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면 올레길 제3구간으로 ‘보시의 길’이 있습니다. 장안사에서 출발해 해륜사·사라사·보림사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은 9.9㎞로 일반인의 걸음걸이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이 흥미를 끄는 것은 ‘참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란 별칭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인은 주체적 삶을 살지 못하고 ‘상실의 시대’를 산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하게 되면 직면하게 될 상황은 너무 분명합니다. 온갖 죄악과 몰염치, 무기력과 몰가치, 그리고 마침내는 비참한 파멸을 맛보게 됩니다.

따라서 ‘참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란 이름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희망과 기대를 안겨줍니다.

‘참나’를 잃은 존재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할 스톤은 그의 저서 〈다락방 속의 자아들〉에서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고 있습니다.

호랑이 한 마리가 갓 태어나자마자 염소들의 무리에서 살았습니다. 염소들과 같이 풀을 뜯고, ‘매애’ 소리를 내며 염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컷 호랑이 한 마리가 염소떼를 덮쳤습니다. 수컷 호랑이는 염소 무리에서 암컷 호랑이를 발견하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컷 호랑이는 암컷 호랑이를 데리고 강가에 가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사냥한 고기를 강제로 먹였습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은 암컷 호랑이는 수컷 호랑이와 함께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할 스톤은 이 책에서 “누가 내 삶을 몰래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는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자아들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부지런한 사람도 내면의 한편에는 대책 없는 게으름뱅이의 성향이 존재하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도 사소한 일에 안절부절하는 성향이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할 스톤은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 삶을 그토록 경멸하게 만드는가. 그와 내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면, 당신은 당신 안의 ‘외면당한 자아’를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외면당한 자아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처벌을 받아온 에너지 패턴이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다만 의식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할 스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훈련을 통해 외면당한 자아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속에 참된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할 스톤의 ‘참나’란 불교에서 말하는 진아(眞我)와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짜 나’를 찾으라는 가르침은 불교의 근본 주제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우루벨라 지방으로 전도에 나선 부처님은 어느 날 숲 속에서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하면서 무언가를 찾으며 숲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중 한 젊은이가 부처님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혹시 이쪽으로 도망치는 여자를 보지 못했습니까?”

부처님은 대답 대신에 무엇 때문에 그러냐며 반문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근방 바라문의 자제들로서 각자 부인을 데리고 들놀이를 나왔습니다. 그 중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유녀(遊女)를 데리고 놀이에 합석했습니다. 젊은 부부들이 놀이에 열중하는 틈을 이용해 유녀는 젊은이들의 재물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를 발견한 젊은이들이 부리나케 유녀를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연유를 들은 부처님이 젊은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망친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급하고 소중한가?”

“그야 자신을 찾는 일이 더 급하고 소중하지요.”

한 젊은이의 대답에 부처님은 “그러면 내가 그대들에게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습니다. 젊은이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경청한 후 모두 마음이 환희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 중에는 진실로 자신을 찾겠다며 출가를 결행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사이버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엔 ‘아바타’란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바타’란 가상사회에서 표현되는 자신의 분신을 의미하며, 원래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 ‘아바따라(avata_r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인터넷 가상현실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아이콘으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바타를 이용한 가상사회에서의 삶이란 것도 결국 진실한 삶과는 거리가 멀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자존심, 개성과 자유가 보장될 리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첨단문명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시대라 할지라도 2600년 전 부처님이 도망친 유녀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에게 던진 질문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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