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봉황 … 굶주린 백성 위해 알 낳아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랜 옛날 천신인 환인 제석님이 지상에 있는 인간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서 아들인 환웅 제석님에게 명하였습니다.

“너는 지금부터 천부인 즉, 거울·북·칼을 가지고 지상에 있는 인간세상으로 하강하여 인간 세상을 통치하라!”

이에 환웅 제석님은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하강하였는데, 거기가 바로 우리나라의 발생지인 아사달입니다. 인간 세상으로 하강한 환웅 제석님은 국호도 정하고 도읍지도 선정하여 지상 세계를 경영하기 시작하였지요.

그리고 환웅 제석님은 여인으로 환생한 웅녀와 혼례를 올리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내아이가 우리의 시조인 단군님입니다. 그 후로 환웅 제석님은 천신인 환인 제석님의 부름을 받고 다시 하늘나라로 승천하게 되어 아들인 단군님에게 ‘홍익인간’과 ‘경천애인’ 사상으로 인간 세상을 통치할 것을 명하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그 후 하늘나라로 올라간 환웅 제석님은 단군님이 지상에서 인간세상을 잘 경영하고 있는지 감찰하기 위해 날마다 봉황새를 불러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단군님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백성은 늘어나는데 식량이 부족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매일같이 하늘에 보고하는 봉황새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항상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버지인 환웅 제석님께 보고하는 봉황새가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단군님은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단군님이 고민하는 모습을 본 신하 한 사람이 넌지시 이렇게 말했던 것이지요.

“대왕이시여, 저 봉황새는 날개의 기능을 잃게 되면 천상에 보고도 못할 것이고, 매일 낳는 알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식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봉황새의 날개를 꺾지?”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술을 좋아하는 봉황새에게 술을 먹게 하여 그가 취해 잠든 시간에 날개를 꺾으면 봉황새는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단군님은 손뼉을 쳤습니다.

“바로 그거야.”

단군님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봉황새의 알도 얻고, 아버지의 잔소리도 듣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단군님은 이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된 것이지요.

“빨리 시행하라!”

단군님의 명을 받은 신하는 어스름 저녁에 잘 빚은 술이 가득 담긴 술병을 들고 봉황새를 찾아갔습니다. 봉황새는 금방 그 술병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눈치 챘습니다.

“오호!”

봉황새는 침을 삼켰습니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봉황님의 짐작대로 하늘나라 환웅 제석님께 매일 매일 이곳의 상황을 보고하시느라 수고하시는 봉황님을 위해 단군 대왕님께서 직접 하사하신 술입니다. 수백 년이 넘은 술이지요. 아마도 이 세상의 술 중에 가장 잘 익은 술일 것입니다.”

두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봉황새는 단숨에 신하에게서 술병을 뺏어들고 벌컥벌컥 몽땅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은 불문가지겠지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술을 몽땅 마신 봉황은 그만 기절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 순간 단군님이 빙긋이 웃으며 여럿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무섭게 명했습니다.

“봉황새가 다시는 하늘로 올라가 고자질을 못하게 가장 큰 날개를 꺾어버리도록 하여라!”

그 명이 떨어지자마자 부하들이 봉황새에게 달려들어 가장 큰 날개 하나를 꺾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단군님은 백성들에게는 봉황새를 ‘닭’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하였습니다.

“아아아!”

잠에서 깬 봉황새는 단군님의 계략에 속은 것을 알고 후회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기 실책으로 말미암아 하늘로 승천할 수 없게 된 봉황은 후회하며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단군님은 봉황새를 불렀습니다.

“봉황새야, 내 너의 날개를 꺾은 것은 그 첫 번째로 우리 백성들에게 너의 알을 주기 위함이고, 둘째는 아무리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매일 매일 나의 동정을 보고하는 너의 행동을 막기 위함이다. 내가 이곳 지상의 왕인데, 이곳의 상황을 잘 모르는 하늘나라 아버님의 명령만을 따를 수는 없지 않느냐?”

단군님의 말을 들은 봉황새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 날개가 부러진 후 대왕을 원망하였으나, 이제 대왕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백번 옳고 바른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힘으로 죽을 때까지 우리 백성들에게 알을 낳아줄 것이며, 하늘에 계신 환웅 제석님께도 하루에 딱 한번만 지상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의무만은 잊지 않고 행할 것입니다.”

단군님도 봉황새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였습니다. 그래서 닭이 된 봉황새는 매일같이 새벽이면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었습니다. 단군님 역시 비록 백성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봉황새의 날개를 꺾었지만,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환웅 제석님의 뜻을 어기는 잘못을 하였기에 훗날 하늘나라로 가지 않고 묘향산으로 들어가서 산신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017년은 정유년(丁酉年)으로 닭띠 해입니다.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이육사의 〈광야〉의 한 구절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땅에 새해가 밝아도 세상은 어지럽습니다.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백성을 사랑하였던 단군님과 그 뜻을 받들어 평생 알을 낳아 백성을 살리고, 또한 하늘나라 환웅 제석님께도 새벽이면 목 놓아 보고하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봉황새. 새해는 그 봉황새가 아닌 수많은 닭들의 함성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육사처럼 다시 기다립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2017년 정유년(丁酉年). 〈금강신문〉 독자여러분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