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생각 260호

또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한 시절 북적거렸을 산마루가
서설을 곱게 입고 상서로운 노을을 쬐고 있습니다.

햇빛과 바람이 서로 조응하며 가꿔온 벼논도
황금빛 알곡을 거두어 주고 동안거에 들었습니다.

어떤 벼논은 바람에 쓰러지기도 하고
어떤 무논은 물에 짓무르기도 했다지만
한 시절을 옹골차게 경영하며
저마다의 기운만큼 제 몫을 세상에 내어 놓았습니다.

첫 눈 내린 빈 들녘에
오롯이 서 있는 짚가리한테 땅 밑 소리를 듣습니다.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이 계절
아무리 폭설이 내려칠지라도
머지않은 곳에 새봄이 있음을 알려주는 저 낱알들의 소리를……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차분히 땅 밑으로 귀를 기울이며
다가오는 계절의 따뜻한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산마루에 황금빛 노을이 상서롭습니다.

이승현
2003년 <유심>으로 등단. 나래시조문학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집 <빛 소리 그리고>. <사색의 수레바퀴>.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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