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호 금강단상

세상을 평탄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잘 살기 위해 아등바등했음에도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있다. 노숙자 중 일부도 그런 사람이다. 겨울은 이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계절이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약 사먹을 돈도 없으니 이들에게 겨울은 ‘한빙지옥(寒冰地獄)’이다.

일용직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요즘, 하루 한 끼를 걱정하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은 구걸이다. 나는 예전부터 구걸을 하는 이들에게 동전 한 닢조차 건넨 적이 없다. 육신 멀쩡한 사람이 구걸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거니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건네주는 행위 자체가 멋쩍어서다.

얼마 전 종로 탑골공원 인근을 지나갔다. 초겨울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 그날, 양지바른 담벼락에 구걸하는 이가 앉아있었다. 그는 낙엽이 뒹구는 보행로 차가운 바닥에 발끝을 곧추세운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있어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왕에게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하는 죄인인 양 분위기가 사뭇 비장(悲壯)했다.

앞을 무심코 지나쳤지만, 열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상념 때문이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한 상념의 원인 제공은 하관(下顴)과 함께 드러난, 턱에 살짝 자란 희끗한 수염이었던 것 같다. 몇 년 후면 내가 닿을 50대 중반, 미래의 또래에게 느끼는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멈춰선 나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두 번을 접었다. 그의 앞에 놓인, 은색 동전 몇 닢이 전부인 종이컵에 구겨 넣기 위함이다. 뒤돌아서 몇 발자국을 떼어놓는 동안 누가 볼까하는 쑥스러움을 삼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종이컵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던지듯 집어넣었다. 급히 뒤돌아서는데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의 고개가 삐죽이 되나오는 지폐를 마중하듯 아래로 숙여지고 있었다. 1분 전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며 스스로에게 ‘잘했어요!’ 칭찬 도장을 찍어줬다.

먹고살기 빠듯한 샐러리맨에게도 천 원 정도의 여유는 있다. 과히 말하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그깟 천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천원은 초겨울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드는, 생존을 위한 ‘소중한 천원’이었던 모양이다. 냉정하고 비열한 세상에 분개해 거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묻지마 범죄’ 한 건을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상상에, 입가에 미소 한 조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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