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도량에 핀 연꽃(261호)

제112회 재가불자 동안거 결제식. 앞 열엔 스님들이, 뒷 열엔 안거에 동참한 신도들이 자리하고 있다.

56년 이어온 재가불자의 안거 수행
겨울·여름 한 달씩 ‘관세음보살’ 정근
반 평 공간은 천태불자의 ‘무문관’

천태종이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한 달 안거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한국 천태종만의 독특한 수행종풍이다. 1961년 여름, 상월원각대조사의 가르침에 따라 처음 실시한 이후 56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단양 구인사 광명전에서 결제에 들어 12월 29일까지 31일간 이어진 재가불자 동안거는 제112회 안거다.

동이 터오는 구인사.

56년 간 20만 명 안거 이수

구인사 안거에 동참하는 불자는 평균 1,000명 안팎이다. 이들은 여러 전각에 흩어져 하루 13시간 이상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부르는 염불수행에 매진한다. 기상시간은 오전 6시. 세면 후 8시까지 아침공양을 한다. 오전기도는 9시부터 11시30분. 점심공양 후 휴식이 주어지지만 울력으로 스님들을 돕거나 굳은 몸을 풀기 위해 포행을 한다. 오후는 2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3시간의 기도를 마치면 저녁공양시간이다. 여유 있는 시간도 잠시, 오후 10시부터는 집중이 잘 된다는 밤기도가 새벽 3시30분까지 이어진다. 쪽잠을 제외한 취침시간은 밤기도가 끝난 오전 3시30분부터 6시까지 고작 2시간30분이다.

안거에 들어오면 원칙적으로 한 달간 구인사 산문을 나서지 못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의 인연을 단절하지 않고는 참여할 수 없는 게 바로 구인사 한 달 안거다. 그래서인지 여성 안거자의 비율이 높지만 운영하던 가게를 닫고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휴직 또는 퇴직한 후 안거에 참여한 남성 불자도 적지 않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유아나 초등학교 4학년 이하의 어린이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모자 안거실을 배정받는다. 초등학생은 방학 전까지 영춘초등학교로 단기전학을 신청하는데, 구인사에서 버스로 아이들의 등하교를 지원한다.

안거자에게 배정하는 선방은 광명전 4층(광명당)과 설선당, 판도암, 인광당 등에 위치해 있다. 버스나 기차의 좌석을 예약하듯, 접수 순서에 따라 희망하는 전각과 반 평 남짓한 수행공간을 배정받는다. 연로한 불자들은 걷는 게 불편해 대중공양간이 가까운 선방을 선호하기도 한다.

1,000여명이 한 달간 큰 불편 없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구슬땀이 필요하다. 바로 스님들이다. 안거자들이 팀을 나눠 울력봉사를 통해 돕지만, 하루 세끼 대중공양을 준비하는 일부터 의식주 전반을 책임지고, 환자 관리와 신행상담까지 모두 스님들의 몫이다. 각 선방에도 안거자들이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스님들이 배정돼 수행의 고삐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지도한다. 스님들은 재가불자들의 동안거 직후 모든 소임을 잠시 내려놓고 구인사로 돌아와 55일 간의 승려안거에 돌입, 용맹정진을 한다.

구인사 안거를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들은 전국의 천태도량에서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수행정진을 하기도 한다. 그 숫자도 1,000명을 웃돈다. 새벽까지 기도를 하고 돌아가 출근 준비를 하는 열성 불자들이다. 이를 더하면 한 달 안거 이수자는 연인원 20만을 가뿐히 넘는다.

결제식 이튿날 새벽, 신도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세면을 한다.
결제식 이튿날 새벽, 대중공양간에서 신도들이 아침공양을 하고 있다. 한 달 안거비 15만원(1일 5000원, 성인 기준)에는 식비가 포함돼 있다. 공양간에서는 받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이 원칙이다.
재가불자들의 한 달 안거 뒷바라지는 스님들의 일손만으로는 부족하다. 설거지 등 여러 울력을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돕는다.
부모님을 따라 안거에 동참한 어린 불자들은 겨울방학까지 영춘초등학교로 단기전학을 신청한다. 구인사 버스를 타기 위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접수실 앞으로 내려가는 어린이 불자.

 “마음을 맑고 평온케 하는데 최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숨 가쁘게 달려가도 살아남을까 말까하는 판국에 무엇이 이들을 소백산 구인사까지 이끈 것일까? 안거에 참여한 몇몇 불자에게 물으니 대부분의 대답은 ‘마음의 평온’이다.

