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259호

제2의 삶
권안영/ 단양노인장애인복지관 자원봉사자

행여 언젠가 쓰임이 있을까 해서 갈무리해 두었던 잡다한 물건을 정리했다. ‘시간(時間) 앞에 영원(永遠)이란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체념(諦念)이란 단어를 감히 승화시켜 무소유(無所有)의 홀가분함을 흉내 내려니 쉽지 않다. 진목 스님의 “물건을 정리하듯 마음자리도 정리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자연히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됐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이 또한 지나가려니”하고 산 세월. 복지관에 와 보니 너무나 힘들게 살아온 이들이 많은지라 공연히 미안하고 안쓰러움이 생긴다. 남편의 유고집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러 왔다가 ‘주간 보호실’을 알게 된 것이 내겐 제2의 생(生)을 살게 된 인연인 것 같다.

처음엔 조그마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4년이 지났다. 얼마나 교만한 마음이었는지 이제와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들(장애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제2의 삶을 시작하는 환희, 늘 긴장하여 출근하는 기쁨, 나를 조금이라도 필요한 곳이 있다는 즐거움, 이 자체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싶다.

이 나이에 제일 무서운 병은 게으름이다. 부처님께선 ‘항상 깨어있으라’하셨는데,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없으니, 하여 내가 얻는 것이 훨씬 많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모순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들(장애인)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데, 이런 시설이 필요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사랑으로 바라보고 좀 더 이해해주고 칭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복지관 선생님들과 가족분들이 자주 대화의 시간을 가져 그들(장애인)의 마음을 살피고 사랑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가족들도 힘이 덜 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랑보다 더 큰 힘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동네 요가교실 
김수연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살아오며 운동을 하지 않던 스스로를 되돌아봅니다. 한 해 한 해 전년과 다른 신체 나이를 느끼며 늘어만 가는 체중계 숫자를 바라만 봅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던 차에 요가교실 홍보글을 보여주며 ‘함께 하자’는 지인의 권유로 요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를 설렘으로 시작한 요가교실 수업은 삶의 활력소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강사님의 말씀처럼 만나면 반갑게 인사 나누며 시작된 수업은 대만족이었습니다. 연예인급 미모의 강사선생님, 고요한 음악에 강사선생님의 말씀과 동작을 따라하다 보면 고요히 잠든 신체를 잔잔히 일깨우는 묘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신체를 음악 따라 움직여 봅니다. 무거웠던 몸은 유연한 동작에 따라 점점 가벼워지고, 마음에는 행복감과 성취감이 들어찹니다. ‘음악치유가 이런 것이구나!’를 새삼 느껴봅니다. 약 90여 분의 운동 후, 도란도란 모여 담소를 나눕니다. 집에 있는 음식을 가져와 나누어 주는 분들 덕분에 도토리빈대떡·양배추 물김치·사과·복숭아·땅콩·음료수가 늘어섭니다. 먹는 즐거움을 덤으로 감사히 받습니다.
‘운동을 해서 살을 좀 빼야지’ 했던 의지와는 다르게 운동 후에 먹는 음식 맛은 꿀맛입니다. 어제 오늘의 동네이야기, 집안이야기를 하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누군가의 말씀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운동과 사람의 향기를 함께 느끼는 이 시간이 무료했던 어제를 행복한 오늘로 만들어 줍니다.
고마워요! 우리 동네 요가교실!

 

<정정합니다>

<월간 금강> 9월호(통권 257호) 30쪽(키워드로 읽는다 ‘불’ - 불과 종교)과 10월호(통권 258호) 29쪽(키워드로 읽는다 ‘바람’ - 바람과 종교)에 게재된 최종성 교수의 이력 중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ㆍ박사 과정을 마쳤다.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를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대에서 박사후연수 과정을 거쳤다’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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