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렿게 ‘기도수행’ 했다 (262호)

불교라는 종교는 깨달은 분의 가르침인 동시에, 모든 중생을 깨닫도록 하여 밝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해주는 가르침이다.

때문에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번뇌를 제거해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수한 번뇌로 말미암아 미혹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생이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수행방법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모든 수행은 번뇌를 제거해서 마음을 정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수행을 하는 데에는 마음이 하나의 경계에 집중통일[心一境性]되도록 하는 삼매(三昧)에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삼매를 ‘정수(正受:바르게 받는다)’라고도 하는데, 좌선삼매이든 염불삼매이든 마음이 하나의 경계에 집중통일하게 되면 모든 잡념이 사라져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하게 되어 불보살님의 진리의 세계와 통하도록 하여 진리를 깨닫거나 불보살님 자비의 신비한 힘의 가피를 입도록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릴 적 우연한 기회에 본의 아니게 수행체험을 한 일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큰 힘이 되고 있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경북 북부지역의 축구명문 춘양중학교에서 2학년 때에 선수로 선발되어 3학년 때에는 축구부 주장이 되어 센터포드를 맡아보았다.

고등학교 입시를 치렀지만, 선수로서 2학년 때부터 합숙생활을 하며 수업도 잘 안 듣고 운동만 했으니 붙을 리가 없었다.

2월 중순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성철 큰스님이 해인사 백련암으로 가시기 전에 잠시 경북 문경 김룡사에 계셨는데, 거기서 할머니 49재를 지낸다고 해서 그곳에 가게 되었다. 큰스님의 시자스님을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성철 스님께서 계신 곳에 가게 되었다.

성철 스님께서 “쟤는 누구냐?” 하고 물으시자, 시자스님이 “내일 49재 지내러 온 학생인데,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집에서 놀고 있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성철 스님께서는 “못난 놈, 불알을 떼어 내삐리라. 명색이 사내대장부가 되어가지고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으면서 자기 앞길도 못 닦는 주제에, 죽은 너의 할매 극락길을 닦아준다고 왔나? 너는 너의 할매 49재를 지낼 자격이 없으니, 49재에도 참석하지 말고 앞으로 일주일간 매일 삼천 배를 하라.”고 불호령을 내리면서, 시자스님에게 “너는 내일 저 애를 49재 지내는 데에 절대로 못 들어오게 해라.”고 분부를 내리셨다.

큰스님이 계신 곳에서 나와 절하는 법을 배우고, 한 배씩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라는 진언을 외우며 가장 원하는 소원을 한 가지만 빈다고 배웠다. 그래서 “부처님, 좋은 고등학교에 붙게 해 주십시오.”라는 소원을 빌기로 하였다. 절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 것 같지도 않았는데, 첫 날 천 배를 해보니, 이처럼 힘 드는 절을 7일 동안이나 한다는 것은 도저히 해낼 수도 없고, 도중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가 없어 절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절이 점점 힘들어졌다. 49재 지내러 온 사람에게 49재는 참석도 못하게 하고, 사람 잡는 절만 시키는 큰스님이 미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절을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불경스럽게도)큰스님에게 욕설이 나오면서 “참으로 더럽게 되었네.”, “정말 재수 옴 붙었네.”라는 생각만 자꾸 나는 것이었다.

절은 계속할수록 더욱 힘들어져서, “여기서 7일 동안 절을 하다가는 정말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하는 것을 그만두고 내일 집으로 내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그냥 내뺀다는 것은 운동선수 출신의 사나이로서 치사한 일이기 때문에 못 하겠다고 말씀은 드리고 집에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큰스님 계시는 곳에 가서 “저는 더 이상 절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절을 왜 못해?” “이대로 계속 하다가는 저는 죽을 것 같습니다. 저는 죽기 싫습니다.” “안 죽는다 이놈아! 그리고 절하는 것은 나하고 약속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하고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너는 절을 다하고 가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절하다가는 죽을 것 같다.”와 “나는 죽기 싫다.”고 하면서 엄살만 피워댔다.

