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호 금강단상

지난해 12월 중순 월간 〈금강〉 2월호에 게재할 ‘신심 나는 국토순례’ 취재 차 전남 영광 법성포에 다녀왔다. 지금껏 ‘옛 천태 성지를 찾아서’, ‘산성 순례’ 등 혼자 산간오지를 다니며 힘들게 취재를 했던 터라 매스컴에서 흉흉한 뉴스가 나올 때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지만, 1박 2일 일정을 잡아 혼자 다녀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출장 전날 취재 일정을 정리하다가 문득 “장인어른과 함께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드렸다. 지난해 애지중지하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손녀 등 다섯의 피붙이를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보내고 난 뒤 겉으론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속으론 적잖이 적적해 하셨을 것 같아 바람이라도 쐬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물론 장인어른과 함께하면 출장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심(私心)이 조금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출장에서 산 정상에 있는 마애불을 찾아갈 때 어려움을 겪었다. 혼자 갔으면 자칫 산 속을 헤맬 뻔 했었다. 등산에 있어선 기자보다 훨씬 베테랑인 장인어른이 노련미를 살려 표지판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앞서 헤쳐 간 덕분에 마애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다가 드넓게 펼쳐진 영광 앞바다가 보이는 정자에 잠시 올라섰다. 곁에서 가만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니 ‘동행(同行, 같이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내가 동행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건 참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쳤고, 이는 다시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큰 울림이 되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일러주듯,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함께 하면 더 수월하고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두고 “인생은 다 그런 것,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는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뒤에야 인생의 참 맛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에 적극 동의하는 이도 있을 테고, 그러지 않은 이도 있을 터.

가족이든, 직장 동료든, 인생살이에서 직·간접적으로 맺은 선연(善緣)이라면 모두 자신의 동행이다. 그리고 동행은 나이도, 성별도, 종교도, 피부색도 초월한다. 행복이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처럼, 평생을 함께 할 동행 또한 가까이에 있다.

모질고 험난한 생의 굴레를 함께 헤치고 나갈 나의 동행이 있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동행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삶의 작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동행’은 존재만으로 행복하고 행복하다. 세상사람 모두 “동행이 있어 행복하다.”는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온 우주에 잔잔히 그리고 멀리 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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