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259호

옷깃에 스미는 공기가 제법 싸늘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계절이 겨울의 문턱에 이르렀음을 실감나게 합니다. 이렇듯 날씨가 쌀쌀해지면 좋은 사람과의 차 한 잔이 그리워집니다.

꽤 오랜 세월 차 생활을 하면서 차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여유롭게 하는지, 또한 차가 사람과의 관계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절실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와 관련해서 불가(佛家)에서 회자되는 말 가운데 ‘선다일미(禪茶一味)’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와 수행은 한맛이다’라는 뜻으로 수행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그래서 지혜를 증득하는 과정을 차 한 잔에 담긴 의미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게지요. 중국 선종의 고봉인 조주 선사께서는 수행의 길을 묻는 수행자들에게 ‘끽다거(喫茶去)’라는 말로 대신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직역(直譯)을 하면 ‘차나 마시고 가게’라는 뜻이지만 그 보다 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리란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지요. 찻자리에서 회자되는 말 가운데 차는 물과 불의 조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과 불은 서로 다른 극단의 영역입니다. 이 극단이 서로 조화를 이룸으로서 아름다운 찻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데 우리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 결과 이 시대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양극화란 말을 할 정도입니다.

이 시대의 화두인 양극화는 모두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 공통 분모를 찾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 합니다. 아니 어쩌면 다름이 다름이 아닌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와 중생도 둘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는데, 이 세상에 부처와 중생보다 더 간극이 큰 다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반야부의 모든 경전에서는 공(空)을 통해 다름이 다름이 아닌 것을 가르치셨고, <법화경>에서는 삼제원융(三諦圓融), 회삼귀일(會三歸一)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경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L.A에서 백인들의 부당한 대우와 인종 차별적인 처우에 불만을 품은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많은 백인들이 엄청난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까지 입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의 잘 잘못을 논하기 전에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반목과 대립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 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 백인 주유소 사장의 이야기는 이 시대 우리들이 작금의 시대적 문제인 양극화를 해결하는 귀감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 백인 주유소 사장은 평소 흑인들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다름으로 보기 보다는 나와 동등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일자리와 흑인들의 처우개선에 힘써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백인 주유소 사장과는 다르게 사회 일각에서는 흑인과 백인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목과 대립을 했고 급기야 폭동이 일어나 백인들은 많은 인적 재산적 피해를 보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 백인 주유소는 평소 주유소 사장과 파트너쉽을 구축한 흑인들이 자발적으로 주유소 경비를 서는 등 보호에 앞장서 피해를 막았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오관게의 첫 게송이 “계공다소량피래처(計功多少量彼來處)”입니다. ‘이 공양이 내게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공덕이 깃들었는가’를 헤아려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쌀 한 톨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무려 88가지 공덕이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내가 공양을 하고 생명을 이어가는데 내 주위의 모두가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알고 보면 내 주위의 모두가 내 생명의 은인으로 감사해야 할 대상이지 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반목하고 갈등할 대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지요.

날씨는 점점 추워질 것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 주위에는 어려움을 겪는 우리 이웃들이 더 많아 집니다. 이들에게 자선이라는 소극적인 나눔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의 실천이 절실할 때입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도란도란 얘기 나눌 찻자리가 그립습니다. 물과 불의 조화로 우려낸 따뜻한 차 한 잔의 맛과 향이 찻자리를 행복하게 하듯이 우리 모두의 갈등을 해소할 ‘선다일미’의 찻자리를 기대하면서... 喫茶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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