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260호

문경 봉암사 마애불 ⓒ 전제우

 12월 생각

공광규 시인

탯줄을 염주처럼 걸치고 나왔다는 내가

올해는 스님한테 어처구니없는 욕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많이 싸웠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쫓아다니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년에도 욕을 더 먹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더 져야겠다

세상에 많이 져야겠다

그러다가 아무 바라는 것이 없이

과수원이 딸린 카페를 찾아가

사과나무꽃 피는 저녁에서부터 별이 빛나는 밤까지

시를 읽어야겠다

별밭 아래 오래 서서

사라지는 별똥별을 마냥 바라보며

별똥별을 주우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친구를 생각하겠다

달을 타고 하늘을 건너간 부모님께

뒤늦은 효도를 생각해야겠다

그러다가 강가에 자주 나가

안개가 끼었다 걷히는 것을

포도나무 잎에 햇살이 내리는 것을

새들이 날아오르고 내려앉는 것을 바라봐야겠다

그냥 바람 앞에 오래 서서

풀이 자라서 시들고

감나무 잎이 물드는 가을을 맞이해야겠다

모두에게 모든 것에게 잘 져서

운명이 아름다워진 사람들을 생각해야겠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