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를 일구는 사람들(261호)

비단 살아있는 꽃뿐만이 아니다.
‘가화(假花)’라고 불리는 종이꽃 ‘지화(紙花)’ 한 송이도
한 해 동안,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 피워낼 수 있다.

이번 달에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지화공예에 생명을 불어넣는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 회원들을 만나봤다.

석용 스님이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32년 수국사 감로탱화를 연구·복원한 ‘연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계절별로 염료를 엄선해 물들인 덕분에 고운 색이 나왔다. 쑥은 녹색, 머루는 보라색, 치자는 노란색, 지초는 보라색, 쪽은 파란색, 소목은 빨간색, 양파는 연노란색, 홍화는 선홍색, 황백은 황금색으로 쓴다.

잊혀진 문화유산, 지화(紙花)

1900년대에 찍힌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 큼지막한 병풍이 둘러쳐져 있고, 상 위에는 푸짐한 음식이 차려져 있다. 부잣집 아가의 돌잔치 날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한 살배기 사내아이 ‘륭희’ 옆에 아이 얼굴만 한 꽃들이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활짝 피어있다. 자세히 보면 꽃봉오리 크기며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한지에 물을 들여 만든 지화(紙花)다.

지화는 사람들의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부터 무속신앙, 궁중연회, 불교의례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어김없이 등장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경사스러운 잔칫날이나 엄숙한 장례식에서 기쁨을 더하고, 슬픔을 나누는 존재였던 지화.

꽃이 귀한 시절에 지화를 생화 대신으로 사용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예나 지금이나 지화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지화는 지체 높은 양반 댁이나 비교적 부유한 집안, 국가에서 주최하는 큰 축제나 경건한 신앙의례에서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천태종 사찰에서는 지금도 영산재ㆍ천도재ㆍ수륙재ㆍ생전예수재 등 불교의식을 할 때 전통지화를 사용한다. 현 천태종 총무원장인 춘광 스님은 1970년대 단양 구인사에 머물렀던 권수근 스님께 영산재ㆍ삼회향놀이ㆍ지화제작방법 등을 전수받았다. 춘광 스님을 비롯해 태고종 벽응·지광 스님께 지화제작기법을 사사한 석용 스님은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 회장으로서 제자들과 함께 종단 스님들과 재가자들에게 지화 제작기법을 알리고 있다.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 회원들이 꽃송이를 완성한 뒤 이파리를 붙이고 있다.
넓은 공간에 많은 인원들이 참여했지만 스님의 설명 외에는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기까지

“종이를 꽃으로 피어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겠습니까.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대강대강 하면 생명이 없지요. 염료가 되는 작물의 씨를 뿌려 농사를 짓고, 여러 차례 적시고 말려 한지에 물을 들이는 천연 염색부터 꽃잎 하나하나에 주름을 접는 일까지 정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 회장이자 유네스코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장엄 전통지화부문 이수자인 석용 스님은 지화를 만드는 과정은 곧 수행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인고의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지화이기도 하지만, 꽃을 만드는데 계속 집중하다보면 삼매에 드는 것과 같은 경지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화는 가화(假花)가 아니라, 고행 끝에 피어난 깨달음의 꽃이다.

석용 스님은 현재 프랑스 기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국사 감로탱화(1832년) 속의 ‘목단’과 ‘연화’를 지화로 재현하는 등 전통양식의 지화연구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 100여 년 전의 시대상을 담은 몇 권의 사진도록은 세월의 손때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지만 스님이 보물처럼 여기는 귀중한 자료다.

상꽃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 석용 스님.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는 송탄 송덕사와 단양 구인사 템플스테이 홍보관에서 주로 활동한다. 작년에 개관한 구인사 템플스테이 홍보관에서 열리는 지화체험은 특히 가족단위로 절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구인사 템플스테이 홍보관.
염료의 재료가 되는 메리골드꽃을 따서 말리고 있다.
지화를 만드는 한지는 모두 천연염색을 거친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려는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의 눈물겨운 정성이 고운 꽃잎으로 피어난다.

환희심으로 피워낸 꽃

“꽃 만드는 거 중노동이죠. 한지에 물을 들이는 것부터, 종이 오리고 꽃살 접고 한 송이 완성하는 데까지 드는 비용도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아요. 비용을 최소화하고 전통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들이 직접 몸으로 때우고 있지만 일손이 달려 힘들 때도 많습니다.”

