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260호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맘때면 걸음이 빨라지고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도 많고 정리할 것도 많아서 그렇다. 따지고 보면 해마다 맞이하는 연말이고 해마다 맞이하는 새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연말과 새해를 앞둔 마음은 왠지 분주하고 어수선하다.

나는 연말연시야 말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살아가고자 하는 에너지를 뜨겁게 생산해 내는 때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시간의 일들을 돌이켜보고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지 계획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풍경이다. 우리의 연말연시 풍경 속에는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종교는 이타적인 삶을 가르친다.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동물적 본능에 따라 사는 것에 불과하다. 이타적인 삶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자연환경을 하나의 몸으로 볼 때 가능하다. 나만 내가 아니라 타인과 자연, 우주 전체가 나라는 인식이 사무칠 때 이타적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 불교에서는 대승의 삶, 보살의 삶으로 정의되고 있다.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연말, 나는 과연 얼마나 보살의 삶을 살고 있나 점검해 볼 때이다.

 

이 연말 나는 우리사회에 상존하는 하나의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높은 실업률로 청년들이 신음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나라가 가난하던 반세기 전 우리가 꿈에도 그리던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기는 했는데, 그 이면에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가 너무 두텁다.

저출산의 문제는 상당히 많은 사회문제의 복합체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젊은이가 증가하고 결혼적령기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문제다. 그나마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하나만 낳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양육비에 대한 부담이라고 한다. 반세기 전에는 산아제한을 하던 나라가 이제 신생아가 줄어들어 걱정인 것이다. 교육과 보건 그리고 각종 복지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저출산 문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미혼모는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 1인 미혼모 가정이 해마다 10% 가량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다. 이와 동시에 미혼모가 낳은 아이가 해외로 입양 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저출산 국가의 고민과 미혼모 자녀의 해외 입양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국민의 뇌리에는 아직도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과 혈통주의의 뿌리가 깊다. 그래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다.

 

“아동은 태어나는 즉시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이름을 가지고,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고, 가능한 친부모를 알 권리와 친부모에게 양육될 권리가 있다.”

이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의 내용이다. 한국도 이 협약을 비준한 나리다. ‘친부모를 알 권리와 친부모에게 양육될 권리’ 미혼모 자녀는 이 권리에 취약하거나 제외되기 일쑤다. 미혼모 자녀의 90%가 해외로 입양되는 상황에서 이 권리가 존중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해외로 입양되었던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의 나라’를 찾아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외면했던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해 회귀하는 연어처럼 한국을 방문하는 입양자들의 행렬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제 우리 사회는 미혼모 문제와 미혼모 자녀의 해외입양 문제 그리고 저출산과 고령화 등 급변하는 인구정책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과감한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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