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있는 여행지 259호

경북 안동

자고 일어나면 수없이 새로운 것들이 태어난다. 어제를 기억하는 일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오래 전의 것들이 오늘에 남아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나간 어제와 오늘에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은 오늘 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다. 오늘 새롭게 태어난 것들은 ‘어제’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 어제는 그 어제의 어제에서 왔고, 그 어제는 또 다른 어제에서 왔다. 그렇게 쌓인 ‘어제’에서 우리는 왔다. 때문에 새롭게 태어난 것으로 오늘을 사는 일과 더불어 ‘어제’를 기억하는 일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되돌아보는 일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어제’가 남아있는 곳, 경상북도 안동이다.

하회마을에는 우리 나라 전통 가옥인 초가집과 기와집이 잘 보존돼 있다.

전통이 숨 쉬는 하회마을, 그 곁의 부용대, 만송정

“꼬끼오~.” 날이 밝자 머리를 맞대고 이어진 초가지붕과 기와지붕 사이로 닭들이 울기 시작한다. 하회마을이다. 그렇게 닭들이 서로를 깨우면 파란 하늘에 붉게 익은 감들이 달리고, 초가지붕 위엔 살 찐 참새들이 날아와 앉는다.

초가지붕에 살찐 참새들이 앉아 있다.

하회마을은 ‘하회(河回)’라는 이름처럼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물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연꽃의 형상이다. 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해발 64m의 절벽 위에 있는 부용대에 오르면 그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용대로 오르는 소나무 숲.

이른 아침 여명 속에서 부용대까지 오르는 소나무 숲을 걷는 맛도 좋다. 하나 둘 산새들이 깨어나 숲을 깨우고, 깨어나는 숲길을 따라 오르면 깊어진 하늘이 다가오고 멀리 낙동강의 한 굽이와 그 물줄기를 두른 옛 마을이 눈앞에 나타난다. 부용대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앞의 강물이 어제에서 왔음을 알게 되고, 강 너머 마을의 오래된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의 삶이 있기까지 많은 ‘어제’가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하회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동성 마을로 초가집과 기와집이 잘 보존돼 있다. 강변을 따라 펼쳐진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루는 하회마을은 병산서원을 비롯해 여러 고택 등 조선 전기 이후의 건축물과 하회별신굿탈놀이, 선유줄불놀이 등의 민속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민속마을이다. 마을 내에는 가옥 127채가 있으며, 이 중 12채가 보물 및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마을 서북쪽 강 건너에 있는 64m 높이의 절벽 위가 부용대다.

부용대를 내려와 나룻배를 타고 마을로 들어간다. 도로를 이용해 마을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하회마을이기에 강을 건너는 길이 왠지 더 잘 어울린다. 어제와 오늘이 이어지는 강물 위를 건너고, 오늘을 만들어 낸 어제의 마을 앞에 서면 어제와 오늘, 잊힌 것들과 남아 있는 것들 속에 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돌과 진흙으로 만든 돌담.

마을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손길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돌담과 흙담들이 길과 길을 만들어 내고, 산새의 둥지처럼 자연으로 지은 집들이 그 너머에 이어진다. 정돈하려 애쓰지 않은 장독대의 항아리들이 세월의 힘으로 줄을 지키고, 들고 난 만큼 내려앉은 툇마루 밑에는 삶의 무게를 말없이 받아 낸 댓돌이 웅크리고 있다. 삼신당의 600년 된 느티나무에는 소원지들이 가득 매달려 있고, 낮은 담장의 기와와 기와 사이엔 비가 지나간 흔적과 눈이 내린 흔적, 바람이 흔들어 댄 흔적, 아침 햇살과 달빛이 머물렀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그렇게 돌담과 흙담이 내어준 길을 걷다보면 마을 끝의 소나무 숲에 이르게 된다. 만송정 송림(천연기념물 제473호)이다. 이 송림은 겸암 류운룡 선생이 젊은 시절에 조성한 숲인데,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서쪽의 약한 지기를 보완하기 위해서 조성한 일종의 비보림이다. 또한 부용대, 낙동강 백사장과 더불어 하회마을 선비들의 풍류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펼쳐졌던 곳이기도 하다. 길을 따로 내지 않았어도 숲엔 나무와 나무들이 길이 되어 서 있다. 언뜻언뜻 숲을 비집고 파란 하늘이 들어온다. 시작이 따로 없고 끝 또한 따로 없는 숲길을 걸으며 숲이 열어준 하늘을 바라보면 어제와 오늘이라는 그 이름이 무색해진다.

초가집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하회마을 주민.

깊어진 가을 하늘 밑으로 초가지붕들이 이어져 있다. 초가의 주인들이 빛깔을 다한 지붕에 새 지붕을 얹고 있다. 어제는 들판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던 짚들이 오늘은 주인의 지붕을 덮고 파란 하늘을 다시 바라본다. 결국 초가의 주인은 파란 하늘을 덮고 사는 것이다. 집 위에 집을 이고 사는 오늘, 과연 지나간 어제를 그저 사라진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옛 명현을 생각하며…도산서원

퇴계 이황선생의 학문과 삶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도산서원.

안동은 의(義)와 예(禮)를 중시하며 학문과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의 정신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중 도산서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삶을 기리기 위해 퇴계 사후 그의 제자들이 세운 곳으로, 한 시대의 명현의 자취를 더듬어 추억할 수 있는 곳이다.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되었던 전교당.

중학생 50여 명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서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옛날 한 시대의 지성을 이끌었던 명현은 아득한 시간에 잠들어 있고, 그로부터 아득한 오늘에 이르러 어느 해설사의 짧은 행간엔 다시 그의 이름이 빼곡하다. 한 시대를 책임졌던 선비를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서원의 계단을 오르면 오늘을 오늘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간 것들을 찾아가 보는 일,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많은 보탬이 되는 걸음일 것이다. 좀 더 많은 ‘어제’가 남아 있는 안동, 그곳을 지나면 지나간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