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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로 배우는 불교 13. 무위사 극락보전 백의관음도와 관음예참(2)<끝>
  • 이승희/홍익대학교 강사
  • 승인 2016.11.2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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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없는 정토신앙 강조 특징

백의관음을 친견하는 노비구.

고려 후기 널리 조성되었던 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수록된 선재동자의 구도여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그루의 청죽(靑竹)이 솟아있는 암좌에 정갈한 모습으로 반가좌한 채 선재동자를 맞이하고 있는 수월관음의 형상은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정경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금니를 사용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고려의 수월관음도와 달리 굵고 활달한 묵선으로 표현된 무위사 극락보전 관음보살은 도상과 표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황토색 후불벽에 그려진 관음은 거대한 신광 안에 당당한 체구에 백의를 입은 형상으로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잔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커다란 연잎을 타고 서있는 백의보살은 온 몸으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듯 머리에서부터 둘러쓴 백의자락이 좌우로 펄럭이고 있다. 양손을 앞으로 교차하여 정병과 버들가지를 들고 있으며 목과 가슴에는 연꽃 형태의 영락을 두르고 있다.

관음보살은 눈을 반쯤 내려 뜬 자애로운 눈길로 화면 우측의 노비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몸을 숙인 채 손을 벌려 경배하는 자세의 노비구는 간절한 표정으로 관음보살을 우러러 바라보고 있다. 노비구의 등 뒤에는 특이하게 청조가 앉아 있으며, 그림의 왼쪽 원상 밖에는 홍색의 구슬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반대쪽의 벽면 한쪽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海岸孤絶處(해안고색처)
中有洛迦峰(중유낙가봉)
大聖住不住(대성주부주)
普門逢不逢(보문봉불봉)

바닷가 높은 벼랑 아득한 곳
그 가운데 낙가봉이 있으니,
대성은 머물러도 머문 것이 아니고
보문은 만나도 만남이 없네.

明珠非我欲(명주비아욕)
靑鳥是人逢(청조시인봉)
但願蒼波上(단원창파상)
親參滿月容(친참만월용)

명주는 나의 바라는 바 아니지만
청조와 이 사람은 상봉하였네.
오직 바라옵건대 푸른 물결 위에서
친히 만월 같은 모습 뵈옵게 하옵소서.

위의 게송은 고려시대 널리 알려졌던 낙산설화를 전거로 쓰여진 오언절구로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명주는 원상 밖에 홍색구슬로, 청조는 노비구의 어깨에 묘사되어 있어 노비구가 의상대사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왜 백의관음보살도를 아미타삼존이 봉안된 후불벽의 뒷면에 그렸던 것일까? 나아가 극락보전이라는 건축적인 구조 안에서 백의관음이 갖는 신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불전이라는 구조 안에 불상이나 불화가 조성될 때 도상은 불교사상과 신앙과 불교의식과 유기적인 관련을 맺으며 명백한 목적과 의도를 갖고 선택된다. 다시 말해 어떤 시기에 특별하게 조형화된 불교의 존상은 당시 사람들의 불교적, 문화적, 신앙적인 각개 각층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상징성과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무위사 극락보전이 1430년에 건립되었을 당시에는 수륙재가 개설되었다. 하지만 1476년 후불벽이 건립되면서 앞면에는 무량수삼존상이 봉안되고, 뒷면에는 백의관음보살이 형상화되었으며, 불전은 영원한 안식처로서 환한 빛이 충만한 서방 아미타정토 즉 극락보전으로 구현되었다. 관음보살은 일반적으로 <화엄경>과 <법화경>에 그 존재의 근원을 두고 있지만, 아미타불을 도와 망자의 추복(追福)과 영가천도의 신앙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다. 관음보살의 명도구제적인 신앙 성격은 14~15세기 간행되었던 <백의관음예참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예참의식은 불·보살님께 자신을 위하여, 혹은 남을 위하여 자신의 죄를 참회함으로써 공덕을 이루어 마침내 자신과 그들이 다 함께 가피를 입어 평온함을 얻게 된다는 실질적인 신앙방법이다. 예참의식은 고려말 조선초에 정토왕생을 위한 실천강령으로 내세워져 <법화삼매참법>, <화엄삼매참법>, <자비참법>, <관음참법> 등 다양하게 행해졌다. 이 중 무위사 백의관음도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할 예참의식문이 <백의예문>이다. <백의예문>은 <미타경>과 함께 간행되는 등 15세기까지 중시되었던 의식문으로, 고려후기의 진응국사(眞應國師) 혜영(慧永, 1228~1294) 스님이 1269년 <백의예문>을 주석하여 출간한 <백의해(白衣解)>를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백의해>에 쓰여진 <관음예문>의 구성과 체제는 매우 간단하다. “보타락가산에 머무는 성백의관음보살에게 귀명하는 예를 취하고 ‘옴 아로늑계 사바하’라는 진언을 외운 후, 10악업을 참회하며 무량수국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는 문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이 14번 반복되면서 10악업을 참회하고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백의보살에게 귀명하여 참회를 하고 이를 통해 무량수국에 왕생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간행한 <관음예문>은 관음을 주존으로 참법을 행하는 의식문으로 고통과 환란을 구하는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신앙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고려후기 조선초 간행된 <관음예문>에서는 성백의관음보살에게 귀명하여 10악업을 참회하고 궁극적으로는 무량수국에 왕생하기를 기원하고 있어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정토신앙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 한편 중국 원·명대 불전 안에도 무위사 극락보전과 마찬가지로 후불벽을 세우고 뒷벽에 관음보살을 도상화한 예가 많이 보이지만 후불벽의 앞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보전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에 형상화된 백의관음은 특별히 14~15세기 정토신앙과 결합된 백의관음예참신앙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화면에 표현된 노비구는 의상대사이자 참회로서 극락왕생을 희구하는 발원자 혹은 왕생자로도 해석할 수 있어 중층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승희/홍익대학교 강사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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