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 260호

임동윤 시인이 초등학교 때 은사님에게 올리는 글

그리운 선생님, 잘 계시는지요?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59년 봄이었어요.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셨다가 첫 부임지로 저희 학교에 오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학년 학생이 고작 13명인 작은 학교로 오셔서 1년 남짓 함께 지냈지만 제 가슴엔 지울 수 없는 단 한 분의 선생님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철없던 학창시절에는 놀기에 바빠서, 그리고 직장초기에는 회사에 적응하느라, 또 나이가 들고 철이 나기 시작할 때는 먹고 살기에 바빠서, 이리저리 미루다보니 이제야 문안인사 드림을 용서하십시오.

오늘, 선생님과의 잊지 못할 추억 하나 고백할게요. 1959년 12월 초순이었던 것 같아요. 세 개 조로 나누어 산수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는데, 어느 조도 제한된 시간에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는다는 조건이었죠. 다행히 우리 조와 또 다른 조는 문제를 다 풀었는데, 나머지 한 개 조가 문제를 제 시간에 풀지 못해 단체기합이란 걸 처음 받았죠. 때마침 창밖으론 함박눈이 내렸는데, 우리를 운동장으로 불러 낸 다음, 군대에서 연마(?)하신 ‘원산폭격’이라는 벌을 주셨지요. 뒷짐을 진 채로 허리를 굽혀 맨땅에 머리를 박는 그 벌은, 피가 바닥으로 쏟아지고 언 땅에 머리를 박아서 그런지 그 아픔은 지금도 몸서리치도록 생생합니다. 그때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지만 개인보다 협동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주셨지요. 즉,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를 그때 처음 일깨워주셨지요.

오늘처럼 눈발이 흩날리는 날이면 자꾸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책보를 어깨에 메고 등교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처마끝 구멍에서 참새를 잡던 일과 시험공부를 위해 카페나(잠 안 오는 약)를 먹고 밤을 지새운 날, 왜 그렇게 잠이 쏟아졌던 지요. 졸다가 선생님께 들켜 손바닥을 호되게 맞던 일 등등…….

‘사랑의 반대어는 미움이 아니라 바로 무관심’이라고 말하시면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과 자신을 인정해 줄 단 한 명의 사람,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 줄 단 한 사람’이 있도록 살아가라 말씀하신 선생님. ‘자신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라’고 틈날 때마다 강조하신 선생님. 그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살다보니 참으로 손해를 많이 본 듯해서 선생님을 원망도 했습니다. 각박한 인심, 객지생활에서 느낀 가족에 대한 그리움, 홍역을 앓다가 하늘나라에 든 네 살배기 막내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공포, 핍박과 왜곡된 노동의 가치, 과도한 물질 숭상 등등.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때로는 타협을 해야 하고, 때로는 험담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은 선생님이 무척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선생님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위대한 스승은 제자에게 모든 기술을 다 가르치지 않는다.”는 명언을 몸소 실천하셨을 테지요. 올곧은 선생님의 그 가르침만 믿고 약삭빠르게 살지 못하다 보니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돈도 되지 않는 글쟁이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좋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을 저는 여전히 사랑합니다. 미성숙한 저에게 어두운 사회의 빛이 되고 약한 사람들의 등불이 되라고 가르치신 선생님. 선생님이 제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가슴 속에 새기면서 가족과 친지, 이웃과 사회에 그 정을 듬뿍 베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남규 선생님,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 편지는 결코 선생님께 전해질 수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선생님께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에서 어떤 별이 되시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실까요? 마주 앉아 단 한 마디의 얘기는 나눌 수 없다 해도, 56년이라는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해도, 바람에 부대껴 온 세월만큼 선생님은 유난히 빛나는 별이 되어 제 가슴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금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고,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씀을 강조하셨던 그 가르침도 잊지 않겠습니다. 직접 찾아가 큰절과 함께 술 한 잔 올리고 싶지만 무덤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몰라 부칠 수 없는 사연만 바람결에 띄웁니다.

다시 뵙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세요.

임동윤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등단. <나무아래서> <따뜻한 바깥> 등 9권의 시집을 냈으며 수주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시와소금> 발행인 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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