1999년에 입문해 20년 가까이 지화공예를 해 오고 있는 정용재 씨는 지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인 지화공예가 사라지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입문했던 시기만도 동해안 별신굿에 쓰인 지화를 보면 굉장히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화는 불교문화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문화이기도 해서 무속신앙에서도 늘 쓰였으니까요. 그런데 지화를 만들던 인간문화재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이제는 그 명맥이 모두 끊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만들던 꽃들 가운데 이제는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꽃들이 많아요. 옛날 기법을 소중히 여기고 계승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그렇게 다 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불두화로 만든 부채난등.

못내 아쉬워하는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 것도 잠시, 어느새 그의 숙련된 손길을 필요로 하는 회원들 곁에서 꽃잎을 만지고 있는 만면엔 미소가 가득하다. 이것도 제대로 못하냐는 정용재 씨의 핀잔에 “이 꽃은 처음 만들어 봤잖아요. 지화는 잘 못 만들지만 여기서 호미질은 제가 제일 잘해요.”하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황영임 씨도 이곳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 회원이다.

농사일에 능숙한 황영임 씨의 진가는 2016년 한 해 동안 ‘쪽’ 농사를 지으면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천연염색을 위해 회원들은 천연염료의 재료가 되는 식물을 캐러 다니기도 하고,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한다. 푸른빛을 내는 쪽을 직접 재배하기 위해 석용 스님과 회원들이 동참해 1,000여 평이 되는 땅에 씨를 심고 밭을 매며 수확했을 때의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황영임 씨. 유난히 더웠던 작년 여름 내내 쪽밭을 매며 기꺼이 땀을 흘렸을 회원들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게 그때 우리가 직접 재배한 그 쪽으로 물을 들인 거예요. 예쁘죠?”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에서도 늘 한복입기만을 고집한다는 강남순 씨가 목에 걸린 고운 하늘색 스카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화에 쓰는 한지에 들이는 물은 색의 농도도 중요하기 때문에 탁한 빛이 나는 첫물을 사용하지 않아요. 우리가 직접 농사지은 쪽이라 첫물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흰 스카프에 이렇게 물들여 봤습니다.”

지화를 만든 후 꽃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 회원들.

어딜 가나 마음만 먹으면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이들은 왜 이리도 공을 들이는 걸까.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회원들과 일반인들에게 지화 만드는 법을 알리고 있는 우경희 씨는 지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꽃을 만들 때는 잡념이 사라지고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게 돼요. 지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그 환희심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무념무상의 경지’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지만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 맛에 푹 빠져서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네요. 작년부터 신설된 구인사 템플스테이 홍보관에서 지화를 전시하고, 지화 만들기도 할 수 있어 지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제가 느낀 환희심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회원들이 정성스레 만든 '상꽃'이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고 있다.

지화, 세계를 장엄하다

석용 스님은 올봄에 미국 워싱턴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열릴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고된 작업으로 손톱 마디마다 검은 물이 들어 있지만 환한 얼굴이다.

“2014년 6월, 세계인들에게 지화를 알리고 싶어 미국 메릴랜드 찰스카운티에서 열린 문화축제에 참가했습니다. 모두 지화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직접 보고 깜짝 놀랐지요. 어른아이할 것 없이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구요. 생각지도 못하게 4등 수상의 명예도 안았습니다.”

2014년 6월 미국 메릴랜드에서 열린 문화축제에서 전통지화전시 및 지화만들기 체험 부스를 운영해 4등의 영광을 안은 석용 스님.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전통지화를 알릴 수 있어서 기뻤다는 석용 스님. 해외전시회를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잊혀져가는 지화공예가 외국에서 대성황을 이루어 다시 우리 생활 속에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지화공예가 외국의 각종 축제나 전시회에서 그 정통성과 특별함을 인정받아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오히려 호응이 좋으니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도 해외에서 인정받다 보면 언젠가는 그 가치를 우리나라에서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통지화보존연구회에서는 지난 초파일 지화 2,000송이를 만들어 용인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사월초파일, 봄바람 따스하게 불어오는 날에 꽃을 나눠준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꽃을 만들고 건네주었을까. 또 꽃을 받아든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 장면을 상상하며 얼굴 한가득 웃음 짓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향기없는 꽃 지화에 담긴 화안애어(和顔愛語)의 향기에 온 세상이 연화장 세계로 피어나고 또 피어나는 꿈을 꾸어본다.

석용 스님이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32년 수국사 감로탱화를 연구·복원한 ‘목단’.
2015년 12월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회 ‘지지않는 꽃’에 출품된 작품 중 ‘사대-지수화풍’.
2015년 12월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회 ‘지지않는 꽃’에 출품된 작품 중 '살겹작약 부채난등’.
2015년 12월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회 ‘지지않는 꽃’에 출품된 작품 '적멸도’ 중 '적'.
2015년 12월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회 ‘지지않는 꽃’에 출품된 작품 중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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