를 열었지요. 할머니는 음식을, 다니엘은 음악과 칵테일을 준비했어요. 살사 음악이 흐르자, 아드님과 며느님이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쿠바인들은 음악이 나오면 어디서나 춤을 춘다고 하더니, 정말 자연스럽게 춤판이 벌어지더군요.

저는 마이크 대신 국자를 들고 노래를 불렀어요. 저의 모습에 모두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지요. 저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인데, 아바나의 분위기에 취해서 모히또에 취해 연달아 세 곡을 불렀어요. 이것은 제 인생에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다니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소녀처럼 수줍어하시는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바나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의 웃음소리는 후텁지근한 밤공기를 흔들어놓았지요. 흥겨웠던 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바나를 떠나 쿠바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20일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하고 할머니의 집을 떠났어요.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아바나로 오는 비행기가 2대나 결항을 했어요. 아바나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 나오니 밤 12시였어요. 쿠바가 안전하다고 해도 밤 12시에 여자 둘이서 택시를 탄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지요.

그런데 다니엘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우리는 관세음보살을 만난 듯 어찌나 반가운지 “다니엘~~~”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마중 나가라.”는 할머니의 엄명으로 나왔다는 다니엘의 말에 우리는 배려가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배고플까 봐 식탁에는 치킨샐러드와 볶음밥이 차려져 있었고요. 생각지도 않은 환대에 아마 전생에도 인연이 있었을 거라 믿어요.

쿠바를 떠나는 날, 할머니의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작별인사를 했어요. 할머니의 눈물에 우리는 당황했어요. 민박집의 손님으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데, 어찌 우리에게 이리도 많이 마음을 주셨는지…. 흐르는 할머니의 눈물을 멈추기 위해 저는 국자를 들고 또 노래를 불렀어요. 국자를 든 내 모습에 할머니는 웃고 말았지요.

“너희들은 언제고 쿠바에 다시 한 번 와야 하고, 그때도 꼭 우리 집에서 자야 한다!”는 말씀을 했어요. 여기는 너희들의 집이라면서 숙박비도 받지 않았어요.

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나온 우리는 마치 친정엄마를, 외할머니를 두고 오는 기분이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저는 할머니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따뜻한 정이 흐른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낌없이 주는 할머니의 사랑을 덥석 받기만 한 우리들은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어요.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 한 마디만으로도 여행객의 우수를 달래주기에 충분한데, 치료도 받고, 음식을 대접받고, 파티까지 즐겼으니 이런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오롯이 사랑을 주신 할머니로부터 사랑과 배려를 배웠어요. 제가 받은 것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어요. 할머니의 고운 주름마다 잘 살아온 시간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우리를 기억해주는 할머니가 계시기에 쿠바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어요. 저는 두 번째 파티를 위해 ‘산타 클라라’에서 자줏빛의 마라카스를 샀어요. 다음에 만나게 되면 마라카스를 흔들면서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문윤정
여행작가, 수필가 1998년 <에세이 문학>겨울호 등단. 저서로는 〈마음이 마음에게 묻다>, <답일소>, <걷는 자의 꿈 실크로드>, <터키, 낯선 시간에 흐르다>외 다수. 지금은 여행작가로, 글쓰기 책쓰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