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절·불교대학 설립은
한국불교 성공적 수출 아냐
불교 수출 전면 재검토 돼야

상품을 수출한다면 그 반대로 수입을 생각하게 된다. 상품이야 수입, 수출과정을 통해 교류되겠지만 불교를 수출하고 수입한다면 불교를 물품처럼 취급하는 꼴이 된다. 실제로 불교가 서구로 전파되는 과정을 물량이동으로 파악한 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70년대 전후 공전절후의 인기를 끌며 불교가 서구로 전파되는 과정을 서구의 불교학자들은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수입 불교(Import Buddhism), 수출 불교(Export Buddhism) 또는 보따리 불교(Package Buddhism)로 불교의 세계적인 흐름을 특징짓고 있다.

기독교는 선교라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비 서구지역으로 전파되어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 종교인 불교를 제치고 제일의 종교로 까지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는 어떤가? 불교 전파를 위한 선교는 커녕 오히려 서구인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수입하였다. 헬만 헷세의 ‘싯달타’이거나 에드윈 아놀드의 ‘아시아의 빛’이란 아름다운 싯귀들이 서구 지성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혹은 달라이라마이거나 틱낫한의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난마같이 얽힌 정치 현실을 헤쳐가는 불교의 지혜가 담긴 저술을 읽고 불교에 공감을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책을 통해 이루어 졌다. 그래서 불교인을 ‘책방 불교신자(Bookstore Buddhist)’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책을 통해 불교에 공감한 다음 방학이나 휴가철을 이용해 아시아지역에서 참선수행을 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스님이거나 지도법사를 자기 나라로 초청하며 자신의 집을 수도처로도 만든다. 이렇게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불교를 수용한 행태를 ‘수입불교’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기 스타였던 현각 스님이 그런 불자이고 우리 독자층에게도 잘 알려진 참선 수행서를 쓴 스티픈 벳츨러도 그런 ‘수입불교’의 대표적 수행자들이다. ‘수출불교’란 기독교 선교를 모방하여 불교를 서양에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형태이다. 주로 서양의 중하류 계층을 상대로 하며 선교하려는 종단에서 현실적 도움과 경제적 혜택을 베풀며 신도를 이끄는 경우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던 초기의 모습을 정확히 닮아있다. 아마 일본의 창가학회는 대표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

한편 ‘보따리 불교’란 동양의 이민자들의 불교신행 형태를 두고 한 말이다. 한국의 미주 이민자들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이민자들이 서구에서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모습이다. 좀처럼 현지인들과 섞이지 못하고 그들과의 언어 소통에 불편을 겪고 있으며 현지 문화와도 차단되어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에 산재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다. 우리는 서구에서 불교가 유행되고 또 서구인들이 열광하며 불교를 받아들이는 겉모습을 보고 불교의 위대성이나 보편성을 무척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의 현장을 접하면 수입, 수출, 정착되는 과정의 층위는 이렇게 다양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미국 불자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불교는 더 이상 아시아인을 위한 불교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미국 불자들은 어떻게 ‘미국적 불교(American Buddhism)’의 틀을 짜야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고 실토한다. 서양의 신행 형태가 동양과는 차이가 크다는 말이다. 이제 해외 포교라는 관점에서 불교를 수출하는 일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절을 세우고 스님과 포교사를 파견하거나 뉴욕과 LA에 우리식 불교대학을 설립한다고 해서 한국불교를 성공적으로 수출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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