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260호

당진 안국사지 미륵불 ⓒ 전제우

또 한 겹의 생

정용국 시인

기울어 여린 빛과 매서운 된바람이
성기게 들이닥친 이순의 겨울 문턱
문풍지 새로 붙이고 들창문도 여며본다

함부로 들이대고 빈 말로 꾸려가던
어설픈 행전들도 바투 잡아 동여매고
또 한 겹 겨운 나이테를 두 손으로 받는다

<시조21, 2016, 겨울호>

입동이 지났습니다. 이제 겨울 문턱에 다가선 것이지요. 겨울호 청탁에 보낸 작품을 가만히 되읽다 보니 해마다 겨울이 오지만 이순의 문턱에서 맞이하는 올 겨울은 유별난 감회가 많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순이라는 나이도 그렇지만 저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물과 시간들에게 고맙고 눈물겨운 감정이 자꾸 솟구칩니다. 시련으로 다가올 추위와 찬바람까지도 새롭고 고마울 뿐입니다.

새벽에 가만히 반야심경을 염하다 보면 여름의 불볕더위와 겨울의 강추위도 모두 하나같이 사물을 키우고 여물게 하는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로 다가옵니다. 또 한 겹의 나이테가 될 올 겨울 추위와 바람을 막으려고 문풍지도 갈고 마음도 여며봅니다. 젊었을 땐 마뜩하지 않던 이런 일들도 정성을 들여 받아들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제야 오롯하게 친해지고 있다는 것을 ‘색불이공(色不異空)’의 엄청난 진리 안에서 느낍니다.

(지금 모든 국민들이 엄청난 불의 앞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 우리들의 손끝으로 지은 업보이기도 합니다. 국가도 또 한 겹의 커다란 시련 앞에서 이를 극복하고 더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어 가리라 믿습니다.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여러분들도 마음 잘 다스리는 세모가 되길 기원합니다. 광화문 네거리 저리 시끄러운데 부처님은 그냥 가만히 웃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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