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법리 중 가장 깨끗한 고갱이 ‘법화경’”

선사는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다가 다행히 나루 언덕에 허름하게 서 있는 헛간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선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헛간에 들어가 합장하며 다시 〈법화경〉을 외웠습니다.

문길은 문수보살님, 그 군인은 관세음보살님 화현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 분들이 내게 물어본, 눈이 녹은 뒤 솥에 있는 물은? 아마도 부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일 게다. 모든 세상의 법리 중의 가장 깨끗한 고갱이, 〈법화경〉이지. 그것을 나는 그 때 몰랐다.

허운(虛雲) 선사는 청나라 때의 이름난 스님입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것이 한이 되어 그는 부모의 은덕을 갚으려고 밤낮으로 〈법화경〉을 외웠고, 마침내 중국의 4대 불교 성지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 오대산(五台山) 성지를 참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오대산은 중국 4대 불교 명산 중에 사찰의 건립 시기가 가장 빨라 중국 불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그 전에도 불제자라면 누구나 오대산 참배는 일생일대의 원이었습니다. 허운 선사도 오래 전부터 오대산에 참배하기로 원을 세워 광서(光緖) 8년, 1882년 9월 1일 남해의 보타산 법화암을 떠나서, 향로를 받들고 세 걸음마다 한번 씩 절하면서 오대산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틈틈이 〈법화경〉을 외우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선사는 멀고먼 길을 걸어서 마침내 다음 해 섣달에 황하의 철사나루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나루를 건너 언덕에 올랐으나 날은 저물고 사방에는 인가가 없어 갈 곳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지요. 선사는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다가 다행히 나루 언덕에 허름하게 서 있는 헛간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선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헛간에 들어가 합장하며 다시 〈법화경〉을 외웠습니다.

그러나 방은 춥고 눈은 퍼부어 날이 샐 무렵에는 유리 세계로 변하였는데 눈은 한자가 넘게 쌓였고 길은 분간할 수 없으며,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 방향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쭈그리고 앉아 염불을 하였으니 추위와 굶주림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더구나 헛간은 사방 가린 것이 없으니 선사는 바람을 피해 한 곳에 꼬부리고 엎드렸습니다. 그런데도 눈은 계속 퍼붓고 동장군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습니다.

선사는 감당할 수 없는 추위와 굶주림에 그만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며칠을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까요. 다행히 눈이 그치고 볕이 났으나 병이 심하여 일어날 수도 없었습니다. 선사는 멍청하게 누워 오로지 〈법화경〉에만 의지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설하였느니라.”

그 때 홀연 어떤 걸인 하나가 거적을 밀고 헛간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선사에게 무언가를 물었으나 선사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어날 수도 없었으니까요. 걸인은 말없이 헛간을 덮었던 풀을 내려 불을 피우고, 각종 효능이 뛰어난 기장쌀로 죽을 쑤어 선사에게 먹였습니다. 마침내 선사가 기력을 회복하자 걸인이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남해에서 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오대산에 참배하러 갑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문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시오?”

“오대산에서 오는데 장안으로 갑니다.”

“오대산에서 오다니? 사중을 여러 번 다니었소?”

“나를 아는 이가 많지요.”

걸인은 날이 샌 뒤에 기장 죽을 쑤려고 솥에 눈을 퍼부으면서 물었습니다.

“남해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으면 무엇을 먹나요?”

“물을 먹지요?”

솥의 눈이 녹은 뒤에 걸인은 솥에 있는 물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오?”

그러나 선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걸인의 물음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러자 걸인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선사는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전과 같이 절을 하면서 길을 걸어서, 그 이듬해에 오대산과 가까운 회경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길가에서 자다가 또다시 심한 복통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설사와 이질을 앓으면서도 선사는 간신히 길을 걸어 다음 날 황사령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황사령 근처의 성황당에서 밤을 새우며 눈을 감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산마루인지라 왕래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선사의 의식은 가물가물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선사는 문득 서쪽 담장 밑에서 불을 피우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지난번 헛간에서 만났던 그 걸인, 문길이었습니다. 선사는 너무 기뻐서 그를 불렀습니다.

“여보시오?”

문길이 반갑게 응답했습니다.

“웬일이십니까? 어째서 아직도 이곳에 계십니까?”

문길은 선사에게 약을 내어 먹이고, 더러운 옷을 빨아주고, 다시 기장죽을 쑤어 먹였습니다. 그러자 선사는 며칠되지 않아 병이 거의 나았습니다.

선사가 문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옵니까?”

“장안에서 옵니다.”

“어디로 가겠소?”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오.”

“나는 병이 쾌차하지 못하고, 또 절을 하면서 가는 터이니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구려.”

“당신은 지난 섣달부터 오늘까지 겨우 여기 왔구려! 절하면서 걷는 길이라 많이 걷지 못하니 언제 오대산까지 가겠소. 게다가 병까지 걸려 몸은 쇠약한데 아직도 길이 머니 아마도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오. 여기서 오대산을 향하여 예배만 하여도 마찬가지니 굳이 그 먼 길을 힘들게 갈 것까지는 없지 않겠소?”

“당신이 나를 염려하는 성의는 고맙소만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나를 외아들로 두었으나, 나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였으며, 아버지는 도망한 나를 위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오래 살지도 못하였소. 하늘이 무너지는 듯 망극한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 되었소.”

“그래서 밤낮으로 그렇게 〈법화경〉을 외웠소?”

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매달릴 것은 〈법화경〉 밖에 없었소. 그래서 서원을 세우고 오대산에 가서 불보살님들께 예경하고 보살님들의 가피를 입어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영혼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를 발원할 것이니, 가다가 죽더라도, 아니 죽은 혼이라도 오대산까지 가서 나의 소원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당신의 효성은 하늘도 감동하겠소. 대단히 고마운 일이오. 나는 지금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지만 바쁠 것은 없소. 내가 당신의 짐을 지고 갈테니 당신은 절을 하면서 오시오.”

선사는 감사히 생각하고 동행하여 태곡의 이상사(離相寺)까지 갔으나 스님들의 괄시만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사는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법화경〉을 외워주고 절을 떠났습니다. 문길 또한 선사와 함께 스님들께 곱게 합장하며 선사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윽고 산언덕이 끝나는 길목에서 문길이 선사에게 합장을 하며 말했습니다.

“여기서 오대산까지는 멀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갈테니 당신은 천천히 오시오. 짐은 따로 져다 줄 사람이 있을 것이오.”

“이 은혜를......”

선사가 합장을 하는 사이 걸인은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선사는 있는 힘을 다해 분주를 지났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호남성에 산다는 군인이 현통사(顯通寺)까지 짐을 실어주었습니다. 물론 우연이 아니었지요. 선사가 현통사에 가서 문길이 있는 곳을 물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선사는 자신의 무릎을 쳤습니다.

훗날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문길은 문수보살님, 그 군인은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 분들이 내게 물어본, 눈이 녹은 뒤 솥에 있는 물은? 아마도 부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일 게다. 모든 세상의 법리 중의 가장 깨끗한 고갱이, 〈법화경〉이지. 그것을 나는 그 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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