“안거를 하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무심(無心)에 든다고 할까요? 나도 모르는 새 삼매에 빠져드는 것도 정말 좋아요.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육남매가 모두 천태불자예요. 어릴 때 할머니의 손을 잡고와 안거를 참여했는데 10회 정도 이수했어요. 이젠 전혀 불편함을 못 느껴요.”

구미 금룡사 이명옥 불자와 손자 김건호 군.

광명당에서 만난 경산 장엄사의 박재춘 불자의 말이다. 모자안거방에서 만난 이명옥 불자(구미 금룡사)는 7살 난 손자(김건호)와 함께 안거에 들었다. 할머니를 따라온 게 대견해 몇 번째 참가한 거냐고 물었더니 벌써 7번째라고 대답한다. 3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안거에 참여한 어린 고수다.

“안거를 하면 혼란스럽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고 정돈이 됩니다. 나쁜 마음을 스스로 걸러내게 되거든요. 한 달 안거를 마치고 돌아가면 두세 달은 이런 상태가 유지되는데, 반년은 못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안거에 또 오게 됩니다. 손자도 성격이 급하고, 산만한 편인데, 안거에 참여하면서 차분해졌어요. 또래들이 많아 구인사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예요.”

단양 광법사 배성아 불자와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

단양 광법사를 다닌다는 배성아 불자와 의정부 정화사를 다니는 문현영 불자는 11개월 된 아기와 돌이 갓 지난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기가 어리기 때문에 일단 4박5일 기도를 한 후 더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란다.

안거 참가자 중에는 경험자가 많지만, 3분의 1 정도는 첫 참가자다. 이들은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오기도 하지만, 기도할 때 한 가지씩 소원을 마음속에 품고 오기도 한다. 아기를 가졌으면 하는 소원도 있고, 자신이나 친인의 병이 나았으면 하는 바람도 안고 온다. 자신이 영험을 체험했다고 생각하는 불자들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스님들이 삼매에 든 상태나 안거 후의 변화를 영험과 연관 짓는 걸 경계해 잘 드러내진 않는다.

병신년 동안거 결제식에 동참한 남자 안거자들.
1,000여 신도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해서는 많은 식재료가 필요하다. 부추다듬기를 돕는 신도들.
광명전 4층은 옛 수행터 ‘광명당’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안거자들은 반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13시간 관음정진 수행을 하고, 쪽잠을 잔다.
남자 안거자들의 선방은 인광당 5층이다. 비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기둥을 옷걸이로 활용하고 있다.
1965년 2월 21일 안거 중에 찍은 사진이다. 동안거로는 4차이고, 여름 안거를 포함하면 8회째 안거다.
구인사에서 한 달 안거에 동참하지 못하는 신도들은 전국 사찰에서 자체 안거에 들어간다. 1976년 대구 대성사 하안거에 동참한 신도들.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메아리 ‘관세음보살’

염불선(念佛禪)은 선종이 중국에 생기기 이전인 초기불교 때부터 행해오던 수행법이다. 지루가참이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을 번역하면서 중국에 전해졌다. 여기서 ‘반주’가 바로 염불이다. 염불선에는 부처님의 법신을 떠올리는 법신염불,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관념염불, 부처님의 명호를 입으로 외는 칭명염불이 있다. 천태종에서 행하는 칭명염불은 근기의 높낮음과 무관하게 누구나 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수행법이다. ‘실천과 수행 없이 불교의 미래는 없다’고 가르쳤던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 1911-1974)께서 출가자들만 행해오던 안거를 1961년 여름부터 일반 대중에게 확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2016년 1월 19일 열린 을미년 동안거 해제식에서 신도대표가 도용 종정예하로부터 이수증을 받고 있다. 이 때 한 달 안거 이수자는 1,010명이었다.

상월대조사께서는 초기 여러 방식으로 칭명염불을 지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종래 ‘관세음보살’로 정한다. 이 수행은 ‘관음주송’으로도 불리는데, 상월대조사께서는 이 수행법을 4단계로 구분해 가르쳤다. 첫째는 귀로 들리는 칭명의 소리를 관찰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칭명하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단계, 셋째는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나의 소리에 집중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칭명의 소리조차 사라지고 마음이 적정(寂靜)에 드는 단계이다. 불자들은 칭명염불을 통해 마음을 어지럽히던 번뇌가 곧 보리(菩提)의 씨앗임을 깨달아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깨달음에 성큼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1945년 초가삼간으로 산문을 연 구인사는 오늘날 수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도량으로 변모했다. 이 세월 동안 천태종 재가불자들이 토해낸 ‘관세음보살’은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고, 당시의 수행 열정은 지금까지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소백산 골짜기에 발원한 ‘관세음보살’은 우리의 자성(自性)을 일깨우는 외침이다.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해 불자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겠다는 이 함성은 한국불교의 희망을 노래하는 메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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