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도란도란' 262호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박태우 / 충북 청주시 서원구

인도 성지를 가보면 대부분 벽돌과 큰 무덤 비슷하게 생긴 스투파를 본다. 그러나 그 곳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보면 ‘부처님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후세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큰 건축물을 지었을까?’ 등 여러 생각들이 마음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마하보디 대탑’이다. 쉴 새 없이 오가는 다양한 나라의 순례객들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소중한 가르침으로 이어져 이곳까지 오게 되었고, 나 또한 이 많은 사람들과 같은 길, 같은 가르침 속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환희심을 느꼈다. 또 부처님께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하는 분들을 보며 다양한 기회와 시간이 있음에도 더욱 정진하지 못했던 나에 대해 참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성지순례를 가기 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부처님이 ‘진짜 존재했다’라는 점에 대해서는 믿기 어려웠다. 부처님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믿기 어려운 신화적 존재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지순례를 통하여 부처님 존재에 대한 믿음과 가르침에 확고해진 믿음이 생길 수 있었다.

또한 인도의 문화를 접해봄으로써 부처님 말씀의 다른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직 전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기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순례길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고 있다. 좀 더 오랜 기간 둘러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는 한편, 나에게 다시 한번 더 성지순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려운 상황이 인생살이에 약이 된다
천정희 / 경북 경주시 충효동

요즘에는 직업이 다양한 만큼 직장을 구하기 위한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나 또한 경쟁률 뚫고 직업을 가진 직장인 중 한 명이다. 다른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며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할수록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극복해야 할 일과 갖가지 어려움,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사연들이 몸과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직장생활에 지쳐 있을 때 대학 시절의 일을 떠올랐다. 대학교 4학년 그래픽수업 시간이었다. 첫 수업을 듣는 순간 ‘아주 재미있는 수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한 몸 바쳐 열심히 해 보리라.”는 피끓는 열정이 샘솟았다.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물을 열심히 준비해 제출했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시험 준비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감이 넘쳤고,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에 뛰어드니 상황은 180도 달랐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땐 그렇게 재미있던 분야를 생업으로 삼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현실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급격히 자신감을 잃어갔다. 이를 극복하려 발버둥을 쳤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적으로 계속 위축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이니, 신심으로 이 상황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평소 다녔던 단양 구인사에 가서 기도를 하며, 나의 허물은 무엇이었는지를 반성하고, 현실의 벽을 어떻게 넘어야할지 등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든 생각은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이렇게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용기를 내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것이었다. 인생에는 여러 번의 고비가 있고, 이를 하나씩 극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우리 중생들의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모른 척 한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러웠다.

이번 일을 통해 ‘어려운 상황이 긴 인생살이에 약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덕분에 지금은 큰 고민 없이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도 잘 맞고, 일을 할수록 점점 더 흥미가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현실의 상황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용기를 내 희망찬 내일을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시집을 가는 딸
김임숙 / 부산 금정구 장전동

하나뿐인, 오직 하나뿐인 내 딸이 2월 초에 결혼을 한다. 있는 힘껏 뒷바라지를 해주며 무남독녀인 딸을 키웠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도 보내주고,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취직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딸이 서른을 넘고 마흔에 가까워지니 ‘얼른 시집 안 가나?’하고 애가 탔던 적도 있었다. 딸이 서른다섯이 지나고도 결혼을 하지 않으니, 문득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남들이 며느리나 사위, 손주 재롱떠는 이야기를 하면 무척 부럽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맘이 아프다. 이렇게 때가 되니 결혼을 하는데 그동안 공연히 애태우며 빨리 시집가기를 바랐던 내 자신이 밉다.

결혼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예물을 하고 예식장을 정하고 가구를 사려고 가구점을 같이 다니면서 딸을 키운 지난 서른여섯 해를 되돌아본다.

중학교 교사인 나를 대신해 우리 친정 엄마께서 내 딸을 돌봐주고 길러주셨다. 딸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고 귀여운 재롱을 부리는 걸 봐주신 우리 엄마. 살아 계셨으면 손녀가 결혼하는 걸 보고 정말 좋아하실 텐데, 잘해드리지 못한 것만 생각나고 좋아하시는 거 한 번 더 못 해드린 게 죄송하고 후회만 남는다.

딸은 아주 먼 곳으로 시집을 간다.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서 13시간을 날아서 가는 멀고도 먼 나라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

하나뿐인 저 딸을 멀리 보내고 어찌 살꼬? 보고 싶으면 어찌 할꼬? 마음 내킬 때 달려 갈 수 없으니 어찌할꼬? 딸과 함께 결혼준비를 하며 지나간 날들이 추억이 되어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적신다. 지금까지 못한 말이 가슴에 남아있다.

우리 딸 정말 사랑한다.

쉰세 살의 자화상
김경미 / 충남 천안시 쌍용동

정유년 붉은 닭의 해가 돋았다. 양력 2월 1일은 이 어리석은 중생의 쉰세 번째 생일이다. 음력 정월 초닷새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님께 가장 먼저 감사드리고 싶다. 올해 7월이면 제대를 하는 아들 응우가 내 생일인 2월 1일에 휴가를 나온다니 그것 역시 반가운 일이다. 불자들은 보통 생일날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리고, 도반들과 소소한 세상 이야기를 나누기 마련인데, 이번 생일에는 가족들과 소박하게 보내려고 한다.

내 생일은 설이 막 지난 시점이다. 명절 음식과 떡국, 그리고 여러 가지 부침개는 우리의 미각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내 생일 음식으로 꼭 만들고 싶은 음식은 ‘해물짬뽕’이다. 바닷가 출신이라 바다음식을 좋아하는지라 홍합·조개·미더덕·새우 등 해산물을 듬뿍 넣고서 칼칼한 양념을 더하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휴가 나온 아들에게 꼭 만들어주려고 짬짬이 TV를 시청하면서 만드는 법을 보고 있다. 불교텔레비전을 즐겨 보는데 사찰음식이 요즘 대세인 것 같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세상의 큰 대세는 역시 ‘불법(佛法)’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다니는 사찰인 천안 ‘만수사’는 최근에 리모델링한 예쁘고 단아한 도량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이 인근을 지나다가 사찰에 들린다면 내가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 드리겠다. 다가오는 양력 5월 3일 석가탄신일을 기다리며, 올해도 천안 만수사에 오색의 연등이 화려하게 수놓아지길 상상해보는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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