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261호)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어수선한 가운데 한해가 저물고 분주한 가운데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성지순례를 가듯 동해로 갔다. 저마다 가슴에 품은 소망이 있고 더 잘 살겠노라는 다짐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소망과 다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뜨고 지는 해에게는 어제와 오늘이 따로 없고 묵은해와 새해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분절하여 삶의 좌표를 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간이란 본래 시작도 끝도 없으며 우주 만물도 본래 공적하여 실체가 없음을. 그러나 그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과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은 별개로 여긴다. 지금의 삶이 엄연한데 공적의 논리 속에 묻혀 있을 수 없는 것이 중생의 근기인 것이다.

세상 살기가 각박하고 어렵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학 기술과 교통 통신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모든 것이 편리해졌으니 세상살이도 그만큼 편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오히려 힘겨운 삶에 지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은 무지개와 같아서 좇아갈수록 멀리 도망간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는 좀체 증가하지 않는다.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이유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유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긍정 마인드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속에서 끓어 넘치는 욕망의 분화구를 다스리지 못하여 무엇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심성이 세상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근원이다.

불교는 긍정의 종교다. 높은 것은 높은 대로 낮은 것은 낮은 대로 편견 없이 볼 것을 가르친다. 불교의 기본 교리들을 살펴보면 모든 이론이 긍정으로 통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팔정도를 생활의 현장에 적용해 보라. 긍정하는 마음이 아니고는 어느 것도 실천할 수가 없다. 마음이 부정적이거나 왜곡되면 바로 봄[正見]이 불가능하고, 화가 치밀고 미운 감정이 있으면 바른 말[正語]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세상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결국 긍정하지 못하는 마음, 세상과 갈등하는 마음이라고 결론 내려도 무방하다. 이를 반대로 얘기하면 긍정의 힘을 아는 사람은 세상살이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다.

새해를 설계 하는 데 있어서도 우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 세상과 갈등하지 않으려는 마음, 이해와 관용을 먼저 챙기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인간관계든 사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긍정하는 마음에서 열리는 귀한 열매라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신년 벽두에 마음 깊이 새길 것이 많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긍정하며 살겠다는 서원으로 기초를 삼아야 한다. 선문(禪門)의 커다란 화두 하나를 들어 보자.

마조 선사가 몸이 편치 않았는데 원주스님이 찾아가 안부를 물었다.
“요즘 몸이 좀 어떠하십니까?”
선사가 답했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다.”

이 대화는 후세 선불교에 큰 파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면불은 1800년을 사는 장수의 상징이고 월면불은 단 하루를 사는 단명의 상징이다. 몸이 편찮은 마조 선사가 안부를 묻는 제자에게 ‘일면불 월면불’이라고 대답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우리는 과연 이 시간의 좌표에서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을 바라는 만큼, 세상과의 갈등을 줄여야 한다. 선가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일면불을 월면불로 고치고, 월면불을 일면불로 바꾸는 활달 자재한 솜씨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틀은 ‘긍정의 마음’에서 형성 된다. 긍정하고 인정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행복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고, 그 열매 속에 일면불과 월면불이 함께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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