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260호

화순 운주사 석불 ⓒ 전제우

귤 알의 맛

신효순 시인

창을 매섭게 흔드는 저녁이 있습니다

이런 날에는 바람을 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귤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체한 속에는 귤 하나면 시원해진다면서
귤을 까셨습니다

귤 알 하나는 내 입속에 넣어 주셨습니다
달고 시고 말랑한 것이 씹혔습니다
시원하다는 말뜻은 달고 시고 말랑하다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가끔 귤을 찾으셨습니다

오래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달고 시고 말랑한 것이 되었을 때
입에 귤 알 하나 넣어 주고 싶은 저녁이 올 때
체한 듯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깨우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어떤 날에 떠나버리셨는지
묻지 않고도 귤을 까먹으며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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