큰스님께서는 절을 다 마치기 전에는 절대로 절 문 밖을 나갈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네가 죽을 것 같다고 자꾸 엄살을 피우는데, 사람이 살려고 하는 절인데 죽기는 왜 죽나? 설사 네 말대로 절하다가 죽는다고 치자. 부처님에게 절을 하다가 죽으면 극락이라도 가지. 그러니 피를 토하고 죽더라도 법당에서 절하다가 죽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큰스님께서 엄하게 절을 모두 마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절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어 2000배를 마친 후 “이제는 마지막 1000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시자스님이 와서 “학생, 오늘이 기도 회향날인데, 큰스님께서 회향날에는 철야하는 법이니, 꼭 철야를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라고 해서 왔다.”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철야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몰라서 “철야가 뭔데요?”하고 물었더니, “학생, 철야를 몰라?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이 철야지 뭐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 철야를 해요? 지금도 기운이 없어서 정신이 없는데, 철야를 어떻게 해요? 그건 진짜 못 해요.”라고 했다. 그러자 시자스님은 “학생, 내가 시키는 것이 아니야. 나는 큰스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 하든지 말든지 학생이 알아서 해.”하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절이기 때문에 철야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힘이 들었지만,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악을 쓰며 견뎌 내면서 절을 계속 했다. 머릿속에는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는 생각이 몇 번씩 스쳐갔지만, 새벽이 되면서부터 창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기운을 내서 절을 계속했다. 그러는 중에 한 번은 절을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에 불상을 보니, 불상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전신에서 형형색색의 무수한 광채를 뿜어내는, 이른바 방광하는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방광은 절을 하는 동안 4~5번 계속 이어졌다. 그 후 날이 밝은 아침이 되어서 마침내 절을 모두 마칠 수가 있었다.

절을 모두 끝냈다는 보고를 드리기 위해 큰스님께 가서 인사를 드리니, 성철 스님께서는 쉽지 않은 절을 잘 마쳤다고 칭찬하시면서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게 된 법문을 해 주셨다. “사람들이 흔히 ‘죽도록 해보았지만 안 되더라’는 말을 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죽도록 해보지 않고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목숨을 떼어놓고 죽도록 하면, 공부든 사업이든 도 닦는 일이든 어떠한 일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법문을 해주시면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 때에는 “그렇게 힘든 절도 일주일이나 해냈지 않았느냐?” 하고 분심을 내어서 목숨을 떼어놓고 공부하라고 격려해주셨다. 절을 마치고 나서 그런지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래, 공부하다가 죽자.”하는 결심이 분명하게 서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려고는 하였지만, 입학시험은 9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운동만 했기 때문에 워낙 기초가 없는 데다가, 고등학교도 없는 산골이라 학원도 없어 배울 곳이 없으니 정말 막막하였다. 그러니 좌우지간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캄캄하기만 하고, 무엇보다도 입학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과의 싸움이니 잠을 안자고 독을 품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깜깜한 밤에 초롱초롱 빛나는 무수한 별을 보기만 하면,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며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사생결단하고 “공부하다가 죽자.”는 마음을 가지고, 그저 읽고 외우는 일을 되풀이 하였다. 여름쯤이 되니 책을 보면 아는 것이 많게 되어,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상당히 많이 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는 책을 보면, 책의 내용이 머리에 저절로 쑤욱 들어오는 것 같았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학은 읽고 외워서 되는 과목이 아니어서 기초가 없는 나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시간은 가장 많이 잡아먹으면서 전혀 이해가 안 되어 어찌 해볼 수가 없으니, 수학 책 앞에 앉으면, 그저 눈물만 흐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달리 방법이 없어서 부처님께 수학을 좀 잘 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도 많이 해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제일 많이 잡아먹는 수학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다른 과목공부를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 생각해서 9월 1일부터는 수학공부를 포기하기로 하였다. 그 작전 덕분으로 그렇게 몇 달을 더 공부해서 결국 서울에 있는 경복고등학교에 합격했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이 성철 스님께서 그토록 가혹하게 절을 시켜 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 날 그처럼 원망스럽게 생각했던 철야정진의 특별선물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죽도록 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35살에 해인사 백련암의 관음전에서 집의 보살과 함께 기도를 하는 중에 힘든 고비를 넘기면서 조그마한 관세음보살상이 미소 지으며 한참동안 방광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러한 체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기도수행의 힘을 믿는다. 본인 스스로 해이해졌다 싶으면 혼자, 또는 집의 보살과 함께 3000배를 하거나 관음정근을 해서 기운을 낸다. 그리고 2003년 금강대학교가 개교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매년 봄·가을로 재학생들의 3000배 정진대회를 이끌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허망하고 못난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도록 수행을 권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3000배 뿐만 아니라 틈틈이 참선과 함께 어머님께서 평생 동안 매일 새벽에 천주 염주를 세 번 돌리며 관음정근을 하셨던 것을 보아 온 터라 관음정근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수행을 하든지 힘이 들지만 전심전력해서 하려고 한다.

주위에서 수행을 하려고는 하는데, 잡생각이 자꾸 나서, 잠이 와서, 다리가 아파서, 허리가 쑤셔서 등등의 한심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수행이 잘 안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루어야 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절실한 문제가 없는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처음부터 수행이 잘 되거나, 수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아서 하는 줄 아는가? 수행이 잘 되든 안 되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지 밀어붙여서 넘겨보면 거기에 새로운 세계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다.

 

권탄준

금강대학교 불교학과 명예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고마자와 대학 불교학부 교환연구원으로 1년간 있었다. 금강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한국불교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화엄경의 세계〉, 〈불교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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