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신의 ‘원’ 넣어
다가올 ‘달’ 이름 지으면
우리 삶 윤택해 질 것

‘설’이라는 말은 새해의 시작을 담은 참으로 곱고 간결한 우리말이다. 1월 1일을 뜻하는 단어로 이렇듯 간결하고 예쁜 말을 지닌 나라가 또 있을까.

설의 어원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 첫 번째는 설이 ‘서다’라는 말에서 생겨났다고 본다. 옛사람들은 처음 시작하는 것을 ‘서다(立)’, ‘세우다(建)’라는 말로 즐겨 표현했다. 시장을 여는 것을 ‘장이 섰다’고 하는 것과 같다. 입춘ㆍ입하ㆍ입추ㆍ입동처럼 사계절의 시작에도 모두 ‘설(立)’자를 쓰고 있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설이 ‘낯설다’는 말에서 왔다고 보는 의견이다. 새로운 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해라는 뜻에서 ‘설은 날’이라 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설이 ‘살’에서 왔다고 보는 주장이다. 한 살, 두 살이라 하여 나이를 셀 때 쓰는 ‘살(歲)’이 ‘설’로 바뀐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어원들은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어서, 설이라는 말이 생겨나는 데 조금씩 영향을 미쳤으리라 여겨진다.

어떤 어원에서 생겨났건, 설이 우리민족 최고의 명절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한때 정부에서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 하여 명절로 정하고, 설날은 ‘민속의 날’로 부르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전통을 바꿀 수 없었고, 국민들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곧 ‘설날’의 이름과 명절의 위상을 되찾게 되었다.

편의에 따라 신정을 쇠는 건 문제되지 않지만 우리의 설날, 명절은 어디까지나 음력이다. 설ㆍ추석ㆍ단오…, 이런 명절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현대화되어도 바뀔 수 없는 문화이다. 저 하늘에 달이 떠있는 한 그러하다. 음력은 달의 변화를 중심으로 시간을 새기는 거라서, 보름이나 그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절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전통문화에 점점 소홀하고 의미를 두지 않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전통문화 전승에 가장 적극적이다. 사람들은 절에 와서야 비로소 단오, 칠석, 동지를 체감하게 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일제강점기를 거쳤다 하더라도 우리만큼 빠른 시간에 전통이 단절된 나라도 드물다니 함께 생각해볼 대목이다.

그런가하면 인디언 원주민이 새해 첫 달을 부르는 이름을 보면 흥미롭다. 인디언은 부족마다 일 년 열두 달에 인상적인 이름을 붙였는데, 미국 중북부에 사는 인디언들은 1월을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 불렀다고 한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바깥출입을 삼가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내면을 다지는 시기로 여겼던 것이다. 참으로 사색적인 이름이지 않은가.

또 다른 부족은, 정월을 ‘해에게 눈 녹일 힘이 없는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렬한 태양도 겨울에는 힘을 잃어 눈을 녹일 수 없음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눈 때문에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노인들 수염이 헝클어지는 달’로 부르는 부족도 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모습, 점잖은 노인의 긴 수염에 눈이 내리고 엉키기도 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던 게다.

인디언부족의 ‘달 이름 붙이기’를 힌트삼아, 우리도 한 달 한 달을 건조한 숫자로만 규정하지 말고,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달’, ‘하루에 한 가지씩 남에게 기쁨을 주는 달’과 같이 구체적인 문장으로 마음에 새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각자 자신의 원(願)을 넣어 다가올 달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렇게 실천하려 노력하면 삶이 좀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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